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생을 혼내는 사람은 없어요?
민병태는 첫 담임의 이름이다. 원형탈모를 가진 중년의 남자다. 입학식부터 송골매와 싸운 탓에 다음 날이나 되어서야 그의 얼굴을 처음 봤다. 칠판에 적힌 이름의 주인이 누굴까 궁금했었는데 그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었을 험악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다른 선생들은 민병태를 학생주임이라고 불렀는데 그게 우리에겐 무소불위의 권력처럼 보였다.
아이들은 그와 있으면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늘 죽도를 들고 다니며 아무나 때리는 탓에 행여 꼬투리라도 잡힐까 겁을 냈고, 차라리 담배나 피러 나가서 복도를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했다. 민병태를 담임으로 둔 우리에겐 더없이 고역이었다. 큰 잘못을 하지 않더라도 자기 심기에 거슬리는 일이 있으면 앞으로 불러 칠판을 짚게 한 뒤 남여 상관없이 엉덩이를 팼기 때문에 여섯 명 중 하나는 꼭 책상에 바로 앉질 못했다. 하면 안되는 무엇과 해도 괜찮은 무엇을 습득하기엔 최악의 교사였다.
옛날엔 누구나 다 그랬다고, 그보다 심했다고 하면 억울했다. 근데도 바꿀 생각을 안 하는걸까 하며. 행여 수업을 잘 가르쳤냐고 하면 비교할 대상이 없었기 때문에 모른다. 그저 맞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고약한 사람이라는 생각은 했다. 어른들이 무시로 일컫는 ‘옛날’은 엉망진창이었다. 괜찮거나 나아진 시간을 생각하면 옛날은 무법천지였는데도 가만 뒀는지 모르겠다. 아무도 몰라서 그러기 쉬웠던걸까? 나는 몰랐기 때문이라기보다 너무 알아서 그러기 쉬웠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모를 거라는 걸 누구나 알아서. 민병태도 같은 생각이었을거다.
민병태는 자신이 교련 선생이었다고 입버릇처럼 으스댔다. 또 하나의 버릇은 ‘이 새끼들이 군기가 빠져서.’ 우와,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워서라도 그런 말은 못하지. 터무니없을 정도로 어린 애들 앞에서 군기반장을 하고 싶었나. 그에게 구타가 모든 일의 해결책으로 쓰이는 동안 우리는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궁리했다.
-엄마한테 말해볼게.
송골매가 자신있게 선언한 다음 날, 낭보는 없었다. 어른들은 아이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아서 그저 말썽을 피우거나 어떤 잘못을 했겠거니한거다. 무엇보다 시골 분교에는 아이의 학업을 신경 쓸 학부모가 남아있지 않았다. 교과서에는 버젓이 농번기와 농한기를 나누고 있었지만 농사꾼에게는 일 년 내내 농번기나 다름없다. 쉬는 것은 마냥 쉬기만 하는 것이 아니요, 겨울철의 일이, 봄의 일이, 여름의 일까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의 일만 아는 사람이 아이의 학업을 돕는 행태를 게으르다 말할 수는 없다. 제 자식을 아끼는 송골매의 엄마가 그리 말할 정도라면 우리는 제대로 된 돌파구를 찾지 못할 거라는 결론이 났다.
민병태가 더없이 얄미웠던 경우는 그런 것이었다. 학부모가 누구라도 우연찮게 방문하면 수선스럽게 먼저 나가 인사를 건네곤 했다. ‘아이고 개똥이 어머니, 개똥이는 수업을 곧잘 듣고 있습니다. 아, 도시락 말입니까? 제가 전해주겠습니다. 아유, 괜찮습니다. 이제 학교에 막 들어온 꼬맹이들인데요. 다들 그렇지요. 이런 것부터 혼을 내면 학교에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사랑으로 잘 보살펴야 합니다.’ 막힘없이 술술 뱉어내는 말에 다들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민병태가 흘깃 시선을 돌리면 곧장 책으로 고개를 숙이는거다. 그럼 누가 됐던 껌뻑 속는다.
-왜 선생을 혼내는 사람은 없어요?
피멍이 지다 못해 엉덩이가 터져버린 송골매를 양호실로 끌고 가서 약을 바르려던 참이었다. 소사는 검지 손가락으로 연고를 찍어 송골매의 엉덩이를 문지르다 멈칫 하더니, 다시 약을 발랐다. 큰 의문은 아니었을거다. 학교에도 갓 들어온 아이들이 무언가에 두려워하는 선생의 꼴을 본 적은 없었을테니까. 아저씨는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스승은 하늘이라잖니. 배울 게 많아서 그렇지.
-맞는 것도 배워야하면 저는 그만 배울래요.
송골매가 아파하면서 대꾸했다. 선생이 되면 학생을 마음대로 때릴 수 있는 거냐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학생 중에는 분명 선생을 꿈꾸는 아이도 있었으나 그게 누군가를 패기 위해서라니, 장래희망으로서의 의미가 많이 다르다. 교육에 대한 사명보다는 복수심이 들끓었다는 표현이 맞다. 민병태를 향한 증오가 극에 달할 즈음이었다. 동급생 누구에게나 상냥하고 친절했던 아이의 입에서 그런 말을 들으니 섬찟했다. 우리의 마음 속 교사의 이미지가 실추된 것은 비단 말썽을 일으킨 우리의 탓이 전부가 아닐텐데 민병태만 따로 떼어놓고 미워할 수가 없었다.
-진작 돈을 줬으면 정말로 안 때렸을까?
소사가 나가고 난 뒤 송골매가 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송골매가 말하는 돈은 바로 민병태에게 줘야 했던 돈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녀석이 왜 엉덩이가 터질 정도로 맞았느냐면, 시간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학교에는 정기적으로 하는 가정방문이라는 게 있었다. 담임 선생들이 자기가 담당한 학생들의 집에 방문하여 앞으로의 진로를 이야기하거나 생활 환경을 조사하는 게 목적이었다. 사전에 설문조사를 하면 부모의 이름, 학력, 직업을 적어야 했고 스스로가 판단하기에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 된다고 느끼는지 적어서 내야 했는데 학생으로 하여금 자신의 생활수준을 가늠하게 만드는 건 무척 잔인했다. 동네 사람들이 수도를 잠그던 괴롭힘보다 더. 난 그 모든 게 감시같았다. 그래서 들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상위층, 중산층, 하위층. 쉬는 시간에 아이들이 쓰는 걸 지켜봤더니 모두 중산층이라 적고 있었다. 아래로는 부모의 직업, 학력, 부모의 장래희망, 나의 장래희망 따위가 칸칸이 있었다. 모두 자기가 중산층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던거다. 실태야 어떻든 간에 모두가 적는 중산층을 따라 쓰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사는 집은 집인지 창고인지조차 애매했고, 그런 사실이 이미 낱낱이 드러난 이상 하위층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맘때 난, 들키기 싫은 게 많은 소년이었어도 숨길 수 있을만한 게 남아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가정방문을 최대한 미루려고는 해봤다. 민병태가 물어올 때마다 잘 모르겠다고 천진난만한 표정을 지으면서, 설문에 아무것도 모른다고 적어내면 혀를 쯧 차는데 가정방문 자체는 말릴 수가 없는거다. 사실대로라면 집이 없다고 말할 수 있어도 사는 곳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집에 민병태가 온다니 끔찍한 일이었다. 아이들에게도 저런 투인데 집까지 보고나면, 그리고 내게 건실한 학부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이 든 할머니와 쓰러져 가는 집. 그래 얼마나 멸시당할 것인가. 할머니에게는 내 교육에 대한 관심을 묻기 전에 ‘나’라는 존재가 당신의 삶에 어느 정도의 불순물인가 물을 필요가 있었다.
무기의 학교 생활이 이러저러합니다. 그럼 할머니는 대꾸하겠지. 하나 더 있는 입 챙기기에도 벅차다오. 이게 다 돈이 없어서 그래. 돈이 없어서! 먹고 죽을 돈이 없어서. 그런 귀신은 때깔도 참 곱다지. 그래 학교에서는 기껏 불러놓고 끼니 한 번을 안 주는건가!
그런 대사가 오고갈 것만 같다. 화풀이로 민병태의 매질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호통을 치는 할머니를 상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오히려 할머니야말로 그런 데에 소질이 있을지도 모른다. 잃을 것이 없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힘은 누구보다도 무서우니까. 전에 읍내 시장통에 있는 목욕탕을 갔다가 그런 사람을 봐서 안다. 시장 한 켠 크지도 작지도 않게 우시장이 있는데 소나 닭을 사고 파는 구역이라 큰 돈이 오고갔다. 트럭 뒤에 앉아 노름하던 몇몇이 소란스러워 보고 있으니 목욕탕 아줌마가 말했다.
-무기야. 저런 거 보지 말고 여기 우유나 하나 먹거라. 귀한 소 팔아가지고 뭐하는 짓들인지 쯔쯔… 장마다 종종 저런 것들이 나타나서는 시끄럽게 군다. 너는 나중에 커도 절대 저-얼대 노름판 얼씬도 말아라. 알겠지?
-노름이 뭐예요?
-노름 말이냐? 음… 어디보자. 딱지치기는 알지? 너네는 구슬 같은 것 걸고 하잖느냐. 그런데 어른이란 것들은 집을 걸고, 소를 걸고 딱지를 친단다. 그러다가 다 잃으면 저러고 행패를 부려. 구슬은 또 구하면 되는데 하루 아침에 집도 소도 없어지면 어떡하겠니. 즈그들이 걸어놓고선…. 무기야 잘 기억해라.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놈이 세상에서 제일로 무섭다. 사람이 주제넘은 욕심 부리면 못 쓴다.
마저 목욕을 마치고 나오는 할머니의 모습이 그랬다. 우리가 이제 잃을 게 더 있나요? 그렇담 할머니와 나는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가. 암, 민병태에게 호통을 치고도 한참 남을 일이지. 나를 향하는 애정이 없다기보다 할머니는 학교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사람이었다.
결국 민병태가 가정방문을 빌미로 우리 집에 오게 됐다. 그의 승용차를 타고 상가리를 지나 하가리를 지나니 난색을 표하며 얼마나 더 들어가야 하느냐고 물을 지경이었다. 집 앞에 멈춰 선 그의 표정을 송골매와 함께 봤으면 좋았을텐데. 민병태는 열악한 집의 상태를 보고도 이러쿵저러쿵 물어오진 않았다. 할머니와 단 둘이 누워 잘 방 말고는 앉힐 곳이 없었으니 적당히 살피다 돌아갔으면 싶었다. 민병태는 나에게 어른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나가있으라고 했고, 어디 갈 곳도 없던 나는 마당에 돌을 주워 던지고 놀다가 호기심이 도져 문 앞으로 갔다. 민병태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르신, 그러니까 무기를 잘 키우려면 이래서는 안 됩니다. 형편이 어려우실 건 알지만 미래를 생각하셔야죠.
-….
-큰 걸 말씀드리는 게 아닙니다. 각자 형편에 맞도록 말이에요. 제가 무기 담임이고, 더 잘 돌볼 수 있게… 그러니까 단단히 책임지겠습니다. 저 녀석, 할머님 손에 자랐어도 생각보다 학교 생활을 원만히 잘 합니다. 그래도 조금만 더 지원을 해주신다면 더 신경을 써서….
-어디, 할미 손에 자란 것은 하자가 있단 말입니까?
할머니가 민병태의 말을 끊고 말했다.
-아뇨, 그게 아니라요 어르신….
-그게 아니면 여기 온 의중이 당최 뭐요? 내한테 뭐가 더 남아 있겠습니까. 당장 차도 한 잔 못 내오는데. 보시요. 이 집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십니까?
민병태는 이후로 말이 없었다.
-어디 말해봐요. 선생 양반.
예상은 했지만 누군가를 그리 매섭게 몰아붙이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민병태는 그 길로 곧장 나와 돌아갔고 그렇게 기함을 뱉고 내뺀 뒤로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니,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내가 다음 날 잔뜩 얻어터지고 어기적 거리며 돌아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할머니가 물 묻힌 수건을 꽉 짜서 엉덩이를 닦았는데 난 베개를 씹으며 소리를 참았다. 솔직히 민병태가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자기 기분에 따라 때리는 일이 허다하여, 종종 오던 내 순서가 마침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