사회에 가까워질수록, 그 곳은 무분별했다.
교수가 나가자마자 선배들이란 사람이 우르르 강단 앞으로 들어온다. 한껏 무게를 잡으며 줄지어 들어오는 모습이 마치 용역 같은 느낌이다. 도열이 끝나고 나서 말끔하게 정장을 갖춘 남자가 입장한다. 카랑카랑함이 담긴 목소리는 말한다.
10만 원씩 학과비를 걷어야 한다.
요지는 그랬다. 엠티와 체육대회, 축제에 쓰일 비용의 수금. 납득하기 힘든 명목의 수금은 더 이상 불필요한 이야기였기에 교실 밖으로 나가려 강의실로 몸을 돌린다. 그러나 남자 하나가 강의실 문을 가로막는다. "자리로 돌아가." 그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까딱거렸다.
통학을 하는 동안 길 위에서 버리는 시간에 점차 자괴감을 느낄 무렵, 오늘이 스승의 날이란다. 달을 보고 집에 가는 일은 고등학교 이후로 없을 줄 알았지만 신입생이 불려 다니는 모임은 적지 않았다. 늦는 일이 잦아지며 피로는 쌓이고, 정체 모를 술자리는 계속됐다. 고작 두 달 본 교수들에게 카네이션을 달아주고 스승의 은혜를 부르며 박수를 치는 상황은 코미디였다.
끝나고 이어지는 술자리에 스승은 없었고, 두부김치와 소주는 가난한 대학생들의 뒤풀이라기엔 금액이 과했다. 엠티에는 물이 말갛게 뜬 김치찌개가 나왔다고 한다. 당시에 술을 먹지 않았기에 모든 모임을 빠질 수 있었지만 참여하지 않아도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200여 명이 있는 공대에서 여학생은 열명도 되지 않았으니, 남자들의 세계로 이루어진 학과의 룰은 쉬이 '군기'로 정해졌을 테다. 학교 내의 군대놀이가 성행한다는 것은 뉴스에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나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어리숙한 새내기였고 "대학교만 가면 ~할 수 있다."와 같은 미래 가정형 문장을 익히 들어왔던 터라 가까스로 손에 쥔 이 자유를 절대로 놓칠 수 없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가지 말라고 발목을 잡는 류의 분위기가 아니라 반항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분위기. 나의 위축을 기다리는 시간이 하염없이 길었다. 외톨이에 익숙하지 않았더라면 견딜 수 없는 뾰족함이다. 그러나 나는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학회장이었다.
이런 상황을 많이 겪어왔는지, 나와 같은 애송이를 다루는 법을 잘 알고 있는 듯 짓는 웃음은 상당히 기분 나빴다. 어설프게 대응하면 이도 저도 아닌 입장이 될 것을 알고 있기에, 그가 먼저 입을 여는 것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게, 그는 같은 학번의 동기들을 인질로 삼았다.
"분담해서 내야 하는 것들인데 네가 안 내면 다른 학우들이 낼 비용이 늘어나. 엠티도 안 가고, 축제도 참여하지 않을 거냐.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건데 단체 생활에서 빠지면 어떻게 해. 다른 학과생들 안 볼 것도 아니잖아."
엠티도 참여하지 않고, 축제도 참여할 생각이 없다. 다 함께 만들어갈 생각은 더더욱 없다. 교복을 입을 시절부터 느껴왔지만 단체 생활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까지인지, 묻고 싶었다. 200명에게 10만 원씩 걷으면 벌써 2천만 원이 아닌가. 이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다.
안 가고, 안 듣고, 안 보겠습니다.
학회장은 미소가 사라지고 정색을 하다가, 잠시 생각하듯 강의실을 둘러봤다. 나 역시 돌아보니 그들은 분명히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이었다. 혹여나 자신에게 불이익이 올까 봐 쉼 없이 계산을 하고 있는 모습들. 그것이 눈에 보인다. 그들은 내가 침몰하는 배로 보이지 않았을까. 그러나 2천만 원을 소주에 들이부을 생각은 결코 없으니.
"학교 행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출석 일수에서 제외될 거야. 당연히 학점은 깎일 테고. 다른 친구들도 전부 가서 친해질 텐데 안 가면 손해잖아?"
이쯤 하니 분노가 들끓는다. 구역질이 난다. 난 분명 학회장이란 사람을 아침에도 봤다. 동기들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이 술에 취해 널브러지는 것만은 아니라고 여기는 나는,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그의 모습에 잘 사는 집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에 대안을 제시한다. 지금 걷는 돈의 사용 내역을 공개하라는 단순한 나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대외비라고 말한다. 그의 애마에 기름을 채워도 모를 이름 없는 돈, 2천만 원을 매년 걷는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등록금을 냈는데 출석 일수에서 함부로 제외되는 것도 부당하고. 강압적인 행사 참석 요구도 부당하고. 점심시간을 뺏고 강의실 문을 막는 것도 부당하네요. 무엇보다 당신이 뭔데 초면에 반말을 지껄이는지 그게 제일 부당해. 교수도 존댓말을 쓰는데 말이야. 출석에서 제외된다는 말은 교수에게 가서 직접 확인하겠지만, 거짓말이라면 뒷감당은 해야겠지.
문을 가로막고 있던 남자를 밀치고 치가 떨리는 자리를 벗어나니, 웅성거림이 들린다. 조용하던 곳에서 조금씩 새어나오던 불만은 삽시간에 번져 모두가 우르르 강의실을 빠져나온다. 횡령의 요람인 대학을 관둘 때까지 나는 아웃사이더를 원했고, 그 바람은 이루어졌다. 선배라는 사람들에게 아니꼬웠을 상황을 던져준 것만으로도 고소해서 웃고 말았다.
그러나 학회장은 꾸준히 비틀을 타고 다녔고, 나는 셔틀버스를 타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