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언제나 상처보다 크다.
진짜 별로네.
내가 바깥에서 지낸 한 달은 천 선생이 고개를 숙인 30분으로 대체되었다. 그녀는 그게 그렇게 억울했나보다. 따지자면 따돌림을 주도한 게 천 선생이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의 권력을 재확인한 아이들은 나를 피했고 그 뒤로도 수업에서 외면받았지만 적어도 교실 안에서 외면받을 수 있었다. 수업 중에 풀어야 할 문제를 적고서 ‘아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자.’물었을 때 내가 번쩍 손을 들어도 없는 사람 취급했다. 주눅이 들길 바란걸까. 난 적의를 배웠다. 이로써 확실해졌다. 소사는 날 대변할 능력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쯤 하세요. 천 선생님. 뉘우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가끔 지나가던 교장만이 천정은을 말릴 수 있었다. 천정은은 교장의 말에 콧방귀나 뀌고 마는 것 같았지만 상대적 지위나 대외적 평판을 무시할 수가 없었기에, 나를 보이지 않는 빈 교실이나 상담실 같은 독립된 곳에 가둬두고 혼을 냈다.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복수하자고 먼저 말을 꺼낸 건 송골매였다. 다행히 무슨 복수? 그러니까 내가 받은 무시에 대한 복수.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보통 그렇듯 권선징악을 실천하자는 뜻이었다. 정의에 심취한 아이들만큼 무서운 게 없다.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어디에도 영웅의 노년을 다루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 어딘가에 그런 이야기만 모아두면 수두룩할테지만 교과서에도 도서관에도 씁쓸한 세계가 마련되지는 않는다. ‘어째서’와 ‘왜’로 모든 사건의 실마리나 성장요소가 해결되면 터무니없이 완벽한 세상이 되어있을거다. 나는 상처를 받았고 삶을 통틀어 그때가 가장 심각했다. 예를 들면 스승의 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여러분, 누구처럼 편식하고 선생님을 신고하고 그러면 나쁜 사람이란다. 다른 친구들은 말 잘 듣는 착한 학생이 될 수 있지?
정말로 그런 선생이 있다고? 있다. 억지로 나쁜 사람으로 만드려는 게 아니고? 아니다. 소사 아저씨 이거 보세요, 진짜 유치하잖아. 어른이 그러면 안되잖아. 어른이 그러면 안된다고 아이가 생각하면 안되는거잖아. 아이들은 선생님의 말에 ‘네’라고 대답해야 할 도리와 편식하는 친구를 나쁜 아이로 결정하는 것이 충돌하게 됐다. 나는 가장 크게 대답했다. ‘네!’라고.
-너무 치사하잖아. 못된 년.
송골매의 말 앞에는 ‘어른인데’라는 의미가 빠져있었다. 우리의 입도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어른이라고 모든 걸 이해해줘야 한다는 말은 아니었음에도 난 송골매의 말에 동의했다. 천정은을 악이라 규정지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하니까. 그래서 어떤 것을 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 걸 보면 나는 이미 승낙한 셈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꽤 괜찮은 제안이라고 생각했다. 내겐 센 척 밖에 하지 못하는 자존심이 지배하고 있었다. 자포자기한 난도질을 스스로에게 하고 있었던건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솔깃할만한 일, 아니면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참여할 용의가 있었다. 많이 억울했다. 천정은을 스승이라고 추켜세울 수 있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미운 건 미운거지.
분필을 모조리 치워버릴까? 아니면 교탁에다 선물이라고 해놓고 개똥을 담아놓을까? 우리는 골탕을 복수라고 불렀다. 허나 무엇도 성에 차지 않을 것 같았다. 학교가 끝나고 몇날 며칠 작당모의를 했다. 고마웠다. 억울한 일에 더 이상 울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서. 용기와 상처는 별개의 감정이다.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일과 상처의 회복은 별도로 작용한다. 복수를 하면 상처가 낫느냐? 낫지 않겠지. 그러나 보상받을 수 있다. 내가 아팠으니까 당신도 아파야 해. 정당방위잖아.
송골매가 제안하는 복수가 죄다 어설퍼서 ‘에이 됐어.’ 하고 말 끝을 흐렸다. 속내는 ‘그 정도로 후련하지 않아.’였다.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안 하고 말지. 퉁 치는 것은 성에 차지 않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죽이고 싶어.
-어, 나라도 그럴 것 같아.
절절한 공감일지 말 뿐인 위로인지 하여튼 송골매가 그렇게 대꾸했다. ‘죽인다.’ 마음을 말로 뱉거나 활자로 쓰면 더 강렬해지는 문장. 진짜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건 ‘어떻게?’가 수반된다. 그나마 내 인생이 무탈히 유지되길 바라는 본능 때문이다. 여기 도달하기까지는 ‘어째서?’를 지나야 한다. 출발지점에 가까운 것으로 누구를 죽여야 한다면, 죽일만큼의 분노여야 한다면. 고작 편식 따위에 사람을 처참하게 수렁까지 빠트려야만 했나. 일렁이는 속마음이 이러니 저러니해도 먼저 소사가 떠올랐다. 그리고 서리태. 모르는 문제에 별표를 치는 일처럼 송골매의 직관적인 해결방법을 쓸 수도 없었고 그렇다해서 서리태마냥 모든 죽음이 슬픈 일일까 하며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논지를 펼칠 일도 아니었다. 마음에 빗장을 쳐서 이 슬픔을 잠시 가려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편이 나아보였다.
천정은의 낡은 차가 송골매와 나의 눈에 띈 것은 우연이었다. 무엇이 더 심했느냐고 물으면 그래, 우리가 심했다. 우리는 차에 다가가서 원래대로라면 쫀드기를 사 먹어야 했을 백원짜리를 꺼내들고서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또라이’, ‘죽어’, ‘미친 선생’ 같은 걸 새겼다. 어린이와 어른의 결정적 차이는 자신이 벌인 일에 제정신을 차리는 속도라고 생각한다. 우린 다 자랐다고 생각했으나 아직 어린이였고, 꺼낸 칼을 언제 도로 칼집에 집어넣어야 하는 줄 몰랐다. 본넷 위로 올라가 방방 뛰고, 오줌까지 시원하게 갈기고 나서야 돌아갔다. 아주 통쾌하고 만족한 기분으로 말이다. 권선징악의 이야기라면 거기서 끝나야 했다.
나는 저주를 믿었다. 집이 불에 타 버리기 전, 무당의 칼춤과 마을 구석 거대한 나무. 동네 사람들은 묘한 일에 무당을 불렀다. 신령수라고 부르는 나무를 잘라내기 전의 의식이었다. 붉은색 흰색 노란색 청색까지 천을 길다랗게 매달아 둬서 밤에 보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다. 사람들은 수수께끼같은 일이 생길 때 무당을 불렀다. 나는 딱 한 번 무당이 굿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어찌나 기묘한 일이 벌어졌는지 칼춤을 추어야 한다고 했다. 그 모습에 충격받은 나는 동네에 얼마나 대단한 사건이 생긴다한들 그 모습보다 기괴하진 않았을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무당은 사람이 낼 수 없는 소리를 냈다. 끼아아악- 죽은 사람들이 터덜터덜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꽹과리와 징, 그리고 북. 팥을 던지며 소사가 풀을 베는 모양의 칼을 주렁주렁 쇠고리에 매달아 춤을 췄다. 피가 난다. 번쩍이는 칼날 위에서 넘실넘실 날뛴다.
-보지 말아라. 어린 것들은 보는 게 아니야.
할머니가 자기의 양 손으로 내 두 눈을 가렸지만 난 손바닥 안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할머니가 촘촘히 손가락을 오므린 탓에 볼 수 있는 게 없었어도 눈을 뜨지 않으면 큰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쇠붙이끼리 짤그락 짤그락 스치는 소리가 났다. 보이지 않아서 청각이 더 확장된 느낌으로 나는 무당의 춤사위를 상상했다.
-아직 심장에서 둥둥 북소리가 울리는 것 같아요.
천정은의 차에 남긴 낙서 중에서 가장 크고 정확하게 적은 건 ‘죽어’라는 두 글자였다. 저주가 깃들었다고 해도 믿을만큼 선명하게 새겼다. 가슴에서는 둥둥 북소리가 울렸다.
그 날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송골매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한 게 아니니까. 송골매가 아닌 서리태가 있었다해도 겉잡을 수 없는 희열을 말리기에 역부족이었을거라고도 생각했다. 다만 서리태라면 이 일이 이렇게 되기까지 가만 두고보지는 않았겠지. 뭔가 해결책을 만들어냈을 것도 같다.
복수는 언제나 상처보다 크다. 그보다는 복수로 인해 터진 수많은 일들.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느냐고 물으면 앞서 벌어진 모든 일의 원흉을 저울에 함께 올려 비교해야해서. 그러나 몰랐다는 말로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학교가 아침부터 난리가 난 건 당연했다. 천 선생이 알아채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으나 생각보다 일이 훨씬 커졌다. 송골매와 나는 눈짓을 주고받으며 모른 체 하기로 암묵적인 약속을 했다. 같은 날 오후, 모든 학생에게 이면지에 적힌 설문이 나눠졌다.
1. 어제 하교 후, 남아있었거나 함께 남아있던 학생을 쓰시오.
2. 주차장에서 목격한 학생이 있다면 쓰시오.
3. 다음 문장을 쓰시오. <똥개>, <멍청이>, <나쁜 선생>
특히 3번 문항은 우리가 자동차의 빈 칸을 알뜰하게 채우기 위하여 마저 작게 적어둔 것인데 선생들은 그걸 예시로 골랐다. ’죽어’, ‘또라이’, ‘미친 선생’은 없었다. 글씨체를 확인하기 위했더라도 모든 학생에게 그런 문장을 쓰게 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던걸까. 아니면 목표가 선생이었기 때문에 자기들이 듣는 말처럼 여겼던걸까.
우리는 하라는대로 했다. 아무도 보지 못했고 분명 주변을 확인하며 일을 벌였다. 감시 카메라가 없던 세상이었다. 파출소에서나 보던 경찰들이 왔고 수첩에 이것저것을 적었다. 나는 속이 메스꺼웠다. 토할 때의 감각처럼 비슷한 느낌이 식도를 타고 올라왔다. 양심이라는 게 있기는 한가보다라고 생각했다. 일 년에 두 번 쯤 있던 인성교육에서 보았던 그림이 떠올랐다. 인디언들이 말하는 죄책감이라는 거.
<마음 속에는 누구나 밤송이처럼 뾰족뾰족한 공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공은 나쁜 일을 저지를 때마다 닳고 닳아서 동그랗게 되면, 더 이상 아픔을 느끼지 못합니다.>
천정은은 엉망이 된 차 옆에서 울었다. 얼굴이 한껏 일그러져서. 그 사람도 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인디언이고 나발이고 차오르는 희열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이 세상에 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하지만 우는 모습조차 보기 싫은 사람은 있다. 내 밤송이가 나를 찌르건말건 입꼬리에 웃음이 튀어나왔다. 겪은 것 중 최고로 자극적이고 짜릿한 감정이다. 그건 배덕감이었다. 아 기분 좋다. 무심결에 소리내어 말할 뻔 했다. 공포가 완성되지 않으면 그렇다. 평판, 입장, 결과는 어른의 몫이라서 충분한 공포가 완성되지 않았을 때.
따로 묘책이 있는 게 아니었다. 뒷 일은 생각지도 않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한 일을 혹시 누군가 정말 보기라도 했다면 하는 걱정. 울고 있는 천정은의 뒤로 얼굴이 빨갛게 된 소사가 배경처럼 낙엽을 쓸고 있었다. 정말 아무 일도 아니라는듯이. 소사는 조금이라도 기쁜 마음이 있었을까. 자기한테도 형벌처럼 전가된 모멸에 대해 보상받았다고 느낄까. 선생 하나가 다가가서 무어라 말을 전했고 모두의 얼굴은 더 심각해지고 있었다. 아마 범인으로 생각되는 학생을 추려내지 못했다는 말이겠지.
그렇다해도 이렇게 허술하게 벌인 일에 완전범죄가 가능한걸까? 잠깐의 기쁨이 날 휩쓸고 지나간 뒤 마음이 다시 요동쳤다. ‘여태 운이 없었으니까, 이번에야말로 내 심정을 신이 헤아려준 걸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고 치워버려도 문제가 없을는지.
내 공은 너무 뾰족뾰족해서 아팠다. 이건 큰 잘못,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것. 송골매는 내 옆에서 창 너머를 바라보며 땀을 삐질삐질 흘리고 있었다. 송골매의 공도 아픈 모양이다. 글씨는 일부러 왼손으로 썼는데 비슷할까? 혹시라도 송골매가 내 이름을 적은 건 아니겠지. 그럴 녀석은 아니다. 경찰서에 가게 되면 이제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범죄자가 되고마는건가. 천정은은 그 날 수업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민병태가 들어왔다. 그는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모두에게 물었다.
-전부 눈을 감아라. 담임 선생님 자동차는 봤지? 지금이라도 자기가 했다고 솔직히 손을 들면, 모두 없던 일로 해주마. 기회는 이번 딱 한 번이다.
협박이었다. 보란듯이 하는 협박인데도 나는 속이 메스꺼웠다. 밤송이가 콕콕콕. 다시 콕콕콕. 이건 정말 기회가 맞는지 생각하느라 힘을 다 빼앗겨버렸다.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정말 모두 없던 일처럼 돌아갈 수 있나? 그보다 송골매는 손을 들었을까? 이윽고 의심과 불안이 들불처럼 번졌다. 매번 어른들한테 속아왔는데. 특히 민병태는 믿지 말아야 하는데. 믿으려면 송골매를 믿어야 한다. 전부터 송골매와 치고 돌아다닌 각종 사고들. 깨진 유리창, 민병태에게 빼돌린 돈. 그 때와는 사뭇 다른 사고. 그리고 경찰이 왔다. 차라리 혼자 했더라면 솔직히 말했을텐데. 양심은 송골매를 책임지는 쪽으로 바뀌고 있었다. 이건 저지를 사고를 생각하기보다 사고를 수습해야하는 능력을 고려해야한다.
가령, 서리태가 나와 같이 편식하는 아이였어도 천정은이 그렇게 쥐 잡듯 혼낼 수 있었을까. 아니면 복도에 내쫓기를 했을까. 송골매는 어떻게 먹지 못하는 음식이 하나 없어서 사람을 부럽게하나. 괴롭다. 떠보거나 속임수인 말을 판단할 능력이 나는 없다. 송골매는 어떠한가. 그래, 송골매와 나는 다른 사람이었다. 한 번 삐끗했을 때 결코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올 수 없는 나와 한낱 말썽의 추억으로 끝날 송골매의 인생이 교차됐다. <이게 다 소사의 자식인 탓이야.> 인성교육을 하기 위해 온 강사는 말했다. 모든 인간의 출발선이 같다고. 노력 여하에 따라 언제든 뒤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미래는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 사랑도 동정도 열심히 벌어야만 하는 사람의 출발선은 없다. 지금 멈추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중압감 사이로 나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들었다. 송골매는 눈을 감는 것도 잊은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