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편식

미움받는 게 싫은 건 좋은거야.

by 박하


못 먹는 것이 하나쯤 있는 사람은 음식을 가리는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고충이 무엇인지 알기에 어느 자리에서든 싫어하는 식재료를 골라내더라도 개의치 않는 것이다. 안 먹는 것을 못 먹는 것이라고 하면 거의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안 먹는 것이 못 먹는 것으로 둔갑되는 경우도 많다. 먹고 나서 받을 스트레스에 비하면 ‘피망을 먹지 않으면 어떤어떤 영양소가 부족합니다.’따위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피망에만 존재하는 영양소라니 그런 건 없을걸요. 대꾸하고 싶다. 골고루라니.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은 삶이 너무 피곤하고 어느 누구에게만 좋은 사람은 거북하고 누구에게나 나쁜 사람은 참 못됐네. 그래도 삶이 편하긴 하겠다 생각할 수 있듯. 그마만큼 균형이라는 게 어려운데도 음식까지 따져야만 하나. 왜 맛있는 건 죄다 몸에 나쁠까. 그게 아니다. 몸에 나쁜 건 죄다 맛있다.

가릴 것 없는 처지가 주는대로 먹어야 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추운 것과 더운 것을 아는 것처럼 음식 또한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구분하기 어렵겠지만,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은 단박에 안다. 처음으로 햄버거라는 걸 먹게 됐을 때나 양념통닭을 먹었을 때처럼 말이다. 그래서 음식에 관한 한, 어떻게 굶주림보다 싫은 것을 먹어야만 하는가. 고민이 일어나진 않았다.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닥친 건 천 선생을 만나고부터다. 새로 부임한 어린 선생이었는데 소문으로는 그녀가 나름대로 잘 사는 집안이라고 했다. 지금껏 이름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새로 온 천정은입니다. 잘 부탁해요.

이후로 그 선생이 우리에게 존댓말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연통 위 도시락을 데워먹는 것도 진작 끝났다. 처음으로 급식이라는 것을 먹게 됐던 것 같다. 분교에 가까운 학교에서 인원까지 충당해 급식을 직접 조리할리 없었고 소사가 매일 작은 차를 타고 읍내 학교에 가 인원만큼 조리된 음식을 받아왔다. 고학년이 맛있는 반찬을 잔뜩 집어가면 중간에 낀 우리는 저학년이 먹을만큼을 고려해서 적당히 눈치보며 집어야 했다. 그리고 문제는 김치에서 터지고 말았다.

나는 김치를 먹지 못하는 아이였다. 자랑은 아니었지만 아무도 강요하지 않아서 먹지 않은 채 자랐다. 아이들은 별 걸 다 가지고 놀리니까 ‘너 한국 사람 아니네~’ 같은 말을 쉽게 했다. 개의치 않을 수 있던 건, 먹지 못하는 것을 먹고 교실에서 토하기보다 김치를 먹지 못한다는 놀림이 더 짧게 갈 것 같다는 판단이 서서 그랬다. 할머니는 김치를 못 먹는 내게 뭐라하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생각이 젊으셨던건지 아님 정말 관심이 없었는지 난 여전히 그 의중을 헤아리기 어렵다. 그래서 내 도시락은 멸치볶음, 가지볶음, 애호박무침, 버섯이나 콩나물. 가끔가다 밥 위에 올려진 계란후라이가 전부였다.

김치를 왜 먹지 못하게 된걸까. 단순한 편식쟁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못 먹는 것만 따져도 여럿이다. 으레 저마다 싫어하는 반찬을 치워두듯 김치가 그런 반찬이었을 뿐, 대신 다른 친구들이 싫어하는 반찬 중에 거부감없이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김치만큼은 도저히 내가 먹을 수 없는 거였다. 심지어 난 탄산음료도 먹지 못했다. 송골매가 구멍가게에서 콜라 하나를 사서 내게 마시라고 조금 줬었는데, 난 그때까지 콜라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목이 따갑고 아픈 고통을 견디기가 어려웠다. 단 건 알겠는데 아픔을 견디면서 단 걸 먹어야 하다니 사람은 왜 그런 일을 하는거냐고. 아무튼 김치를 못 먹게 된 기억을 거슬러 가면, 할머니가 직접 담근 김치를 장독에서 봤을 때. 나는 장독 근처에서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본능적으로 불결해 보인다고 느낀 무엇인가를 입에 넣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준 김치를 게워내고 말았다. 몇 번 더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인 걸 알았을 때 차라리 놀이터 흙바닥에 굴러다니는 사탕이 깨끗해보일정도로 어려운 시도라는 걸 인정했다. 할머니의 김치 뿐만 아니라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아주 일반적인 김치도 마찬가지라 그 음식이 뿜는 냄새부터 역하고 어쩌다 식판에 다른 반찬과 조금 섞이기라도 하면 마찬가지로 오염된 기분을 받았다.

그런 구구절절한 사연따위가 천 선생에게 고려사항이 아니었던 게 문제였다. 급식은 나라에서 새로 결정된 사항임에도 천 선생은 본인이 개인적으로 주는 것인 양 으스댔다. 감히 급식을 남기느냐는 문제가 그렇게 중대한 문제인지, 아이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을 ‘편식’이라는 단어로 매도할 일인지. 무지한 사람들이 어떻게 지위를 들먹이는지 내가 알 게 뭐냐고 따져묻고 싶었지만 아이에게 주어진 건 형편없는 말재주 뿐이었다. 그 때마다 서리태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어쩌면 알레르기 반응 같은 게 있지는 않을까. 내가 김치를 먹음으로써 몸에 이상이 생기거나 호흡이 곤란해지거나 하마터면 응급실에서 생을 달리할 정도로 위험한 음식이라면, 그러나 바뀌진 않았을거다. 나는 알레르기 하나없이 무척 건강했고, 유독 김치에 대하여서는 자랑스레 우리의 것이라 외치기를 과하면 과했지 감히 먹지 않느냐고 혼내는 게 편한 시대였으니까. 눈으로 봐도 알지 못하는 데이터를 들먹이며 면역력이 오르고 병이 덜 걸리고 아무튼 건강으로 간다고 맹신했으니까. 천 선생이 이르길 내가 김치를 먹어야 할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건강을 위해 건강에 좋은 걸 먹어야 한다.

둘째, 음식을 남기는 것은 나쁜 일이다.


명분 뒤에는 실행 뿐이었다. 건강에 과연 좋은가 하는 의문은 모르겠고, 음식을 남기는 게 싫어서 ‘그럼 아예 김치를 받지 않을게요.’하는 의지는 왜 무시당했던걸까. 그래서 내가 받지 않아도 되었을 김치를 억지로 받아서 다 먹을 때까지 홀로 급식실에 앉아 하교를 알리는 종이 울릴 때까지 수업도 듣지 못한 건, 이유로 들기에 억울한 일이었다. 혼나기 위해 만드는 문제같이. 고학년들은 고기 반찬을 남김없이 죄 가져가면서 김치는 잔뜩 넘겼다.

송골매와 다퉜을 때처럼 억울한 일들로 나는 잘 울었다. 이내 천 선생은 나와 싸워 이기는 것을 생의 최고의 목표로 한 사람처럼 김치를 억지로 먹이려 애썼다. 코에만 가져다대도 내가 헛구역질을 하는 통에 가까스로 강요가 멈췄지만 급식실에 남아 며칠 수업을 듣지 못하던 나를 위해 송골매가 잽싸게 내 식판 위 김치를 가져가줬다. 고마운 일인 건 알고 있다. 천 선생에게 들켜 둘이 벌을 설 때까지만 그랬다.

-앞으로 직접 식판을 가져와서 나한테 검사 받아라.

그래도 그녀가 다른 선생들에게까지 나를 굳이 고집쟁이로 몰아세우며 추운 겨울 복도에 책상까지 옮긴 건 유치한 일이었다. 유치하네. 정말 유치해. 나와 함께 쫓겨난 내 책상과 의자. 수업을 못 들으니 식판을 치워버리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쉬는 시간이면 송골매가 라디에이터에 올려뒀던 빵빵한 우유를 가져다 줬다.

거의 한 달 동안이나 이어진 천 선생과의 신경전에 내가 얌전히 복도에만 있던 건 아니다. 바깥에서 솔방울을 던지며 놀기도 하고 모두가 수업을 듣는 조용한 교정을 돌며 귀신이 나온다는 창고 뒤 화장실을 가보기도 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혼자 복도에 나와있는 나를 발견한 소사가 다가왔다.

-무슨 잘못을 해서 나와있니?

-잘못한 거 없어요. 천정은이 유치하게 굴어서요.

-유치한 건 무시할 수 있는 일이지만 지금은 아닌 거 같구나.

뾰로통하게 앉아있는 나에게 소사는 말했다.

-따라오너라.

잘못한 게 있어야만 이 정도 벌을 받을거란 소사의 말투가 왠지 싫었다. 자존심이 한창 자랄 때여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물어봤더라면 못 이기는 척 말해줬을텐데 소사는 일절 묻지 않았다. 나는 소사를 며칠 따라다녔다. 그럼 그냥 자기를 도와달라고 하곤, 쓸어서 잔뜩 모아둔 낙엽을 포대자루에 담아달라고 부탁하거나 새로 칠해야 할 벽에 페인트로 아무렇게나 낙서를 해도 된다고 하기도 했다. 생각보다 소사는 즐거운 일이었다. 포대에 담긴 낙엽위로 뛰면 푹신하게 가라앉는 몸의 기분. 어차피 깨끗이 칠해질 벽을 어지럽히는 일이. 엉망진창으로 만들기만 해서 그런지 몰라도 말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

잔뜩 놀게 내버려둔 뒤의 짧고 단조로운 물음이었다. 공들여 낙서를 하는 동안 소사가 다시 묻는 말에 처음으로 다정함을 느낀 것도 같다. 나는 그를 내내 아저씨라고 불렀지만 아저씨는 학생 누구에게나 비슷하게 대했다. 내가 아니라 송골매가 찬 공이 유리를 깨트린 거라고 일러바치지 않아도, 어디선가 새로 창문을 구해와 갈아끼워두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김치를 먹지 않았기 때문에 선생님이 날 내쫓은 거라고 했을 때에도 비슷한 투로 말했다.


-난 버섯을 못 먹는단다. 버섯을 먹으라고 혼내는 사람은 없지만 말이야. 유치한 건 아닌 거 같고 그건 너무하다고 말을 하는 게 맞는 거 같구나.

-전 버섯을 잘 먹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김치를 못 먹는다고 엄청 미워해요.

-그럼 버섯이 나오는 날에는 내 버섯을 가져가서 먹어라. 무기 네 김치는 내가 먹고. 그러면 천 선생도 납득하지 않겠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무심히 그랬지만 속으로는 매우 들떴다.

-미움받는 게 싫은 건 좋은거야. 그 대신 누굴 미워하는 것도 싫어해야 한다.

무심결에 하는 말이었다. 무심결과 무심결은 더해져서 결이 됐다. 어째서 사람이 지치지도 않고 누구를 미워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을 치러 가야해서 소사는 일어났다. 종종걸음으로 소사를 따라갔더니 나를 번쩍 들어, 종을 직접 쳐 보라고 했다. 중앙 현관에 매달린 종을 소사가 치는 것이라는 걸 그 때 알게 됐다. 나는 힘차게 종을 흔들었다. ‘제가요, 편식하는 아이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교실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모두에게 알려드립니다. 하지만 편식하는 어른과 서로를 돕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내가 정말 힘차게 흔들어서 아저씨가 그만그만 말릴 때까지. 어떤 게 끝나는 기분이었다. 비로소 누군가 처음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는 기쁨이기도 했다.


속이 뒤틀렸다. 계속 토하면 입에 신맛이 나고 다시 역함이 오르고 또 다시 게워내기를 반복하다 그렇게 된다. 천 선생은 웃기게도 ‘소사, 이리 와 보세요.’하고 불렀다. 소사보다 나이도 한참 어린 것만 같은데 어떤 거리낌도 없이 그렇게 했다.

버섯과 김치를 바꿔먹는 일이, 때로는 소사가 나의 김치만 가져가 주는 일이 천정은에게 걸리고 만 것이다. 배운 것 하나없는 머슴이 감히 교권에 도전한다고 천정은은 생각했다. 악랄한 인간이었다. 난 교무실 앞에서 기다리며 소사가 천정은에게 듣는 모욕을 몽땅 듣고 있었다. 소사는 비록 미워하는 일을 미워하라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이 무색할만큼 누구를 지치지 않고 미워할 수 있을 자신이 생겼다. 천정은이 어디서 학생을 함부로 데려가냐고, 시킨 일은 했냐고 따져 묻고 있었다. 소사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볼이 빨개서 교무실에서 공개적으로 망신당한 것이 얼굴을 붉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괜찮다고 했지만 난 소사가 했던 말을 모두 까먹었다. 그리고 누굴 미워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억울한 일에 눈물이나는 내가 싫었다. 하물며 천 선생이 내가 잘못을 뉘우치는 줄로 알까봐 꾹꾹 눌러 참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게 됐는데 그게 그녀의 화를 부추겼는지 언성은 더욱 높아졌다.

-잘못했어, 안했어! 어? 대답안하니? 잘못했냐고!

-무기야, 괜찮으니 선생님한테 얼른 잘못했다고 빌어라.

잘못한 게 없는데요. 그렇게 대답하면 교무실의 소란을 해결하고 싶을 뿐인 다른 선생들도 덩달아 혼내려 할 것이다. 어쩌자고 김치를 먹지 않아서 이런 야단이냐고 거드는 다른 선생들은 내가 도망가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인걸까. 급식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학생, 할머니와 사는 학생, 그리고 모두에게 조아리고 다니는 소사의 아들. 분에 겨운 급식을 얌전히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기가 더 쉬웠기 때문일까. 내가 받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면 당연히 안하고 말텐데. 어려운 학생에게 급식비를 보조해주는 지원대상에 반드시 김치를 먹어야 하는 조건이란 게 붙을리가. 어른이란 건 언제나 하라는 걸 곧이곧대로 할 수 없어 보였다. 뭐라도 덧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게 어른. 이 세상에는 어른이 너무 많아서 본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는 게 너무 많네.

그렇다면 세상은 앞으로도 아주 피곤할거다. 이렇게 학교의 하루가 버겁게 끝나는 걸 알게되니 앞으로의 중학교, 고등학교는 더 자신이 없다. 나는 특별한 불행에 빠진 게 아니다. 같은 반 아이 중엔 비닐하우스에 사는 친구도 있었고 또 어떤 친구는 여동생이 무슨 심장의 판막이라던가 거기에 병이 걸려 수술비가 엄청나 치료도 못 받고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 어른들은 여전히 아이들이 기억하지 못할거라고 착각한다. 마치 어린이였던 기억이 말소된 인간처럼. 아이들이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낸다는 걸 까맣게 잊는다. 내 처지를 특별한 불행으로 여기지 않은 건 가난을 가난이라고 인식하지 못했기에 고만고만한 서로를 비교하지 않는데서 완성됐다. 다만 그로 인해 합당한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건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더구나 음식을 거부할 권리도 없는 어린이라면, 스스로를 대변할 능력이 없는 어린이라면 어른은 왜 어른인걸까.

-독한 놈.

다른 선생들은 복도에 있는 내게 그렇게 말하고 지나갔다. 아, 너무 어렵다. 잘못이라는 판단은 내가 내릴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판단은 어른이며 선생인 사람들의 몫이니까. 조금 부당해도 따르라는 의미였다. 구태여 더 말할 필요도 없는 고통의 시간은 너무나 싱겁게 끝났다. 학교에 장학사가 불시 방문한 것이다. 장학사 앞에서 천 선생은 소사가 맨날 하는 자세로 서 있었다. 양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인 자세. 나는 장학사와 함께 온 다른 남자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저씨, 저 선생님은 벌을 받나요?

-그래 그럴거란다. 급식을 남긴 건 네가 한창 자랄 나이라 가급적 잘 지켜야 하는 거지만, 아예 안 먹은 것도 아니고 모든 걸 다 지킬 수는 없잖니. 그렇다고 학생이 수업을 못 들으면 안 돼. 더 중요한 일이지. 그건 선생님이 잘못한거야.

-그럼 무슨 벌을 받아요?

-글쎄, 그건 아저씨도 잘 모르겠네.

교육청에서 불시에 방문한 장학사가 복도에 앉은 나를 발견한 건 운 좋은 일이었다. 모두가 한통속이라는 건 운 나쁜 일이었다. 장학사는 교장과 천 선생을 함께 불러 이런 일이 벌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김치 따위로 내가 수업을 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여전히 천 선생이 담임인 건 변하지 않을 어른의 결과. 대충 무마할 수 있는 잘못. 만일 장학사가 나를 발견하지 않았더라면, 만일 소사가 나를 난로 옆에 데려다 주지 않았더라면, 만일 내가 천 선생에게 잘못했다고 빌었더라면. 만일 만일 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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