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운과 변고.
사람이 평생 몇 가지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면, 그게 나라면 슬플 것 같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내가 아니라면 대개 신경쓰지 않고 넘긴다.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누구라도 원하는 기도가 아닐까. 할머니는 병을 달고 사는 나이가 따로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거기 도달했다고도 말했다. 무병장수는 물 건너가서 유병장수 하고 있다 했다.
-아이고, 늙으면 죽어야지.
할머니는 죽을 때를 놓친 사람같이 굴었다. 뱉는 말과는 다르게 정말 열심히 살아왔는데 하다못해 밭을 메더라도 남들보다 한 두 시간은 손이 빠르고 고사리를 캐러 산을 올라도 남들보다 발이 빨랐다. 내가 본 사람 중 사는 것에 가장 진심이었다. 내심 죽고 싶어서 늙은 몸을 몰아붙이고 있는데 내가 몰라준 것일 수도 있다. 할머니가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 그런 말을 하겠거니. 할머니는 여기저기 아프다면서도 살아가기에 문제가 없는 몸이었다. 낡고 해져도 입을 수는 있는 옷처럼 말이다. 이건 비밀인데, 그냥 늙는 것에도 요령이 필요하다.
소사의 사고는 전혀 다른 결이었다. 아직 서리태가 있을 적, 그리고 모든 학생이 그 사고를 목격했다. 소사와 대화를 하다보면 나는 세상만사를 좋은 일, 나쁜 일 두 가지로 밖에 나누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혼란스러웠다. 실은 우리도 선생들도 그렇게 밖에 할 줄 몰랐다. 소사만 세 번째 세계에 그 문제들을 집어넣을 수가 있었다. 그는 그걸 묘한 일이라고 불렀다. 다리를 절게 된 그 날의 일도 그저 묘한 일이라고 말했다.
봄소풍이었다. 소풍은 매 해 봄마다 읍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를 오르는 것이었다. 으레 그런 곳에 담긴 전설은 시시하고 반복되는 것이라 전부 외웠다. 한참 서울에 대한 환상이 가득 찬 우리가 이것저것 묻고 다녀서 소풍에 대해서도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럼 서리태는 놀이동산 따위를 이야기했다. 자연농원이라는 곳이 있는데 거기는 온갖 놀이기구가 있어서 봄 소풍을 가면 밥도 안 먹고 노느라 시간이 다 갔었다고. 그러나 이런 소풍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자연농원에서 동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한 송골매가 그럼 호랑이도 봤느냐고 묻자 서리태는 ‘당연하지.’하고 대꾸했다.
-이 봉우리는 예로부터 달이 쉬어가는 곳이라고 했다.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는 동안 달이 산에 걸려서 멈춰 있었다고 해. 그마만큼 경치가 아름답다는 말이지. 너희들이 이 동네에 사는 걸 행운이라 생각해라. 자, 그럼 이제 각자 편하게 챙겨온 김밥을 먹고 이따가 단체 사진 찍을 때 모여라. 해산! 아 참. 가파른 곳 가까이 가지 말아라.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겠지만 주의해.
민병태가 주임선생으로서 학생을 지도하는 말투는 걱정이나 염려가 담겨지지 않았다. 통상적이고 의례적인 대사를 뱉을 때면 너무나도 무미건조해서 살이 간지러웠다. 그래서 소풍은 한 줄로도 표현할 수 있다. <산을 올라 점심을 먹고 사진을 찍고 걸어서 돌아온다.> 한 치 바뀌지도 않는 연례행사였다. 특별한 점이라면 반마다 찍었을 소풍 사진은 늘 전교생 통째로 묶어 찍었다. 오십 명 남짓의 전교생을 위해 필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던건지는 나도 잘 모른다.
오십 명은 작아보이지만 비좁은 산길에서 한 번에 사진 한 장으로 담기엔 상당한 인원이다. 그래서 소사는 자꾸만 뒤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카메라를 들고 뒷걸음질을치다 결국 벼랑 뒤로 굴렀다. 셔터보다 빠르게 몸이 사라졌다.
소사는 우리가 사건으로 존재를 인식하게 된 사람이다. 반나절 뒤 일어날 사고를 마주하기 전까지 응당 존재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인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 날은 어쩐지 봄인데도 스산했고, 산에는 등산객 하나가 없었으며 까마귀가 울었다. 같은 표현이 소사의 사고를 예측하게 만들어주진 못한다.
그렇기에 소풍 다음 날 조회 시간이 되어 단상에 오른 교장이 표현했던 ‘어제 일어난 불미스러운 일’은 적합하지 않은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겉보기에 나쁜 일이면 일단 숨기고 보나. 어른이라면 걱정을 좀 해도 될텐데. 교장은 이어서 ‘소사 아저씨가 다리를 다쳐 당분간 못 나오게 되었으니 너희가 그 일을 마저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몇 학년은 풀을 뽑고 몇 학년은 수업에 필요한 각종 기자재를 날랐다. 그나마 덩치가 있던 고학년이 구석진 배수로에 쌓인 낙엽을 치우고 삽으로 땅을 팠다. 불만이 나오는 건 당연한 소리였다. 소사가 해야할 일을 떠맡긴 시점에서 그랬다. 귀찮고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선생들이 나서서 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냥 옆에 서서 딴짓을 못하도록 감시하고 진행상황을 확인할 뿐이었다. 일부 학생의 입에선 욕도 가끔 나왔다.
-좆 같네. 이걸 왜 우리가 해야 돼?
그 좆 같은 일은 소사가 도맡아 하고 있었다. 발끈하여 덤벼들 뻔 했지만 민병태는 곧바로 말을 주의하라고 했다. 나는 운동장에 튀어나오는 풀을 뽑으며 소사는 이런 일도 하는구나 하고 알게 됐다. 보는 것만으로 다 알 수 없는 수많은 일을 그는 해결하고 다녔던거다.
일 주일 정도가 지나 소사가 학교로 돌아왔을 때 볼 멘 소리를 준비하고 있던 많은 학생들은 불평의 목소리를 단 한 마디도 낼 수가 없었다. 그는 아직 깁스를 풀지 못했고 다리 뿐만 아니라 골반까지 이르는 큰 부목을 차고 있었다. 더불어 싸구려 목발을 짚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 감히 뭐라할 수 있는 못된 인간은 없던 것이다. 그가 과연 일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그가 하던 일을 당분간 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양호실의 침상 하나를 소사가 차지해 누워있었다. 어차피 침상은 둘이었고 구색만 맞춘거나 다름없어 학생들이 쓸 일은 없었다. 선생님들이 소사를 위해 주먹밥 같은 것을 따로 챙겼는데 보통 그런 음식은 내가 갖다줬다. ‘소사의 자식’이라면 자연스레 그럴 것이었지만, 이건 천정은의 일 이전의 시간이었기 때문에 공표된 관계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일부러 송골매와 서리태를 데리고 갈 때가 많았다. 소사에게 무슨 말을 건네야할지, 위로가 될지 그보다는 여럿이 함께 왔다는 사실이 더 힘이 될거라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쑥쓰러워서 그랬던 거 같다.
점심시간에 양호실 문을 똑똑 두드리면 소사가 안에서 짧게 ‘예’하고 답했다. 교무실이나 교장실에 들어갈 때도 모두 ‘들어오세요.’라며 허락을 하는데 소사 아저씨는 그러지 않았다. 들어오세요라는 존댓말 역시 문 밖에 혹시 어른이 서 있지 않을까 상정하고 하는 말이라서 학생인 걸 알면 ‘들어와라’로 금세 바뀔 터였다. 양호실에 누워있는 소사는 스스로 누굴 허락할 위치가 아니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저씨, 많이 아프세요?
-괜찮다. 괜찮아.
-왜 병원에 안 계시고 양호실에 있어요?
이런 질문은 예의가 함유되어 있나,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질문하는 게 송골매 특유의 장점이라면 장점이었다.
-입원을 계속 하고 있으면 입원비가 많이 나온단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이 수술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상처만 소독하면 된다고 하길래 나왔다. 그보다 일을 못해서 걱정이지. 선생님들이 뭐라고 말씀하시지 않던?
-아무 말도 안하던데요. 여기 밥 가지고 왔어요. 저희도 여기서 먹어도 돼요?
그런 친화력이 필요했다. 소사는 우리가 가져온 도시락에 빈약한 반찬을 주먹밥과 나눠먹었다. 이야기를 더 해보니 소사의 방보다 침대가 나을 것이고 움직이는 데 불편할 게 뻔해서 교장이 이렇게 하자고 했단다. 어차피 하루 한 번 소독을 하려해도 양호실에 와야 하는데 거동이 힘들지 않겠냐고.
-교장이 웬일이래.
녀석은 이런 말도 할 줄 알았다. 대신 씻는 것은 혼자 해야했다. 선생 중에는 도울 사람이 마땅치 않아 씻으려면 그래도 관사에 돌아가야만 하는데 목발을 짚고 차근차근 몸을 옮겨야 한다고 한다. 다행히 덥진 않으니 매일 씻지 않아도 괜찮다면서 그는 웃었다.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예의는 서리태가 맡았다.
-너희는 공부해야지. 아저씨는 괜찮다.
그래도 송골매가 돕고 싶다 강경하게 우기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그러겠다고 했다. 우리는 며칠에 한 번, 학교가 끝나고 난 다음에 양호실로 갔다. 소사는 우리보다 키가 한참 커서 부축에 전혀 쓸모가 없었지만 씻는 걸 도울 순 있었다. 소사는 쌀을 담던 깨끗한 포대를 이미 구해놓은 터라 우린 물이 안들어가도록 허리춤에 테이프를 감아주는 것만 했다.
소사가 바지를 벗자 상처가 보였다. 아물고 있는 피부와 송골매가 민병태에게 엉덩이를 맞았을 때보다 더 시퍼렇던 멍은 보기만 해도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이게 수술을 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상처인지 의심했지만, 의사들은 똑똑하니까 의사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겠지 그리 생각하고 말았다. 소사가가 씻는 시간이 몸을 헹구는 것과 다름없다시피 할 정도로 빨라서 우리는 수건을 건네고 포대자루를 바깥에 걸어 말려두면 할 일이 끝이었다. 그는 빠짐없이 매번 고맙다고 말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누추한 인사였다.
천운과 변고. 사람들은 그리 말했다. 그렇게 가파른 절벽에서 굴렀는데 나무에 걸리다니 천운이라고. 아이들 사진을 찍겠다고 용을 쓰다 다쳤으니 변고라고. 천운이나 변고나 결과는 같았다. 소사는 다리를 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