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리

나는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by 박하


상가리에 한 가족이 이사를 왔다. 세상이 IMF로 시끌벅적했다. 이장의 말로는 귀농이라 했지만 금세 정체를 알 수 있을만큼 이삿짐이 휑 했다. 서울에서 내려온 가족은 엄마와 아이 하나 뿐이었는데 아이 쪽은 송골매랑 나와 동갑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세계가 훨씬 빠르다는 걸 모른다. 수군대는 말이 아무리 빠르다한들 뻔질나게 동네를 헤집고 다니는 아이들의 발이 더 빠르다.

-우리 아빠는 서울에서 회사를 크게 했어. 덤프 트럭이 스무대나 있었어.

여기까지 왔으면 망한거다. ‘잘 되지 않아서’가 최선의 표현이었으나 그 아이도 이미 알고 있었다. 녀석의 이름은 서이태. 원래는 서리태라고 했다. 그런데 혹시 놀림을 받을까봐 엄마는 서이태라 바꾸자고 했다한다. 그 이야기까지 들은 우리는 놈을 서리태라 불렀다.

사업을 정리하고 내려왔지만 그래도 남은 돈이 있었는지 서리태네 가족은 상가리에 집을 새로 올렸다. 내 할머니의 불탄 집이 있던 자리에 말이다. 건물은 타서 사라졌지만 토지는 여즉 할머니 것이었어서 집으로 찾아온 그들에게 땅을 팔기로 했다. 모든 게 일사천리였다. 할머니는 그 돈을 떼어 나누곤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각자 창고에 들인 몫만큼 이야기 해서 그 창고를 사기로 했다. 서리태의 경우처럼 새로 건물을 올릴 돈은 없었으니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건물이야 낡았어도 내 것이냐 아니냐가 중요했고, 더 이상의 수치를 당하고 싶지 않다는 할머니의 의지였다.


서리태는 서울 촌놈이었다. 입학 후 몇 개월 지난 사이 등장한 전학생이 말 끝마다 -서울은 하는 통에 저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미움을 샀다. 대도시의 우수함이 자기 것이 아니었으면서도 그러는 통에 결국 자기 경험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식이 틀렸던거다.

-야, 서울이 그렇게 좋냐.

-여기보단 낫지. 똥냄새도 안나고 24시간 여는 가게도 많고, 밤에 돌아다녀도 환해서 안 무서워.

-그럼 서울로 가든가.

송골매가 쏘아붙이면 서리태가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서리태도 사실 돌아가고 싶은 눈치였다. 지어놓은 집은 번듯했지만 원체 작은 땅에 지어놓은 터라 다소 작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서리태가 돌아가게 되면 나와 할머니는 그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을까. 터무니없는 생각도 잠깐 했다.

-인마 다른 애들은 부러워서 그래. 나도 부러워. 부러운 거 아니까 티 내지 말어. 물어볼 때 알려주기만 해도 다 친하게 지낼 수 있어.

-니는 친구 많은 거 같냐?

-이 새끼가.

깐족대는 송골매와 싸우고 내성적인 서리태와 놀며 우리는 점점 똘똘 뭉쳐다녔다. 그 사이 들려오는 바깥 세상은 더 많이 무너지고 있었다. 나는 집에 있는 라디오로 세상을 들으며 할머니와 방풍비닐을 쳤다. 촌집에 바깥기둥을 만들어 두르는 비닐. 상가리 사람들이 슬슬 더워져 뜯어낸 것을 얻어다 집에 둘렀다. 하가리는 응달이어서 여름에도 골짜기에 얼음이 얼었다. 그 중 유독 응달에 가까웠다. 나는 내가 일생토록 그림자에 사는 사람일 줄 몰랐다. 정녕 그 집을 언젠가 떠나리라는 생각을 했었다.


귀농이라는 말이 얼마나 형편없는 발언이었는가는 서리태의 엄마가 선생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었다. 만나자마자 서리태를 구박했던 게 시골 놈들이 부리는 텃세에 불과했었다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사실 서리태는 싸가지없이 굴거나 깍쟁이로 보기에는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되려 조용하고 점잖은 범생이 타입이었다. 오해를 많이 받을만 했다.

-원래 우리 집이 있던 자리야.

서리태의 집이 다 지어지고 나는 말했다.

-그 집은 어디갔어?

-불에 다 타버렸어. 새로 집을 지을 수는 없어서 그대로 뒀었거든.

미안하다는 속 빈 강정 같은 말을 서리태는 하지 않았다. 일어난 일들에 대해 할 말이 없을 때 건네는 허튼 소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편이 더 나았다. 낯선 것들은 금세 익숙해지고 상가리 그 자리에 서리태네 집이 우뚝 선 것도 그랬다.

우리는 여러가지를 이야기했다. 특히 민병태의 촌지 사건에서는 분노하는 서리태의 모습을 볼 수도 있었다. 좀처럼 벌어지지 않는 일인 게 아니라 결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라면서.

-아직도 그런 교사가 있다고?

-서울은 어떤데?

송골매와 나는 서울의 학교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정보를 얻을 구석이 하나도 없으니 우리는 서리태의 말을 귀기울여 들으며 서울을 가늠했다.

-아마 전에 학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면 그 선생은 큰일 났을거야. 잘렸겠지. 때리는 것도 없거나, 있어도 그렇게까지 심하게 때리면 난리가 났을 걸.

잘린다는 서리태의 말에는 덜컥 겁이 생겼다. 그만한 일을 견뎌냈다는 자신감보다 어떤 삶을 가로막을 힘이 생겼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학교는 성가신 것들을 종류별로 담아 진열해두는 상자와 같다. 깜빡이는 교실, 육중한 몽둥이와 선생, 쓸모를 알려주지 않는 교육, 위에서 내려온 온갖 지시사항, 위는 도대체 어디인가요? 그리고 소사. 도사리고 있는 위협으로부터 조심하라는 경보를 아이들에게 전하고 증발한다. 학교다.

-소사는 있어?

-소사가 뭔데?


김숙이 부임했다. 인사하는 모습으로 미루어보아 선생님 중 가장 활기찬 성향이었다. 서리태는 학교에서 결코 김숙을 엄마라 일컫는 법이 없었다. 무려 아이들끼리 이야기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선생을 오직 이름으로만 부르는 것은 강한 척 하던 아이들의 습성이라서 김숙을 쏙 빼놓고 다른 선생의 이름을 이름만 온전히 불러대는 통에 몇몇 아이는 종종 김숙을 김숙이라 부르는 실수도 했다.

서리태도 은연 중에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모양이면 엄마가 자신이 없는 어딘가에서 분명 김숙으로 불리고 있을거라는 걸 말이다. 일부러 실수하는 사악한 녀석들이 아니었는데도 김숙이 김숙이라고 불리면 지레 내가 움찔거렸다. 이내 우리는 선생을 이름으로 부르기를 관뒀다. 미운 몇몇만 빼고 말이다.

선생이 부모라면 자기들도 모르는 새 어떤 특혜를 누리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은 꾸준히 생겨났다. 성적을 너무 잘 받아도 의심을 살테고 그렇다하여 시험을 망쳐버릴 수도 없는 간극. 선생의 자녀라는 건 고달플거다. 엄마와 선생님 간의 선, 자식과 학생으로서의 선. 그 둘을 충족하기란 결국 둘 중 하나가 학교를 떠나기까지 지속될테니까. 어쩌면 소사의 아들보다 더? 비교를 하기도 했었다.

다행히 김숙에 대해 적의를 갖는 아이는 없었다. 도리어 선생님이라고 부르기가 편한, 바야흐로 진짜 선생님의 등장이었다. 서울이 무언가 엄청난 곳이긴 한가보다 하는 이상한 사대주의가 바탕이었지만 그와 별개로 김숙의 태도가 학생 하나하나 존중하는 투여서 아이들로 하여금 존중을 이끌어냈던 것 같다.

어리숙한 아이들 사이에서 서리태는 유독 성숙해 보였다. 특히 부조리를 일삼던 선생들에게 똑 부러지게 말했고 선생들도 서리태에 대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입장으로는 동료의 아들이니, 더군다나 서울에서 내려온 선생의 아들이니 뿌리깊이 박힌 지방의 통속적 관념이 통할리 없었다. 우리는 우리를 대변하면서 암약하는 서리태를 좋게 보기 시작했다. 또렷한 생각이 흐릿한 말로 나올 때의 비참한 기분을 알까? 녀석이 때마다 등장하여 그 곤란함을 처리해 줄 때의 짜릿함. 선생들이 물러서는 희열. 서리태의 모든 행동이 잘난체라 생각하던 아이들도 바뀌었다. 대단한 녀석이었다. 학교의 분위기도 서서히 달라지고 있었다.


서리태는 특히 책에 관하여 이상한 고집이 있었는데 자신이 읽을 책은 반드시 돈을 주고 사서 봐야한다는 고집이었다. 직접 산 책은 빌린 책과 다르게 꼭 끝까지 읽을 힘을 준다고 했다. 읽기를 포기하려다가도 지불한 값이 떠올라서 그렇다는 말이었겠지만 덕분에 서리태는 가지고 있는 책이 참 많았다.

-‘책은 명예나 불명예를 구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엇때문에 책을 읽느냐고 물었더니 서리태는 읽던 부분을 또박또박 읽어내려갔다.

-그렇대.

서리태는 우리가 만화책을 골라 읽을 용도로만 쓰던 도서관에 박혀서 본인이 읽을만한 책을 찾아내고 있었다. 사서 읽는 것이 기본이지만 세상 모든 책을 돈 주고 살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말했다. 하여튼 송골매와 나는 만화만 읽었고 서리태는 글을 읽었다. 엄마가 선생이라 무리해서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되도 않는 걱정을 했다.

서리태가 뱉는 말은 항상 말하고자 하는 주된 목적이 아니었다. 다년간 단련된 노하우로 세상을 헤쳐나가는 송골매와는 사뭇 다른 결이었다. 그래서 내가 듣고 싶은 대답에서 비껴나는 말들이 스스로 생각을 하도록 만들었다. 언제나 능숙하게 괜찮은 결론을 내던 송골매가 도움이 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서리태의 힘이 내 마음 속에서 나부끼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를테면 모르는 문제는 별표를 쳤는데 내 별은 언제나 뒤집어진 모양이었다. 삼각뿔 두 개가 위를 향하는 방향이 되어 뒤집어졌다. 위에서부터 그리면 그런 모양이었다. 별을 똑바로 그리고 싶어서 물어보면 송골매는 아래부터 그리라고 했고 그럼 좀 느리지만 똑바로 위로 서는 모양이 됐다. 서리태는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별은 그런 단순한 모양이 아니야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둘은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린 함께 다닐 수 있었다.

누가 옳다 그르다를 말할 생각은 아니다. 둘이 섞여야 적절한 인간일 거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다. 알맞은 순간에 적합한 행동을 배울 수 있게 된거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송골매를 꺼내 쓰기도, 서리태를 꺼내 쓰기도 했다. 매번 들이닥치는 세상만사가 내게는 별표나 다름없었지만 딱 맞아떨어진다는 감각만큼은 살아있어서 그렇게 될 때면 잠깐 세상이 환했다.


동네에서는 행방이 묘연해진 사람들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읍내 목욕탕에서의 일처럼 문제에 연루된 사람들의 소식이었다. 대개 흉흉한 내용은 아이들에게도 괜찮은 화젯거리라 어떻다더라 저렇다더라 살을 붙여가며 이야기를 부풀려나갔다. 어떤 일은 우연히 내가 그 시작부터 알게 되었는데, 아이들과 어른들의 입과 또 다른 입을 거쳐 그게 사실인 양 돌아 내게 다시 돌아왔을 땐 사실은 온데간데 없이 엄청난 가짜가 되어 있었다.

-이런 건 알고 있는 사실을 밝혀야 하나?

-글쎄 다들 믿고 싶은대로 믿으니까.

무심한 대꾸가 서리태에게 나올 적이면 나는 상황을 본 뒤 침묵했다. 내게는 어떤 영향도 없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엉뚱한 걸 바로잡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주전부리로는 자극적인 편이 입맛에 맞을테고, 소문이란 본디 잘 팔리면 그만인 게 유일한 가치였다.


-그 이야기 들었어?

진부한 대사로 소문은 시작됐다. 말머리가 법적으로 정해진 것처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말이다. 몸을 고쳐 듣겠다는 자세만 취하면 '그대로 진행하도록 해'라는 의미가 되어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망상 속 소설인지 진실의 기록인지는 알 수 없다. 하여튼 건실한 내용은 없었다.

<저기 아무개 마을에 누가 딸아이를 낳고 도망을 갔다더라. 애는 핏줄 하나 섞이지 않은 사람이 애지중지 키워서 반듯하게 자랐는데 바로 얼마 전에 아비가 찾아와 자기가 아빠라고 했다더라. 얌전히 그런가보다 하고 있던 그 애는 채비를 하고, 키워준 사람도 어찌저찌 이별을 결심해서 다만 하루만 자고 가라고 했단다. 다음 날 함께 떠날 준비까지 마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키운 사람이 애한테 가서 그러더라는거야. 나는 사실 네가 떠나지 않았으면 해. 아이는 떠나지 않을거라고 안심시킨 뒤 그 사람을 재웠대. 근데 다음 날 일어나보니 아비라는 인간이 죽었다고 하더라고. 딸애는 사라졌다지. 자긴 마음 속에 어떤 칼을 갈고 있었나봐. 무엇보다 큰 응어리가 있었던거지.>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지난 겨울 개울가에 사슴이 죽어있었다더라. 고라니가 아니라 사슴말이야. 그래, 몸에 얼룩덜룩 흰 점박이가 있었다더라니까. 뿔도 있었대. 하여튼 놈이 발을 헛디뎠는지 아주 곱게도 누워 죽었는데 그걸 발견한 사람이 얼른 가서 들쳐멜 것을 가지러 가야겠다 한 사이 다른 사람이 와서 도랑에 내려가고 있던거야. 아니, 그래서 사슴을 먼저 봤던 사람이 화들짝 놀라 달려와서는 '내가 먼저 발견했소!'하고 그냥 무작정 가져가보려 한 사람은 죽은 사슴 뿔을 붙잡고 '그런 게 어디있어! 집은 사람이 임자지!' 진짜 옛날 동화나 다름없던 일이 아니냐.>


하지만 소문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에겐 아무래도 무게가 다르다. 어느새 황당한 일로 변모되어가는 온갖 사건이 억울하고 분에 겨워 모조리 죽이고 싶을지도 몰라. 그렇다면 누군가가 거기 보태는 한 마디 말조차 책임이 된다. 소문에 있어서만큼은 사람이 간사하기로 이를 데 없어진다.

모두 다 나눠갖는 책임이 희미해져 자긴 몰랐다고, 난 아니라고 하면 그만이었으니까. 그렇게 도망치면 된다. 사람들이 거짓된 소문으로부터 모두 떠나고 나면 결국 당사자가 떠난다. 떠나야 할 것으로부터 가장 마지막에 떠나고만다. 잔인하지.

그래서 떠다니고 사라지는 일련의 소문들 틈 사이, 어째서 정작 책임져야 할 일들에서도 사람은 다름없이구는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주체가 모든 정황을 알 수 있다면 '당신만큼은 도망치지 말아야지, 너 만큼은 벌을 받아야지.' 이렇게 나온다면 어쩌려고? 악의를 무시하다간 큰 코 다칠텐데 겁도 없이 사는 사람들. 겁 먹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는거다. '나는 아니니까.' 문제가 된 적이 없으니까.

-괜찮아?

잠깐 먼 곳까지 가려다 붙잡혔다. 서리태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꼴 보기 싫은 정보가 많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소문의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는 일에서 비단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건, 가까운 주변인이야말로 더욱 고통이 되는 듯 했다.

이번 소문은 악의적인 말들이 더해져서 상가리에 새로 온 가족이 실은, 남편이 부도난 회사를 버리고 도망가는 바람에 여기까지 떠밀려 왔다고 귀촌의 이유를 정리했다. 남의 삶이 불행이어야만 자신이 우뚝 서는 줄 아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았다고? 그렇기에 괜찮냐는 말은 나의 대사여야 했다. 서리태의 대사가 아니라.

녀석이 참 좋았던 나는 놈의 입에서 설령 사랑이나 희망이 최고라고 말하더라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나에게만큼은 삶에 대해 여러모로 좋은 스승이었으니까. 그건 어딘가 열중하는 사람의 모습 자체에 빠진 셈이라 인간의 면면 전부를 걸고 넘어지면 결코 하지 않을, 맹목적인 동경이었다.

소문은 원작이 따로 있으며 파생되는 패러디처럼 퍼져나가는 성질이 있었다. 그러나 오리지널보다 패러디의 힘이 센. 재미만 있다면 누구나 참여해 덧칠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사슬을 펼쳐 묶어도 시원찮을 판이었다. 그러나 여느 때의 경우처럼 무심하고 건조하게 서리태는 소문을 틀어두고 지냈다. 어떤 방송도 영원하지 않은 라디오를 듣듯이. 난 고작 소문만으로 진실의 세계가 한 치 영향을 받을거라는 걱정을 하지 않았다. 이전의 세계에서는 그랬으나 내 친구, 가까운 사람들의 경우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대놓고 묻지는 않았지만 늘 내게 괜찮냐고 물어왔던 서리태에게 적어도 괜찮냐고 물어야하진 않을까 생각했을 뿐이다. 빌어먹을 소문이 자라는 시간에는 가속도가 붙어 내가 물어보는 것이 허접한 소문에 편승에 물어뜯는 결과가 되리라고 판단하기까지 그랬다.

김숙을 김숙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서리태는 소문이 괴이하게 변이하는 과정을 알게 모르게 들었으리라. 지역 공동체의 결속을 원하는 잔혹함이 항시 ‘지역 사회에서 그렇게 하면 못 써요.’ 공무로 지자체에서 나온 사람에게까지 말하는 게 시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김숙도, 서리태도 아무 일 없듯 지냈다. 부정도 긍정도 없이 말이다.


새로운 가십거리가 탄생했다. 몇 살 터울 위의 선배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어제까지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사람이 이튿날 사라졌다. 일련의 소문을 모두 떠안고 사라진 듯 순식간이었다. 선생들이 학생을 이끌고 따로 시간을 내어 장례에 참석했다. 낯설었다. 거기엔 익숙한 게 하나도 없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뒤로 돌아 내달리다가 건넛편에서 오는 차에 치였다고 했다. 장난으로 속이려는 것처럼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는데 누구하나 한 마디 보태는 거짓말이 없었다. 죽음 앞에서는 치사해지지 않았다.

영정 앞에 서서 죽음을 애도하는 방법을 배웠다. 어른들이 하는 모양을 흉내내어 곁눈질로 ‘이제 일어나는건가? 한 번 더 절을 해야 하나? 뒤로 걸어나가야 하나?’ 같은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울에서는, 아니 읍내까지만 보더라도 생일 따위에 축하를 건네고 있을 사람이 있을거다.

죽음이 그렇지만 축하라는 것도 실은 비슷한거다. 행위의 반복이며 겉으로 드러나는 게 기쁨과 슬픔일 뿐. 감정마저 숙달된만큼을 제각기 연기하는 일일거라고. 우린 사회성이 결여되어 연기가 서툰 사람을 도태된 인간이라 표현하지는 않기로 했다. 진실과 허구 사이 빌어먹을 틈이 어쨌든 현장에서는 감정을 최대한 쥐어짜내는 방향으로 약속된거다. 그리고 그걸 예의라고 부르기로 했다. 나는 예의를 차리고 있었다.

-넌 낙천적인 성격은 아니지?

인솔하는 선생이 학부모와 문상을 마저 하는동안 장례식장 바깥에서 뿔뿔이 흩어져 있던 학생들 틈에서 서리태가 물어왔다.

-그게 뭔데?

-무슨 일이든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거.

-나도 심각하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없어보여?

순간적으로 발끈한 반응에 서리태는 짐짓 놀란듯 하다 ‘그게 아니라….’라고 말했다. 송골매가 나타나는 바람에 우리 대화는 강제로 종료됐다. 서리태가 말한 것처럼 내 머릿속에 굴러다니는 생각이 어떤 궤에 있는지는 나도 안다. 그게 긍정에 가깝지 않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이게 누구 탓일까 떠올리면 수도 없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와르르 쏟아진다. 나쁜 습관인데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속이 터져버릴 거 같아서 모르는 체 하는거고. 의문이 생기는만큼 화가 치민다. 남들이 다 가지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교통사고가 남긴 것은 <전방 추돌주의, 사고 다발지역!>이라고 적힌 팻말 하나였다. 사람의 목숨 하나 값으로 설치된 것치고 더없이 조악했다. 소사는 학교의 명령을 받들어 등교 시간에 맞춰 버스정류장에 서 있기로 했다. 더벅머리의 남자가 고작 서 있는 바로는 여전히 씽씽 달리는 자동차들을 막을 수 없었는데도 매일 나갔다. 학생의 대다수가 걸어서 등교했기 때문에 도저히 무슨 의미가 있나 이해하지 못할 노릇이었다. 적어도 학교가 최초의 목격자라도 되려는 의도였을까. 우리는 보호를 하고 있었다는 변명을 만들 셈이었을까. 소사는 추위나 더위나 상관없이 멀뚱히 정류장에 서있는 일과가 생겼다.

-소사 아저씨는 성실하네.

-바보 같은건지도 몰라.

소사에 대해서 서리태와 나는 상반된 평가를 했다.

-다들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미루니까 그렇겠지.

녀석은 가방을 고쳐 메고 걸었다. 우리가 자리를 뜨자 소사는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하루를 모두 끝내고나서도 서리태가 도서관을 지키던 이유를 알게 됐다. 선생과 학생이 학교에 머무는 시간은 달랐다. 아무도 없을 집에 먼저 가서 기다려도 됐지만 서리태는 김숙을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송골매와 나는 더러 함께 도서관에 있기도 했는데 나만 있을 때에는 이야기를 했다. 묻지 않으면 따로 대답하지 않는 서리태의 성격 상 질문의 몫은 항상 나였다.

-예전 학교는 어땠어?

-기억이 잘 안나서 모르겠어.

-어째서? 학교에서는 별의 별 일들이 다 일어나잖아.

-너무 짧게 있었거든.

여기가 벌써 일곱 번 째 학교라고 했다. 서리태는 너무 짧은 시간에 여러 곳을 이사하는 바람에 학교에 정 붙일 시간조차 없었다고 했다. 심지어는 반 아이들의 이름을 전부 외우기 전에 떠난 일도 있다면서 말 끝을 흐렸다. 평소의 서리태가 잘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서리태의 머리카락 하나가 귓덜미 쪽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거슬리고 있었다.

-그래서 사실 소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알 새가 없었어.

언젠가 물어보았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왔기에 뚱딴지 같은 소리라고 생각했으나 이해는 됐다. 내 주변의 인간 중 가장 상대를 이해시키려는 대화를 했다. 수동적인 자세는 저렇게 도움이 될 수도 있는건가. 서리태는 이제 묻지 않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주로 아버지랑 이사했어. 좁은 방일 때도 있었고, 한밤 중에도 자동차 불빛 때문에 밝은 곳도, 곰팡이가 핀 반지하도 있었어. 서울에서 죽어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같이, 악착같이 붙어있었어.

-어머니는?

-어머니? 선생님이잖아. 그래서 계속 같이 이사를 다닌다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몇 개월마다 이리저리 발령받으면서 다닐 수는 없잖아. 상가리로 처음 같이 이사온거야. 아버지는 잠시만 시골에 있자고 하면서 나를 엄마 편에 보냈던거고. 어른들 일은 항상 안 알려주니까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는 몰라. 그래도 다행인 건 그나마 가장 오래 있는 학교가 됐네. 같은 반 아이들 이름도 외우게 됐고 말이야.

‘그래서 너는 어떤데?’라고 물으려다가 관뒀다. 김숙이나 본 적도 없는 서리태의 아버지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김숙 선생님이 아니라 서리태의 엄마로서 그녀는 좋은 사람인걸까. 지레 짐작해본다. 자신은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학교를 갈아치우는데, 친구라고 부를만한 녀석 하나없이 그리고 이름조차 기억할 수 있는 동창 하나 없이 부유하고 있는 기분을. 그리고 엄마는 다른 학생들을 돌보느라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상황을.

엄마와는 그간 따로 떨어져서 지냈다고 했다. 말이 없는 내게 이야기의 파편 사이를 이어붙여주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한 사람을 이해시켜주려고 더 상냥히 틈을 연결해주는 서리태의 버릇이 나온다. 그 마음도 알 것만 같아서 나는 전부 이해했다며 말을 끊지는 않았다. 이른 바 얼마 전에 배운 예의라는거다.

-문제가 해결된 뒤에는 다시 올라갈 수도 있겠네.

또 다시 이별할 수 있는 상황을 염두해 뱉은 말은 서리태로 하여금 정곡이나 다름없어서 녀석은 침묵했다. 나는 서리태에게 손을 뻗어 아직까지 거슬리게 달려있는 머리칼을 떼어냈다. 그리고 후 불어 바닥 어딘가로 떨어져서 이내 보이지 않았다. 서리태는 한참 다시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나지막이 내뱉었다.

-그러게.


누구한테 전달을 하면 항상 조금이라도 보태게 되더라고. 녀석은 말했다. 사람과 사람의 입으로 전달되는 정보는 어째서 누락되는 일이 없나. 그런 말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소문을 겪어봤기에 표출할 수 있는 억울함이 알게 모르게 서려있었다.

이야기는 그걸로 끝이었다.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던 내가 코를 훌쩍거리기 시작하자 다시 괜찮냐고 물었고 나는 이 정도는 금방 낫는다고 답했고, 서리태는 그러다 자신이 비염에 걸린거라며 몸을 덥히라고 당부했다.

서리태는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상가리를 떠났다. 김숙은 평소와 다름없이 수업했다. 마지막으로 반 아이들과 인사했고, 마지막 날까지도 서리태는 도서관에 앉아 김숙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어른들의 사정이 있나 봐.

-너도 모르는 게 있네.

어른의 사정은 좋은 것도 아이에게 말하지 않고 나쁜 것은 더더욱 숨기려고만 하는 것. 다른 어른의 일이라면 듣던말던 흘리며 다녔는데도 자신들의 일만큼은 철저히 가리려고 하는 것. 그래서 서리태는 알고 있는 게 없었다. 그저 다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게 됐다고만 했다.

-무기, 잘 살아.

‘잘’이라는 단어가 들리지 않아서 나는 그만 ‘무기, 살아.’라고 듣게 되었다. 나는 서리태와 처음 만났던 날을 떠올렸다. 상가리 하가리가 전부였던 내가 서울리는 도대체 어디냐고 물으니 웃음이 터져버렸었던, 서리태와 만났던 날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동네 사람들의 입으로 소문이 돌았다. 양육권 문제나 재산 문제 따위가 섞여서 흐릿하게 들려오는 소문이었다. ‘재산이 어디 뭐 남아있었으면 그랬겠는가.’라는 대꾸도 덩달아 들려왔다. 그러나 멍청히 흘려보내는 게 최선이었다.

서리태는 상냥했으나 상냥하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어하지는 않은 듯 했다. 그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는 좋은 사람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나쁜 일을 배우는만큼이나 쉬웠다면 상냥하기가 쉬웠을까. 숨쉬듯 좋을 수도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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