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아니면 집

불행은 매일 아침 태어나고 자주 소멸한다.

by 박하


나는 할머니와 밭 한가운데 있는 하가리 작은 집에 살았다. 할머니와 내가 집이라 부르고 마을 사람들이 창고라 부르는 곳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사실 창고가 맞다. 밭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보관하거나 가끔 쪽잠을 자는 그런 창고. 그럼에도 집으로 불렀던 건 ‘창고에 가자.’보다 ‘집에 가자.’가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장판이 깔린 작은 방 옆으로 진짜 창고가 있었다. 소 여물이며 낫, 갈퀴, 경운기 따위가 들어있는 창고다. 천장에는 쥐가 있고 말이다. 쥐는 밤에만 깨어 돌아다녔다. 부산하게 천장을 기어다니는 소리를 들으면서 밤에만 돌아다니는 생물들을 생각했다. 이제는 정말 잠을 들어야 하는 시간이 되면 밖에서 주워 온 막대기를 들어 천장을 쿵쿵 때렸다. 그만 좀 하라고, 제발 그만 좀 하라고 이를 꽉 깨물고 천장을 찔렀다. 그러다 구멍 몇 개가 뚫렸다. 해가 더 짧아지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쥐들과 요란한 밤. 이내 익숙한 소리가 됐다.

동네의 이름은 원래 ‘가리’였다고 하는데 인원이 점차 늘어 ‘상가리’와 ‘하가리’로 나뉘었다 한다. 그래도 이장은 가리를 통틀어 하나였다. 윗 상 자를 써서 응당 상가리가 더 위에 있을 것 같은데도, 동네 입구로부터 더 골짜기로 올라서야 하는 곳을 하가리라 불렀다. 뒤늦게야 단순히 ‘위’를 가리키는 게 아닌 저들이 윗 사람들이라는 뻔뻔함이 섞여 있다는 걸 알았지만.

상가리 사람들은 하나같이 할머니를 못 살게 굴었다. 언젠가 한 번은 집으로 넘어오는 수도를 잠궈서 할머니와 난 며칠간 씻지도 못하고 비를 양동이에 받아 썼다. ‘도대체 왜 이렇게 살아야하지?’ 그 때문에 종종 읍내까지 목욕이라도 하러 다녀오면 집 문은 아예 잠겨 있기도 했다. 그럼 할머니와 동네 어귀에 있는 비닐 하우스로 기어들어가 말아둔 모포를 펼쳐 자곤 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거지?’ 그럼 할머니는 내 생각을 읽은 듯이 말했다. 이게 다 돈이 없어 그런 거라고. 할머니는 내 얼굴을 자꾸만 쓰다듬었다. 괜찮아요. 나는 괜찮다고만 말했다. 그럼 아이고 기특한 것. 할머니가 응답했다. 그나마 쥐가 내달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옛날부터 이 마을에 산 터라 마을을 이곳저곳 구분없이 그냥 ‘가리’라 불렀지만 어느새 사람들이 다닥다닥 집을 짓다보니 마을 안쪽 구석의 응달로 못 사는 사람들을 밀어냈다. 끽 해야 백 가구도 되지 않는 시골바닥이었다. 참으로 구태의연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다. 삶이 이 지경까지 온 것에는 이유가 있다. 원래 할머니는 상가리에 살았다. 작은 단칸방이지만 멀쩡한 집 하나가 엄연히 있었다. 그게 홀라당 타 버린거다. 이보다 어릴 때의 기억은 너무 흐릿해서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활활 타는 것들 사이로 동네 사람들이 양동이에 받은 물을 뿌리고, 할머니는 자꾸만 불길로 뛰어들려고 하는 걸 사람들이 말렸던 건 안다. 할머니 손을 잡고 공판장에 가서 나물을 팔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팥이 잔뜩 들어있는 찹쌀 도너츠까지 하나 쥔 터라 기분이 좋았다.

집이 타는 기분은 슬퍼야할텐데 이상하게 불길이 그저 이길 수 없는 것으로만 보여서, 경이롭고 꽤 예쁘다고도 생각했다. 큰 불은 보고 있노라면 춤을 추는 것 같다. 순식간에 집보다 두 세배 가까이 몸집을 불려 튀어오르다가 다시 기력을 모으려는듯 수그러들고, 태울 수 있는 것들로 불똥을 튕기기도 했다. 짝짝 박수를 치는 소리를 내며. 난 그 모습을 구경하며 도너츠를 먹었다. 어른들이 불을 본 게 아니라 날 봤다면 섬뜩해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은 모르겠지만 난 진작 포기한 셈이었다. 저만한 불길을 잡을 수 있겠나. 손에 들린 도너츠는 당장 지킬 수 있는 것이고.

이미 불 붙은 집에 상가리의 주민이 모두 모여 불을 끄는 중이었다. 할머니는 장을 봐 온 봉투도 떨군 채 누가 손 쓸 틈 없이 달려들어가서는 입구에서 무너지는 기둥에 맞고 말았다. 동네 사람 몇이 달려들어 할머니의 양 다리를 붙잡고 끌어냈다. 목덜미가 피범벅이 된 채였다. 너무나 순식간이라 모두 황당한 기색이었다. 할머니가 그렇게 달려들 줄 몰랐거니와 사납게 타오르는 저 불이 무섭지 않은가?


집은 예정대로 무너졌다. 재가 날렸고 세간살이는 남은 게 없었다. 그게 다였다. 도너츠는 다 먹었고 할머니의 왼쪽 목덜미에서 진물이 올라오고 있었다. 잠시 기절했던 할머니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아직 꺼내지 못한 물건이 있다며 다 타버린 집에 들어가려고만 했다.

-아니, 뭔 노인네가 이렇게 힘이 세.

-꺼내 와야… 꺼내야 해….

-없어요! 없다고! 아무것도 안 남았다고! 홀랑 다 타 버려서 재 밖에 안 남았다고요! 정신 차려요 할매. 그러다 정말 큰일 나!

아주머니들이 말렸다. 불을 끄는 남자들과 할머니를 붙들고 있는 여자들. 재앙이 닥쳤을 때 해야할 행동을 연습한듯이 손발이 착착 맞았다. 결국 집의 나머지 벽 한 쪽이 완전히 쓰러지고나서야 할머니가 주저앉아 줄줄 울었다. 난 덤덤히 손자의 역할을 했다.

-많이 아프지 할머니. 할머니 많이 아프지.

늙은 사람도 피가 나는구나. 늙은 사람도 눈물이 나는구나.


경찰은 화재에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불길이 시작된 곳을 정확히 특정하기 어렵다고 했고, 그게 집이 너무 작았기 때문이라고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불을 질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나 연탄불이 덜 꺼진 것으로 보는 게 정황상 맞다고. 파출소에 일하는 아저씨가 대충 뭉뚱그러서 이야기를 했다. 그냥 혼자 중얼거리는건지 상황을 정리해서 설명해주는건지, 일은 해야겠는데 자신이 할 일인가 고민하며 미루고 있는 사람 같다. 아리송했던 나와 다르게 다들 그 웅얼거림을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직책이 있고 맡은 바 그러하다는 것처럼.

-아이고 순사 선생님, 그럼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하루 아침에 집을 잃었는데 말이요.

-어디보자… 어르신 보험 같은 게 따로 있으십니까?

-그런 거 없습니다… 이런 작은 방에 불이 날 게 뭐란 말입니까.

-화재는 원인이 다양해서 콘센트에 누전일 수도 있고, 앞서 말씀드렸듯 연탄불이 안 꺼져서 그럴수도 있고요…. 속상하신 건 알겠지만 워낙 낡은 집인데다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가 않아요. 그렇다고 어르신이 따로 원한 살만한 일을 저지르셨을 것도 아니잖습니까. 어느 누가 노인네 혼자 사는 집에 냅다 불을 질러요?

난 더 이상 말을 않고 고개를 숙이는 할머니 옆으로 가서 말했었다.

-아저씨, 저도 살고 있었는데요.

경찰은 내가 난생 본 적 없던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로 나는 할머니와 창고에 살게 됐다.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걸 장황하게 말하긴 했는데, 이 세상 어디 군더더기 없는 삶이 있던가. 그러니까 요컨대 꼭 돈이 없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는거다. 비록 무능했던 경찰이 불성실을 목적으로 삼았다는 건 아니고, 그냥 성실하지 않은 편이었던 것으로 생각되긴 하지만.

창고는 동네 사람들이 대충 이것저것을 넣고 각자 이름을 써서 이용하는 장소였다. 딸린 작은 방이 애초 사람을 위해 지어지지 않았다는 건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촌집과 창고가 엇비슷한 모양이긴 했지만 다른 점을 꼽자면 문 앞에 사람이 들어설 공간이 있다는 점이었다. 집은 아무리 낡았다 한들 신발을 벗을 툇마루라거나 하다못해 넓적한 돌이라도 놓여있었는데 내가 사는 창고는 그런 게 없었다. 그 의미는 내가 들어가 잘 수 있더라도 이 공간에 내가 아는 누군가를 초대할 생각을 아예 배제했다는 의미다. 생활을 내보이지 않는 공간은 삶이 오래 머물지도 말아야 할 공간과 같은 뜻이기도 하다.

나와 할머니는 동네를 돌며 일일이 마을 공용 창고에서 신세를 져야겠다, 허락을 맡으러 다녔다. 뭣도 몰라서 할머니 손을 잡고 다니며 할머니가 고개를 숙이라고 내 뒤통수를 슬쩍 밀면 꾸벅 배꼽인사를 했다. 모두가 우리의 딱한 사정을 직접 목격한 터였다. 마침 집을 비워 말로만 전해들은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굳이 ‘화마가 집을 집어삼켜’라는 표현을 썼다. 그럼 다들 그렇게 하라 했다.

허락을 해놓고도 할머니를 못 살게 군 이유는 임시방편으로 살게 된 창고가 벌써 한 해, 두 해가 지나니 슬슬 눈치를 줬던거다. 문을 잠그거나, 수도를 끊거나 하면서 허름한 창고에 가치를 붙이고 있었다. 여기는 공용 공간이라고, 당신 것이 아니라는 재확인을 겸비한 엄포였다.


당연히 돈이 없어서 그랬지만, 그렇다고 이런 깡촌에서 돈을 벌만한 구석이 당장 생기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돈이 없어서라 말하는 게 내 탓이라고 혹은 자기 탓이라고 하면 막 대들고 싶었다.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데, 실수가 책임이에요? 돈이 없어 그렇다니 할머니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억울하기도 했다. 내가 돈을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더 그럴듯한 집에 살고 싶다고 한 것도 아닌데. 지금 여기서, 내가 지금 이 상황이 슬프다고 드러낸 것도 아닌데. 멀쩡한 표정이 모자랐던걸까.

네가 서러운 것도 즐거운 것도 잘 모를 때라, 모든 걸 잘 모를 때라 그렇다고 할머니는 말했다. 아니다. 모르는 게 많아도 추운 건 나도 알았다. 누구라도 알 수 있다. 추운 건 춥다. 마찬가지로 더운 건 덥다. 마을 사람들이 할머니만을 괴롭힌 게 아니었는데도 난 할머니를 괴롭혔다고 말한다. 괴롭힘을 당했다고 하면 나도 스스로를 불쌍해하도록 속이는 것 같아서 그랬다. 서러운 일은 아니었으나 어려운 일인 건 맞았다. 해결할 수 없는 일에 쏟는 힘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서서히 알아갔던거다. 누군지도 모를 엄마에 대해 궁금해하기를 관둔 게 그렇고 할머니와 살아야만 하는 지금처럼. 아버지에 대해 철저한 기대로만 삶을 붙들고 있었다.


세상에 대해서 내가 알아가게 된 것들과는 다르게 할머니는 추운 걸 모르는 사람이었다. 함께 자면 할머니가 곁에서 잠꼬대를 했는데 목에 있는 화상 자국을 더듬으며 뜨겁다, 아이고 뜨겁다 매일 밤 끙끙 앓았다. 난방이 되지 않는데다 집은 외풍이 들이쳐 추웠는데도 자꾸만 뜨겁다고 했다. 아마 꿈을 꾸고 있었을거다.

그 잠꼬대를 들을 적마다 나는 불에 타오르는 집을 떠올렸고 할머니의 꿈에 잠시나마 들어간 기분이 들어서 추운 걸 잊을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새로 생겨나는 걸 기념하는 버릇이 있었다. 새로운 물건, 새로운 삶, 새로운 집. 새 생명까지도. 화재가 바꾼 삶의 궤적을 기념해볼까. 그 날을 잊지 못하고 잠꼬대하는 할머니가 앞으로 살게 날과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엇비슷했더라면 그것도 기념할 수 있나. 모든 게 이글이글했다. 뜨겁다, 따뜻하다. 활활 타오르는 집이 눈 앞에 있는 것처럼. 모든 걸 집어삼키고 나도 함께 타오를즈음 잠에서 깬다. 아침이었다. 징글징글했다.


난 아침이 싫었다. 하루를 그저 완수해내기만 하는 삶이 고달파서. 불행은 매일 아침 태어나고 자주 소멸한다. 몸은 땅이 그저 떠받쳐주고 있을 뿐이라 서는 것으로도 위태롭다. 거기에 발을 딛고 있다. 아침이면 확실하게 그걸 느끼게 된다. 밤도 좋은 건 아니었다. 잠에 안 들고 아침을 미루며 내 삶을 휘젓는 인간들을 생각했다. 가령, 이용하기에 수월한 인간이라던가. 타인에 관한 경계가 쉽게 허물어진다거나. 그게 무력이나 지위 때문이 아닐지라도. 이런 속내를 공개당하면 울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은 포근했다. 온기나 따스함과는 다르게 가장 안전한 곳이라 여기는 장소였다. 따스한 햇살이 드는 창과 두드려도 소리가 돌아오지 않는 벽, 사람들이 일컫는 좋은 집의 기준은 그랬다. 창고가 그 기준에 해당되는 곳이 아니더라도 내겐 좋은 집이었다.

keyword
이전 02화/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