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배워먹은 사람의 못 배워먹은 자식.
난 찻잔받침에 그려진 꽃이 몇 송이인가 세고 있었다. 잘못과 반성과 억울한 지점들. 그 중 억울함에 끼어들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함부로 어른들 얘기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태도가 그게 뭐냐고 물어오면 대답할 말까지 생각해놨다. 받침에 장식된 무늬 꽃은 무슨 꽃인지 종잡을 수 없었다. 꽃을 그리라고 하면 한결같이 가운데 동그라미 먼저. 꽃잎을 하나하나 이어붙이면 끝이었는데.
어떤 꽃인지 알 수 없는 꽃을 그려두고 우린 꽃이라 부르기로 약속했지. 꽃 이름을 하나도 모르는 서리태를 보고 송골매와 놀려댄 기억이 났다. 서울 촌놈. 서리태는 책에서 본 모양과 다르다며 억울해 했다. 직접 봐야 알지. 현실은 달라.
봄이면 진달래로 만든 화전. 찹쌀가루에 설탕만 묻혀 부친 밀가루떡일 뿐이었는데 그 가운데다 진달래꽃만 하나 달아붙여도 우린 화전이라 불렀다. 찹쌀도 밀가루도 설탕도 기름도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이 소사와 뒷산에 꽃을 따러갔었는데. 제일 비싼 찹쌀을 가져와놓고도 송골매는 날 따라 산에 올라서는 넓게 펼쳐진 모양의 이름모를 버섯을 영지라 했다. 산에 나는 버섯은 죄다 귀한 영지버섯이라고만, 이름이라고 아는 게 영지 뿐이라서 송골매는 자꾸 맞다고 했고 나는 아니라고 우겨댔다. 송골매가 덥석 한 입을 먹자마자 소사가 꽃을 내던지고 부리나케 달려와서 다짜고짜 송골매의 목구멍에 검지와 중지를 넣어 토하게 만들었지. 버섯은 절대 함부로 먹으면 안된다고 했다.
그런 일도 있었어. 우리는 서리태에게 말해줬었다. 봄이 되어 화전을 만들자는 약속을 하면서 말이다. 난 다음 봄에도 화전을 만들 수 있을까. 내년에는 기름이든 쌀이든 뭐라도 들고 와서 진달래를 따러 가지 않을 수 있을까. 할머니에게 재료를 챙겨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 왔네.
소사가 나의 보호자로 교장실에 들어왔을 때, 난 선생과 경찰의 태도가 보호자를 대하는건지 소사를 대하는건지 영 어정쩡하게만 보였다. 책임을 묻고 싶으나 평소대로 하대를 하고 싶어하는 듯 애매한 태도. 그 분위기를 모른 체 하려고 컵받침의 꽃송이를 세는 나. 소사가 들어오니 심장이 뛴다. 차를 긁은 때랑 다른 소리였다. 벌을 받는 건 무섭지 않은데 벌을 기다리는 시간이 무섭다. 내가 벌을 받아 책임지는 건 그나마 쉬운 일들이다. 하물며 교장실에서 얌전히 앉아 있기만 한다는 건 그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라 내가 끼어들 여지가 없는거다.
교장실을 보면 학교의 대표가 되는 것에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잘 썼는지 아닌지 모를 붓글씨. 교장은 누구보다 한자를 잘 읽을 수 있을까. 깨끗하게 다듬어진 난초나 몇 개의 LP. 전축이나 음악적 취향을 꾸려야 학교의 장으로써 군림할 수 있나보다. 그리고 내 앞에 놓여진 멋진 찻잔을 보자. 잘못을 해서 온 나에게 일단 뭐라도 앞에 가져다 둘 수 있는 사람이다. 찻잔 위로 증발하는 열기만큼 내 가슴이 식었다.
소사는 내 옆에서 양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의 부모로서? 아니면 학교 내부의 일을 관리하지 못한 소사로서? 그리고 ‘이 씨, 괜찮으니 일단 기다려봐요.’ 어떤 역할을 상대하고 있는건지 모를 미묘한 교장의 말. 내가 꼬인걸까. ‘손아귀에 있으니 도망갈 생각일랑 말라’와 엇비슷하게 들렸다.
-음…. 자동차를 저렇게 만든 게 너희들이냐.
경찰은 팔짱을 끼고 말했다. 걱정은 자기 몫이 아닌 듯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다는 표정일 뿐이었다. 송골매와 했다. 송골매가 하자고 했다. 복수를 하자고 했다. 우리는 고개를 잠깐 끄덕일 뿐 말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정은이 들어왔다.
일순간 뺨이 뜨거워졌다. 손바닥과 내 볼이 부딪쳐서 생긴 열이다. 난 기껏해야 마찰열 밖에 모를 나이였다. 더 나이가 들었으면 모세혈관이 터져서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었겠지만, 모르는 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따귀를 맞으면 아프지가 않다. 아프다는 감각보다 빠르게 다른 상념이 든다. 짝- 하는 소리가 울리고 잠시 현실에서 벗어나 다른 것이 차곡차곡 머리를 메운다. 어? 고개가 돌아간다. 볼을 누가 잡아당기는 것 같네. 귀에서 삐이- 하는 소리가 들려. 옷이 살짝 비틀어졌다. 겨드랑이랑 허리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이어서 코가 찡해온다 겨울처럼. 어금니가 이 자리에 있던가. 열감이 있던 볼은 갑자기 싸늘해진다. 손을 들어 맞은 뺨에 올리면 팔까지 퍼지는 열을 느낄 수 있는데 반대로 볼에서는 차가움을 느낀다. 따갑다. 따귀를 맞았구나.
-넌 진짜 못된 새끼구나.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내가 얼마나 참았는데. 은혜도 모르고 경우없이…. 안 되겠다. 넌 갱생 불가능한 놈이야. 쓴맛을 보지 않으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너 같은 놈 담임을 맡게 된거야! 경찰 아저씨 얘 잡아가세요. 난 합의 안해요. 벌써부터 싹수가 노래서 사회에 나와봤자 범죄자만 될거예요.
-그만 하세요, 천 선생.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이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모른다고요? 모르는 데 저런 짓을 해요?
이상하다. 당신이 왜 피해자가 되는거지? 이상하다. 모두 없던 일이 된다고 들었는데. 용서해주겠다는 민병태는 어째서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걸까.
속았다.
천 선생이 내게 했던 짓, 그 불합리했던 처우를 죄의 영역으로 보내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 일을 죄의 영역으로 보내버릴 사람은 이렇게 많다. 나는 속절없이 당하고 말았다. 자수하다니. 민병태는 언제나 기회를 탐하는 사람이었는데 어쩌자고 믿었던걸까.
-누가 하자고 했어?
내가 조심스레 송골매를 가리켰을 때 공포에 휩싸여 스스로 무슨 짓을 한 건지 몰랐다. 교실에서 손을 들었던 나와 눈을 떠 버린 송골매는 민병태에게 함께 불려나왔다. 이럴거면 왜 눈을 감으라 했던건지, 약속은 그 순간 파기되어 없어졌고 목덜미를 붙잡혀 그대로 여기까지 온거다. 그래서 송골매를 가리킨 손가락은 거짓이 아니었고 전부 드러날 일이고, 그게 사실이었지만 진실은 아니었다.
진실은 내가 천정은에게 하고 싶던 복수를 송골매가 제안한거다. 그래서 복수했고 송골매에게 잘못은 없다고 말했어야 했다. 입이 굳게 닫혀 있지만 않았더라도 그랬을거다. 그래, 송골매는 집이 잘 사니까. 이장 아저씨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테니까. 반대로 우리 할머니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다. 민병태가 원하던 촌지마저 해결하지 못하는데 부서진 자동차를 해결할 수 있을리가. 내가 사건이 일어난 날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었지. 내가 후회하는 지점은 바로 거기다. 네가 친구라면 날 도와주겠지라고 머저리처럼 생각할 수 밖에 없던 점.
날 보는 원망이 가득 찬 송골매의 눈빛. 그제야 깨달았다. 난 저들에게 속아서 유일한 내 편을 배신한거다. 정말 꽁꽁 숨겼더라면 아무도 우리의 복수를 알지 못했을텐데 자백해버리고 말았다. 경찰은 사실만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장 아저씨가 연락을 받아 뒤늦게 왔고, 천 선생에게 맞지 않은 따귀를 아버지에게 맞은 송골매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를 즈음 이야기가 일단락 됐다. 빠르고 건조하게.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마음은 알겠지만 보다시피 아이들이고 미성년자라 일 자체로 감옥에 넣을 수는 없어요. 합의를 보시는 걸로 하시죠 선생님.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키워 그렇습니다 선생님.
이장 아저씨는 연신 허리를 숙였다. 소사는 무릎을 꿇고 있었다. 절뚝거리는 다리는 이상하게 일그러져서 여자들이 옆으로 앉는 자세가 됐다. 그는 이장처럼 자신이 자식을 잘못 키워 그렇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자기가 키운 게 아니라서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역시 책임을 지기에는 너무 큰 문제이리라.
-어쩐지….
소사가 나의 아비라는 사실을 천정은은 그 때까지 모르고 있었다. 소사에게도 자식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건지, 그리하여 자신이 교무실로부터 한 인간에게 쏟아낸 모멸을 정당화하기에 적합했다고 생각했는지, 그 한 마디에 담긴 의미가 너무 많은 걸 함축하고 있어 어지러웠다. 확대해석을 하지 않더라도 느낄 수 있다. 못 배워먹은 사람의 못 배워먹은 자식. 죽이고 싶다.
교장이 천정은을 달래며 일을 키우지 말자고 했다. 그리곤 담배를 물었다. 나를 키우는 것보다 일을 키우는 게 쉽다는건가.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보상 조건이 서로의 입에 다녀갔고 백 원짜리 동전이 백 만원으로 쉽게 불어나는 광경을 봤다.
우리는 다시 자동차 앞에 섰다. 경찰은 그 장소를 사건 현장이라고 불렀다.
-현장은 사진으로 남겨뒀고, 마지막으로 더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시죠.
현장이라고 말하니 엄청난 범죄가 벌어진 무시무시한 장소인 양 보였다. 천정은이 다른 선생들과 이장과 그리고 소사를 앞에 두고서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내가 한 짓은 눈 앞에서 본 듯 자세하게, 나에게 했던 짓은 두루뭉술하게. 말을 하면서도 점점 감정이 격양되어 목소리가 자꾸 커졌다. 결국 끝에 가서는 왁왁대기 시작했는데 경찰은 말리지 않았고 발언권은 천정은에게만 있어서 나의 변론 시간이 왔을 때에는 내 입장까지 완전히 정리된 후였다. 정확히 기억나는 건 ‘그럼 그렇게 하시죠.’라는 경찰의 마무리 대사 뿐이었다. 싸움은 알아서들 하고 정리된 결과만 거두어가겠다는 말이었다.
-선생님이 먼저 그랬잖아요….
-뭐? 너 뭐라고 했어.
-당신이 먼저 그랬잖아! 씨발!
나는 분개하여 식식댔다. 모두가 날 쳐다봤고 경찰은 잽싸게 말렸다.
-자, 그만 하시죠 선생님. 너무 화 내시는 것도 보기에 안 좋습니다.
어느새 모든 선생님들이 모였고 학생들도 쓰레기통을 비우는 척, 청소도구를 가져다 놓는 척 모여들어서 보고 있었다. 이런 구경거리를 놓칠 수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천 선생님, 무기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제가 들어봐도 될까요?
김숙이었다. 그녀는 그간 자리를 비웠다가 한동안 조용히 지냈다. 서리태가 떠난 일이나 항간에 도는 소문이 그녀를 위축시켰을거라 짐작할 뿐이었지만. 이름이 외자인 게 여전히 신기해서 김숙은 세 칸짜리 성명칸에 가운뎃 칸을 비울까 끝칸을 비울까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내가 하는 말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는 것인지 당황스러울 뿐이라서 애처럼 울어버렸다. 난 애였으니까.
-그래 그래, 말해보렴. 왜 그랬니?
누구도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들어줄 사람도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면, 세상이 크게 뒤바뀐다. 하지만 본인은 그 사실을 잘 몰라서 겸연쩍게 받아들이고 못 들은 척을 먼저 한다. 적응하는 것에 시간이 걸린다. 듣지 않을 말을 무작정 쏟아내는 때와는 다르다. ‘이 사람은 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차올라 더 정성을 들여야지, 할 수 있을만큼 예쁘게 꾸며야지. 이런 마음은 말보다 앞선다. 그래서 나는 억울함과 안도감, 작은 희망 따위로 어깨까지 들썩이며 울었다. 천 선생은 말도 못 하고 우는 내게 ‘거 봐, 잘못 했으니까 말하래도 못하지.’따위로 지껄였지만.
나는 김숙의 손에 이끌려 단 둘이 교장실에 갔다. 차츰 진정이 되고 그간의 사연을 이야기 했다. 김치를 먹지 않게 된 사연, 그러니까 할머니가 담근 김치마저 먹지 못하고 게워냈던 아주 처음부터. 그리고 한 달 여 복도에 앉아 수업을 못 들은 것과 장학사가 와서 천정은을 혼내고 그냥 돌아간 것. 또 그 이후로 교실에서 당한 부당한 대우들. 분명히 나는 조리있게 말하지도 못하고 중구난방 말했을거다. 말로 나오는 것보다 튀어나오는 마음이 빨라서 갈피를 못 잡는 채로 말했을테지만 김숙은 가만히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들어주었다.
-선생님이 김치를 못 먹는다고 혼냈어요.
-그랬구나. 열심히 싸웠네.
김숙은 말했다. 내 심정을 이해해 줄 작은 대답. 사실 거기에 결과가 바뀐 건 없었다. 그러나 바뀌지 않더라도 아무 상관없을 말이었다. 서리태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김숙에게 고마웠다. 엄마로서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도 선생으로서는 훌륭한 편이었다.
어른에 대한 신뢰가 깨진 나에게 김숙은 그나마 내 삶 한복판에 등장한 어른이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나의 행동은 옳지 않다는 것을 말했고 소사가 말한 것과 무척 비슷하지만 내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잘못을 설명해 준 사람이었다.
-천 선생이 너에게 심한 짓을 했구나. 선생님이 그러면 안 되는건데….
학교 생활이 많이 바뀌었다. 학생 모두가 나를 소사의 아들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이 장착한 주둥이의 무게를 보면 여태 버틴 게 용하다 싶을 정도였다. 윗학년 중에는 아예 직접적으로 ‘어이! 소사 아들!’이라고 부르는 놈도 있었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아는거다. 이미 큰 사고를 쳤고, 난 사소한 문제로 더는 소사를 무릎 꿇릴 수 없었다. 죄의식이 가득찼다. 소사가 사고를 당했을 때, 그래서 다리를 절게 되었을 때의 기억을 모두 갖고 있었으니까 여태 놀리거나 농담으로 삼지 않았음에도 이 사건으로 ‘소사의 아들’이 된 이상 장애가 놀림에 포함되는 대우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보다 아팠던 건 송골매와의 틀어진 관계였다. 더 이상 송골매와는 이야기를 하지 않게 됐다. 내가 김숙과 단 둘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송골매는 일단 집에 돌아갔다고 했다. 다음 날 의자에 잘 앉지도 못했던 걸 보면 엉덩이에 피멍이 터지도록 집에 가서 얻어맞았을거다. 나는 겁쟁이었다. 송골매의 눈치를 가만 살피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염치가 없어서 그랬다. 이런 걸 염치라고 부르는구나. 고개를 못 들 정도로 부끄러운 것. 가면 갈수록 염치가 없어지는 게 바로 나이먹는거라고 들었는데 벌써부터 그만큼 먹은거라면 나는 앞으로 어째야하나. 우린 둘도 없이 사고를 치며 다녔지만 확실히 그 사고에서 홀로 회피한 건 나다. 그마저 제대로 피하지도 못했다. 이장 아저씨가 나를 가리켜 앞으로 저런 녀석과 놀지 말라고 했을지도 모르지만 진짜 이유는 그럴 것이다. 배신감을 쥐고 있을텐데 그걸 털어놓지도 않았으니 당연했다. 나는 겁쟁이가 맞았다.
천정은은 다른 곳으로 발령을 신청했다. 정신과상담을 받느니 어쨌느니 하는 말들이 돌았다. 선생은 마음의 치료를 받을 수 있구나. 그래서 사람들은 악을 쓰면서 공부를 하라고 하는건가보다. 그 해 담임을 맡지 않았던 민병태가 곧바로 수업을 맡았고 교실에선 매일 담배냄새가 심하게 났다. 다만 폭력은 누그러졌다. 자신도 천정은 같은 꼴을 당할까봐 겁을 내는건지, 다른 이유 탓인지 아무튼 그랬다.
누군가 복도 따위에서 나를 소사 아들이라 놀리면 여타 선생들은 ‘이 녀석들아 잡담 그만해.’ 정도로 그쳤고 유일하게 김숙 선생님만이 그 장면을 목격하면 놀린 학생을 딱 집어 사과하라고 했다. 자존감이 바닥을 기었어도 그녀가 붙들어 둔 희망은 달콤했다.
김숙이 내게 돌파구가 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허나 그런 선생도 하나 쯤 있어야 하지 않겠나. 나를 특별히 보호하는 게 아니라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보통의 선생. 교육자. 나는 김숙이 그 날 마지막으로 내게 했던 말을 내내 가슴에 품고 살았었다.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구나. 정말 기특하다.
그게 내 마지막 기특함이었을 것이다. 놀림을 당하는 게 서럽거나 한 건 아니었는데 나는 사건 이후로 소사를 피해다녔다. 소사가 나를 지키지 못했던 것처럼 나 역시 소사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나름의 최선이었다. 나와 붙어있는 꼴을 다른 놈들이 볼 때 들어야 할 험한 말을 듣고 싶지 않게 하고 싶었다. 합의금으로 이야기 하던, 서로의 입으로 왔다갔다 하던 금액이 떠올라서 ‘내가 더 커서 돈을 벌면 그 돈을 갚아야지.’ 다짐했다. 자동차의 수리비는 아마도 이장 아저씨가 지불했을 것이다. 키우던 소가 사라졌고 외양간만 남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