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寸志)

1.속으로 품은 작은 뜻

by 박하


-그 모습을 못 보다니 아깝네….

송골매는 진심으로 아쉬운 투였다. 우리들 사이에서만큼은 요란한 사건이었던 가정방문 후기가 속속 도착했다. 어떤 녀석은 부모님이 날짜를 착각해 밭에 일을 하러 나가는 바람에 민병태가 거기까지 쫓아가야 했다며, 소리가 잘 닿지 않아 밭 안까지 들어가다 진흙에 발이 빠졌다고 킬킬거렸다. 그런 재미난 일이 자기에게도 벌어질 줄 알았나보다.

-송골매 너네 집에는 왔어?

-응, 그제 왔던 모양이야. 엄마가 말하던데? 선생님 다녀갔다 하면서.

-그제면 일요일인데? 부지런하네. 민병태, 생각보다 열심히 하는 선생 아니냐.

-그냥 빨리 해치우고 싶은가보지. 다들 여기저기 살아서 얼마나 귀찮겠어. 근데 지들은 일요일에 쉬니까 우리집도 일요일에 쉴 줄 알았나 봐. 엄마가 새참 가지러 왔다가 봤대.

민병태가 송골매의 집에 있을 때 우리는 개구리를 잡겠답시고 개울가에 내려가 돌을 뒤적이고 있었다. 사사로운 일들이 더 중요할 시기였기에 가정방문 따위가 어떻든 아쉬움은 없었다. 이미 돌아다니는 이야기들로 재미는 톡톡히 본데다 기분 나쁜 가정환경조사도 넘어갈 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엄마가 민병태한테 갖다 주라던데.

녀석이 외투 속 편지봉투를 꺼내더니 말했다.

-그게 뭔데?

-나도 몰라. 편지인가?

침으로 대충 붙인 듯 닫힌 봉투가 쉽게 열렸다. 봉투에는 10만원이 들어있었다. 눈깔 사탕이 백원, 쫀드기 이백원, 띠부띠부씰이 든 빵이 오백원, 막걸리가 천 원, 구멍가게에서 끓여주는 라면이 공깃밥까지 이천 원. 자그마치 10만원이라 덜컥 겁이 났다. 송골매는 그 돈을 보고 잠시 놀란 표정이더니 침묵했다. 무거울만큼 많은 숫자에 생각이 많은 얼굴이었다.

수도 없이 당한 구타를 생각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풀어가는 건 달갑지 않다. 거기다 어슴푸레 이룰 목표도 꿈도 안될 말이다. 폭력이 죄라면 안달이라도 해야 할테지만 민병태는 그러지 않았다. 먼저 자신이 부조리를 행사하고 그 값을 지불하면 관두겠다는 논리는 강매나 다름없다. 자식이 맞는 꼴을 두고 볼 수 없는 부모는 10만원을 넣어 보냈다.

우린 언제나 평가의 말을 대비하고 있었다. 중간, 기말시험과 체력평가와 태도점수. 그 중 태도점수가 가장 우스운 항목이다. 태도가 만들어내는 결과를 알고 있어도 결과가 태도로 인해 결정되는 건 거북했다. 우리는 점잖은 아이를 목표로 삼아야만 했고 아무에게나 함부로 건방져지지 않았다.

-일단은…. 봉투에 도로 잘 넣어.

-이 돈을 삥땅치면 나는 맞는걸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럼 갖다주면 맞지 않는다는 말이야?

송골매의 물음에 ‘그렇다’고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미 가정방문을 마친 아이들도 종종 맞았으니까. 아직 돈이 전달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었고 돈이 전달되었더라도 민병태의 행실 상 때리는 걸 하루 아침에 관둔다면 의심을 살 게 뻔했다.

-아무리 봐도 촌지잖아.

-촌지가 뭔데?

-잘 봐 달라고 보내는 돈. 전에 어른들이 말하는 거 들었어.

-왜 그렇게 부르는거야? 촌이라서 촌지라고 하는건가.

-뜻은 나도 몰라. 어쨌든 뇌물이잖아. 안 좋은 거.

-그냥 얌전히 갖다 줘. 줄 수 있으면 다행이지. 못 주는 사람도 있을텐데.

안 주는 사람을 못 주는 사람으로 표현하는 게 내 자존심을 해치지 않는 최선이었다. 할머니는 그래도 어른이니까 10만원 정도야 가지고 있지 않겠냐마는 나를 위해 그 돈을 쓰지 않기로 선택했다. 나에게 쓰는 돈이 아까웠느냐고 물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민병태의 강매에 넘어가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편이 편하지 않나. 그렇다고 내가 학교를 평생 다닐 것이 아니요, 내년이면 담임도 민병태가 아닌 다른 선생으로 바뀔 것이다. 마음을 먹은 듯 송골매가 봉투를 반으로 접어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얌전히 갖다 줄 생각은 아니었다.

-아마 엉덩이로 안 끝날 걸.

나는 경고했다. 굴러가는 세상이 더러운데다 돈의 목적은 확실해서 민병태가 왜 일요일까지 분주하게 학생의 집을 찾아가길 멈추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그래 민병태는 그럴만한 위인이 아니었다. 필기하는 아이들의 속도도 맞춰주지 않고 수업을 짧게 끝내버린 뒤, 할당량을 채웠다는 정도로 만족하여 담배를 태우러 나가곤 했으니까.

-엉덩이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송골매는 정말 돈을 가져다주지 않을 셈이었다.


엉덩이를 몇 대 맞더라도 그렇게 사람이 쉽게 죽지는 않겠지만, 10만원은 목숨값과 비등해보일만큼 큰 돈이었다. 게임이 몇 판인데, 쫀드기가 몇 개인데 같은 자잘한 산수 놀이를 하기보다 담임의 죽도가 먼저 떠올랐던 게 그 반증이다. 우린 늘 그렇듯 울타리 사이의 개구멍으로 학교에 들어갔고 익숙하게 복도를 뛰었고 도시락을 나눠먹었다.

오히려 안절부절한 쪽은 민병태였다. 오기로 한 봉투가 감감무소식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송골매를 부르더니 집에서 전달한 게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실 우린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건 촌지다. 할머니에게도 뻔뻔하게 요구했고, 앞서 내 순서가 돌아왔겠거니 생각했더라도 내가 맞았던 날이 가정방문을 했던 다음 날이었던 건 우연이라기에 너무 웃기지 않은가. 어른이랍시고 치사하기는 아이들과 매한가지구나 싶었다. 우리도 저마다 치사한 구석이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송골매가 무슨 대답을 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른다. 다만 송골매는 칠판을 짚었고, 민병태는 교실을 나가더니 죽도가 아닌 다른 무기를 들고 왔다. 그게 당구채라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허공을 가르는 당구채에서 바람 소리가 휭휭 났다. 이래도 되는건가 싶을만큼 심하게 맞았고 그래서 결국 터져버린 엉덩이를 붙잡고 쓰러졌는데 민병태는 벗겨진 머리에 땀이 맺힐 정도였다. 저 정도면 끝나겠지 하다가 다시 때리고, 더 때리다보니 난 송골매의 가방을 뒤져 봉투가 여기 있노라고 송골매가 까먹었나보다라고 대변해주고 싶었다. 심각할 정도의 구타였다. 사람은 임계점이 넘을 정도의 살벌한 광경을 목도하면 울기보다 굳는다. 상황을 종결할 수 있는 방법을 다 까먹게 된다.

-집에서 선생님한테 전달하기로 한 게 있으면, 꼭 잘 챙겨서 와라. 너희에게 중요한 걸 맡기는 건 너흴 믿어서 그렇고 맡은 일을 소홀하게 하면 이렇게 혼이 난다. 알았어?

우리를 믿어서 그렇다니 뻔뻔하기도 하지. 나는 무서웠을까? 칠판 아래 쓰러진 송골매나 지금이 수업시간이라는 것이나 죄다 기괴했다. 학교를 다닌다는 건 배움을 위해. 올바른 사람으로 자라기 위해. 이 학생은 타의 모범이 되므로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같은 말이 적힌 형, 누나들의 상장 옆으로 내 이름이 걸리기 위해? 민병태가 하는 말은 옳았다. 봉투를 받으면 학부모의 눈치가 있으니 당분간 신경을 쓸거다. 덜 때리거나 덜 아프게 때리거나. 그러나 안 때린다는 건 상상할 수가 없다. 나는 결국 책상에 걸린 송골매의 외투를 뒤져서 봉투를 꺼냈다.

-선생님, 아까 개구멍 지나오다 주웠는데 혹시 이거 아닌가요?

봉투를 쥔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민병태는 송골매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선생과 제자의 관계라면 사과했을까. 어른이 어린이에게 사과하는 일은 없었는데 그건 마치 오래도록 깨지지 않는 명성 같아서 우리 중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잘 좀 챙기지 그랬냐.’정도로 투덜거린 뒤 봉투를 열어 확인했다. 오묘한 표정. 마을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이장의 형편을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잊고 있었던 듯, 나지막이 소사를 부르라고 명령하는 데 그쳤다. 나는 송골매를 끌어다가 양호실에 눕혔다. 그게 녀석이 엉덩이를 까고 엎드려 있던 사건의 전말이었다.

형편이라는 건 상대적이다. 할머니가 민병태에게 두둑한 봉투를 보낼 수 있었다한들 내 삶이 극적으로 변화되었을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잘 몰라도 날강도 같은데 잘 알면 날강도한테 칭찬받는 일을 좋아했을리가. 소사는 이런 불합리한 일을 무수히 들어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의 일을 말하면 해결책을 줬을 수도 있다. 아니면 다른 어른들들처럼 옛날엔 심심치않게 벌어졌었다고. 길에서 고양이를 본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일곱 살 짜리의 엉덩이를 죄 터질 정도로 때려야 할 일이었냐고 묻는다면, 소사는 뭐라고 말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 않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큰 돈이었으니까.

-어쨌든 이 정도로 끝났으니까 다행이지.

-돈 갖다줬으면 미안하다고 말이라도 하지. 대놓고 돈만 보더라. 못된새끼.

-착해빠진 선생이었으면 집까지 따라와서 돈 달라고 했겠냐? 안 줬으면 계속 때릴 모양이었는데… 그러게 삥땅 칠 생각 말고 그냥 주지 그랬어.

사실 민병태가 송골매에게 순순히 사과를 했더라면 많은 걸 인정했어야 할거다. 돈을 받는 것, 그리고 그걸 우리 중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에게 말할 생각까지 했다면 꽤 곤란했을터다. 기껏 소박한 반항에 그칠 어린이들이 이런 사태를 어른들에게 알리고 그로 인해 단박에 뒤집을 줄 알았다면 일을 더욱 키웠겠지만, 우리에겐 이미 전교 50명도 되지 않는 분교가 너무나도 컸다. 그걸로도 벅찼다.

칠판을 짚고 민병태가 엉덩이를 맞는 상상을 하면 우습다. 그러나 상상 속 민병태를 때리는 사람은 잘 떠오르지가 않아서 흐물거리는 무언가가 죽도만 냅다 휘둘러지는 모습으로 그쳤다. 소사가 나간 뒤에야 우리는 이 선택에 대해 다시 이야기를 해야 했는데 결국 송골매는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너무 아파서 누군가 봉투를 꺼내줬으면 했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 낄낄 웃었다.

-다른 애들은 줬을까?

-글쎄 몰라, 한 번 물어봐야지. 난 할머니가 절대 안 줄거야.

-그걸 어떻게 알아?

-지난 번에 민병태가 가정방문 왔잖아. 문 앞에서 들었는데 할머니가 아무것도 없다고 했거든.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던 건 송골매가 나를 더이상 불쌍하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긴 그랬더라면 나와 송골매의 죽이 이렇게 잘 맞을 일도, 나름대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도 없었을거다. 이장과 할머니의 관계는 그대로 두고 우리는 우리대로 관계를 맺어 지냈다.

-무기야, 내 오른쪽 주머니에 들어있는 것 좀 꺼내줘.

바지가 무릎까지 내려가 있어 끙끙대며 꺼냈더니 그건 돈이었다. 휘둥그레 하게 바라보니 송골매는 아까 따로 3만원을 빼뒀다고 했다.

-돈을 다 줬는데도 때리면 진짜 억울할 거 같아서 아까 미리 뺐어.

-와, 정말 미쳤다. 대단한건지 멍청한건지… 미쳤다. 너.

그 또래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미쳤다는 말이 최고의 칭찬이라 송골매는 으쓱한 표정이 됐다. 오묘한 표정을 짓던 민병태의 얼굴도 이해가 갔다. 그의 수중에 들어간 것은 이로써 7만원이라는 게 밝혀졌고 민병태의 표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10만원에서 3만원이 빠졌으니 봉투에 담긴 건 7만원. 촌지라면 참 애매한 액수일테다. 아니면 딱 떨어지지 않는 그 금액이 최선이라서 송골매네 엄마가 되는만큼 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떳떳한 돈이 아닐텐데 이거 액수가 이상하다며 찾아가기도 환장할 노릇 아닌가.

-야. 이거 나눠갖자.

송골매는 바지를 올릴 생각도 없이 돈을 가만 보더니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집엔 아무 말도 안하고 나도 안 맞은 척 할테니까, 둘이 나눠 갖자고.

-할머니가 돈 안 갖다줬다고 말한 게, 돈 달라는 말이 아니야.

-알아. 아니까 나눠 갖자고. 난 벌써 엉덩이 터질만큼 맞았잖아. 생각해봐. 돈도 받아놓고 쥐어 팬 줄 알면 우리 엄마가 노발대발해서 학교로 찾아올걸? 돈이 적었냐고. 그러니까 이건 어쨌든 아무도 모르는 돈이야. 아예 모두 삥땅쳐서 내가 계속 맞았으면 모르는데 무기 네가 봉투 주고 여기서 끝난 거니까.

송골매는 내게 만 원을 건넸다. 명목 상 수고비라고 했다.

-그래도 받기야 받았으니 앞으로 심하게 때리진 않겠지.


며칠이 지나도 송골매는 얼굴을 조금씩 찡그리며 복도를 걸었다. 안 맞은 척을 하겠다고 했지만 하루 아침에 나을 수는 없는거였다. 그래도 맞은 장면을 떠올리면 생각보다 괜찮은 모습이었다. 다행히 안 들켰어. 송골매는 내게 그렇게 알렸다. 이후로 민병태가 때리는 일은 많이 줄었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그를 무서워했다. 공포의 학습은 유효했다. 유일하게 무서워하지 않은 사람은 송골매였다. 평소와 비슷한 장난을 하더라도 민병태는 송골매를 건드리지 않았다. 자기 맘에 찰 정도의 금액이라 판단한걸까. 그래서 송골매는 학생처럼 학교 생활을 할 수 있었다. 구타 대신 지도를 받는 학생으로 말이다. 민병태에게 대꾸하는 송골매를 보면서 우리는 질서의 회복을 꿈꿨다. 돈은 보호막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받을 수 있는 기본을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복잡한 경험치가 아닌 순수한 힘을 난 부러워했다. 그런 장치가 내게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점차 농담을 벗어나 대꾸까지 하는 모습과 맞지 않는 송골매. 이것저것 당해야 하는 나. 연약하지만 존재하는 부모, 그리고 부모가 없는 둘의 차이가 극명하게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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