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없는 호의는 없다

라면 한 그릇.

by 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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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에는 막걸리를 사러 자주 갔다. 내가 마신 건 아니고 종종 할머니가 사오라고 하면 그 때마다 샀다.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지 않으면 방도가 없어서 막걸리를 사 오라는 말은 학교 앞 구멍가게에 다녀오라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술을 마실 깜냥이나 배포가 있던 것도 아니라서 난 얌전히 술을 사다 날랐다. 할머니가 시켰다 하면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막걸리를 한 통 줬다. 다른 아이들도 술 심부름을 덧없이 했다.

할머니는 매번 외상을 달았다. 샀다는 건 금액을 지불한다는 말인데 할머니 이름으로 무섭게 쌓인 외상금을 보면 이걸 산건지 빌린건지 어려워졌다. 담배를 잔뜩 외상한 김씨 아저씨, 두부나 계란 같은 식재료를 외상한 고씨 아주머니. 모두가 외상을 했다. 구멍가게 주인 아줌마는 땅을 파서 장사하는건가?

-막걸리 이제 금방 오니까, 잠깐 앉아서 기다려라.

아줌마는 내게 사탕을 하나 주며 말했다. 이대로라면 구멍가게에 정말 구멍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난 넙죽 받아먹었다. 아주머니는 여러 공산품과 더불어 술과 음식도 팔았다. 국수를 삶거나, 간단하게 라면을 끓이거나. 지금 생각하면 판매 허가가 있었는지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데 법과 제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건 고작 어른스러움의 증거라서 나는 도덕과 윤리만 생각했다.

알 턱이 없었으니 아무 문제로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도덕과 윤리를 제치고 최소한의 규범만 재는 게 어른이라면 어른은 정말 얍삽하지. 최소한에서 어긋나지 않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거기까지 미칠 생각을 구멍가게의 국수와 라면으로 하고 싶지는 않다. 아무튼 아주머니가 끓인 라면에는 달걀이 들어가 있고 공깃밥 한그릇이 같이 나온다. 먹음직스럽다.

중년 남자 둘이 주말 대낮부터 구멍가게에 앉아 소주를 먹고 있는 장면은 낯선 게 아니었다. 라면은 이미 각자 한 그릇씩 얼렁뚱땅 때려넣고 구운 오징어에 마요네즈를 푹푹 찍고 있었다. 아주머니가 도대체 무얼파는지, 메뉴는 있는건지 궁금했다. 가격은 모조리 외상일테지만 먹는 데 눈치가 있진 않았다. 난 막걸리를 기다리면서 평상에서 발을 차고 있었다.

-네가 무기냐?

-네.

둘이서 쑥덕대더니 대뜸 하나가 내게 건넨 말이다.

-이제 몇 학년이냐?

모르는 사람들이 말을 걸면 무섭지만 곧장 대답한다. 할머니와 아는 사람일까. 아니면 할머니가 빚을 진 사람일까.

-하이고, 그래 시간이 벌써….

아저씨들은 다시 쑥덕댔다.

-아줌마, 여기 라면 하나 주쇼. 밥도 많이 퍼서. 이건 아저씨가 살테니께 여기 옆에 앉아서 찬찬히 먹어.


이 세상에 이유없는 호의는 없다. 그러나 난 이유가 있더라도 호의를 마다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럴 처지가 아니었다고가 더 정확하다. 당할 일을 생각하면 겪는 걸 고민할텐데 거꾸로였다. 일단 겪고 나서 내가 당할 일이 어느 정도 될런지 생각하곤 했다. 얼추 감당되면 그렇게 하고 무리라고 느껴지면 외면하면 된다. 몰염치한 일이라도 어쩔 수가 없다. 라면 한 그릇이 뭐 그렇게 대수냐 싶어서 나는 숨 쉴 틈 없이 라면을 먹었다. 라면에서 함께 익은 반숙 계란은 고소하고 달고 보기에도 참 예쁘다. 아주머니가 라면집을 한다면 잘 되리라 믿지만 그렇다고 라면만 팔면 우리가 먹을 게 없다. 나는 쫀드기도, 사탕도, 과자도,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다. 그 때 내가 받은 용돈이라고 해봐야 뭘 제대로 사먹을 수 있겠냐만은.

남자들은 내가 먹는 걸 보며 술을 마셨다. 그래도 함부로 술을 권하지는 않았다. 술 심부름은 잘 시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진실 따위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투로 툭툭 말했다. 화투판에서 누가 소를 걸었다가 잃었단다, 누구랑 누구가 바람이 나서 야반도주를 했단다, 읍내에서 누가 누굴 죽였단다, 버스에서 내린 학생이 길을 건너다 치였댄다. 무성한 소문들이었다. 아저씨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인해 소문들이 무럭무럭 자라는 기분이었다. 진짜도 있고 아니면 말고 식의 대화는 종국에 모두 같은 대답으로 마무리 됐다. ‘아따 참말이여.’

-아 맞어, 소사 아저씨가 절벽에서 떨어졌다믄서. 좀 괜찮으냐?

이야기할 소문이 다 떨어진 것 같을 때 아저씨들은 내게 말을 걸었다.

-돌아다니시기는 하시는데 괜찮은건지 저도 잘 몰라요.

-니가 모르면 누가 안다냐.

-씁. 그러지 말어. 애잖여.

말을 한 마디 할 때마다 그들에게서 술냄새가 났다. 둘 다 소사처럼 얼굴이 발개져서는, 나는 내가 이 사람들에게 뭘 알려줘야 하나 모르겠어서 아주머니를 한 번 쳐다봤다. 아줌마는 심드렁하게 티비를 보고 있었다. 방 안이 훤히 보였다.

-며칠 병원에 계시다가 퇴원하시고 양호실에 누워 계셨어요. 다른 선생님들이 주먹밥을 가져다 줬고요.

-하이고… 그거 치료 잘 해야 할텐데. 그래서 그렇게 됐는가.

그렇게 됐다는 건 불구가 된 걸 뜻하는거다. 어느새 발 빠르게 말이 돌았는지, 아니면 오며가며 소사가 일하는 모양을 봤는지 모르겠지만 이 남자들은 알고 있었다. 난 이들이 어디쯤에 사는지는 대충 알아도 이름도 모르고 누구의 삼촌이다, 친구다 하는 정보도 일절 없었기에 아저씨라고 밖에 못 부른다. 아이들마저 처음 만나면 이름을 먼저 묻고 난생 처음 들은 영어 수업에서도 하우 알 유? 앤 유? 왓츠 유어 네임? 이 순서대로 나오는데, 동네의 어른들은 왜 죄다 순서가 없는건지 의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미 나에 대해서는 전부 알고 있으니까. 대신 너는 우리에 대해 알 필요 없고.

-그러니까 네가 이무기 아니냐. 할머니랑 저 사과밭 뒤쪽에 창고 살잖여. 불 났을 때 나도 가서 바께쓰로 물 엄청 퍼 날랐어.

-아이고 그랬지 맞어. 난 늦게 나와가지고 불만 그득하길래 송장 치우는 줄 알았다.

-그런 거 보면 집이란 게 암만 잘 지어놔도 의미가 없는겨. 그래 홀랑 타버리는 것도 삽시간이랑께.

이 사람들은 내가 당신들에게 진 빚이 있다고 말하는건가. 살아남은 건 할머니와 마침 읍내에 다녀와서, 할머니가 목에 끼얹어진 불길을 참아내서 그런건데. 집이야 물을 뿌렸던, 뿌리지 않았던 다 타버리고 없다. 옆 집에 옮겨붙을까봐 죄다 나와서 물을 뿌려댄거지. 창고에 살게 된 것을 말하는건가? 빚을 졌다면 진 게 맞겠지만 할머니는 서리태와 김숙이 이사 온 덕택에 갚을 수 있었다. 거기다 수시로 품앗이를 하고 남의 경조사를 쫓아 음식하는 일이라도 도우며 버텨냈다. 이마만큼 소문을 낱낱이 아는 사람들이 수도도 끊고 문도 잠그고 한 일을 모를리가 없었다. 도왔거나 모른 체 하거나 둘 중 하나다. 다른 이의 의견에 편승했더라도 모든 게 인간의 도리라서 그 죄책감을 라면으로 무마하려면 고작 한 그릇으로는 택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씨 그건 그 날도 안 왔지?

-코빼기나 비쳤겠나. 그래도 어미가 있으니 제 딴에 속이 쓰렸을텐데.

-아휴, 정말 되먹지 못한 것들 때문에 이게 뭔 사단인지 원. 노인네도 노인네인데, 이 씨한테 그런 말 하면 안되지. 우린 알잖나? 노인네가 자식새끼 키워놓고 말아먹은거나 다름없어도…. 전부 자기 업보인겨. 이 씨가 뭘 잘못해서 소사로 내쫓겼느냔 말여.

-그만 혀. 그런다고 달라지는 게 있겠는가?

-답답시러워 그라지. 천생 여자라곤 손 한 번 못 잡아봤을 사람헌티 그리 뒤집어씌워서 되겠느냐고. 거기다 지 어미도 안 믿어주는 걸 떠들어봤자 누게 믿겠느냐고.

-소사 일이라도 그냥 시켜 준다니까 그렇게 산다잖어. 미쓰 김이 나쁜 년이지. 동네에서 애비가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 없는데 애를 떡하니 놓고 니 새끼니 알아서 키우라고 한 게 제정신이 아녀.

-처신을 잘 했어야 했는디, 거 동네 것들 다방 맛들리게 한 것도 자네 아녀?

-염병, 또 나한테 지랄이네. 알면 가서 멱살이라도 잡지 그랬는가? 그 때는 나서지도 않아놓고 이제와서 그러면 뭐 나아져?

-다른 일은 다 말릴 수 있어도 부모 자식 간에는 끼어드는 거 아니라잖여. 또 동네 시끄러운 일이 한 둘이냔 말이야. 무슨 일만 있으면 우르르, 저런 일만 있으면 우르르. 더러운 일은 죄다 모른 척 하기나 하고. 나도 내 손에 피 묻히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여. 그래도 하느님이 있으면 그람 안 되제. 나쁜 일 있으면 좋은 일 와야 하는건디….

소사? 미쓰 김? 이 사람들은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말과 다르게 입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 내가 물어보길 기다리는건가. 거기서 어떤 기분을 느끼고 싶길래? 둘의 기대하는 눈초리를 살폈다. 잠자코 있던 구멍가게 아줌마가 상황을 멈췄다.

-아유 듣자듣자 하니까 정말. 술 처먹었으면 곱게 집에나 가 이 양반들아. 그리고 애들 듣는데 말 좀 조심들 해.

애들? 서리태와 송골매가 있었다. 왜 거기 있었느냐면, 집에서 무언가 밭일을 시킬 낌새가 보여 송골매가 가까운 서리태의 집으로 도망을 갔고 그래서 나를 찾으러 하가리에 갔더니 구멍가게에 심부름을 갔다기에 찾아 왔다고 한다.

구멍가게 아주머니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아저씨들을 내보냈다. 그들은 모자를 고쳐쓰고 허리춤을 고쳐잡았다. 바깥에 서니 얼굴이 확연히 붉었다. 술이 오른 사람들, 그 사람들이 옛날 이야기를 한다. 둘이 떠드는 동네의 무성한 소문들은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온갖 소문들이 번갈아 서로를 주인공으로 삼고 결말까지 내달리고 있었으니까. 어른들에게는 이야기가 부족한 모양이었다.

아이고 불쌍한 녀석. 저는 불쌍하지 않은데요! 그렇게 대답할 수도 있었다. 그들이 원하는 침울한 형상을 얼굴에 띄워 동정을 줄 수 있게 만들기가 싫었다. 그래서 모르는 척 명랑했다.

-허! 그래 안 불쌍하다 이놈아. 라면이나 마저 먹어라.


아주머니는 이제 마당에 물을 뿌렸다. 평상 위로 걸터 앉은 아주머니가 별 말 없이 부채질을 하고 있어서 나는 막걸리가 언제 오나, 할머니는 오늘 일이 없다던데 계속 집에서 누워 날 기다리고 있을까 싶었다. 송골매와 서리태는 못 들은 모양이었다. 들었지만 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들었는지, 그렇다고 모르는 부분을 내쳐 말하기엔 아는 게 없었다.

-배가 좀 차냐.

먼저 말을 건넨 건 아주머니였다.

-네 맛있어요.

-학교는 즐겁냐.

-그냥 그래요.

-그러냐.

싱거울대로 싱거운 대화였다. 아줌마는 혼자 살았다. 아이도 없고 남편도 없다고 했다. 그 정도는 아이들 사이의 소문으로도 알 수 있었다. 세세한 사연을 아까 전의 아저씨들만큼은 모를테지만 어쨌든 혼자 사는 아줌마였다. 그래서 이 구멍가게의 역사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학교 앞 구멍가게 주인은 송골매의 꿈이었다. 주인이 되면 주구장창 오락을 할 수 있을거라면서. 꿈이 무엇인지, 어떤 게 보다 나은 미래인지 판단하기보다 우리에겐 어떤 어른이 가장 즐거울까 고민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그러나 내가 본 아줌마의 하루는 무척 지루해보였다. 등교할 때 아이들을 만나고, 종종 낮술을 하거나 새참 겸 끼니를 때우는 아저씨들을 상대하고, 하교하는 아이들을 다시 만나면 끝일 그런 하루. 거기다 더하면 담배를 사는 잠깐의 사람들, 두부며 달걀을 사는 아줌마들이 있겠지. 더 생각하면 물건을 채워주러 올 사람들이 있겠지. 막걸리를 가지고 온다는 사람처럼. 그건 나보다 연약할 하루일지도 모르고 생각과 다르게 충실한 하루일 수도 있겠다. 무엇이든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그래서 아줌마는 한 가지 이야기를 시작했나보다. 옛날에 어떤 여자가 있었단다 라고 시작하는 이야기를 말이다. 우리는 서로 할 말이 없어 잠자코 들었다.


-어떤 여자가 있었단다. 이 동네 사람은 아니었어. 그 여자는 평범하게 학교를 졸업했지. 그런데 그 때는 옛날이라 여자애들을 학교에 보내주질 않았단다. 집안 어른들도 학비가 비싸다면서 아들만, 그것도 보통 맏이만 보냈다. 그래도 국민학교엔 학생이 많아서 교실이 꽉 찼지. 그래서 여자 아이들은 몇 명 없었어. 그 여자는 공부를 잘 해서 중학시험에 떡 붙고는 그 후로 장학생을 도맡아 했는데도, 그래도 여자를 고등학교에 보내주진 않았다. 그게 불만이었던거야. 아마 그게 여자의 평생 한이었을거다. 선생들이 조금쯤 도와줬더라면, 부모에게 가서 한 마디라도 해줬더라면 삶이 다르게 흐르지 않았을까 생각했지만 그게 뭐라고. ‘여자가 공부 배워서 얻다 쓰냐’가 입버릇처럼 여자에게 들렸다. 여자는 고등학교에 가더라도 장학생을 놓치지 않을 자신이 있었지. 특히 산수는 그 여자의 특기였거든. 주판이라고 아냐? 요즘은 안 쓸텐데 수를 세는 물건이야 그게. 주판으로 수를 계산하는 걸 주산이라고 했다. 그 여자는 그걸 참 잘했지. 자기가 주산 대회라도 나가서 상을 타면 부모 마음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서울에 갔다. 그런데 서울이 어디냐. 안 그래도 넓은데 조선팔도 날고 기는 애들 다 모아다가 경합을 하니 스스로가 너무 보잘 것 없던거야. 문제가 어렵긴 했어도 마음을 딱 먹고 차근차근 풀어가다 나무로 된 낡은 주판알이 팅 하고, 또 다시 팅 하고 그리고 와르르 쏟아져 버렸지.

그걸 보고서 여자는, ‘아 이게 내 운명인가보구나.’ 하고 낙심을 했어. 그래 그까짓 고등학교야 입학시험도 어려웠고 학비도 없고 이젠 읍내에 나가서 잘 하는 아이들이랑 싸워야할텐데 거기서 1등을 못하면 아버지가 한 번이라도 학비를 내줄까 기대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여자는 이쁘장하니, 그래도 자기 정도면 괜찮은 선자리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생각했다. 부모는 소작농일도 했지만 아주 작게 조금이나마 자기들이 가진 전답도 있었고 밥은 빌어먹지 않고 살았으니까.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면 바로 부모는 농사를 도우라고 했겠지. 학교에 다녀오는 시간을 빼고는 여자도 새벽이나 저녁이나 일손을 도왔으니 말이다. 그런 마음을 먹더라도 정리가 쉽게 되겠니. 가뜩이나 적은 학급 여자아이들은 여상을 나와서 공장에 들어갈테고 그럼 돈도 제법 벌겠다 참 부러웠었지. 남학생들도 공장에 갈 아이가 있을거고, 공부를 살벌하게 해서 대학 문까지 두드려 볼 녀석도 있을테고. 학비가 워낙에 세서 그 촌동네에 감당할 부모나 하나 있을까말까 했을거다. 자식 뒷바라지에 집안 기둥 뽑힌다고 했을 정도니. 그맘때는 다 그러고 살았다.

아줌마가 일어서서 빈 그릇들을 정리했다. 먹고 남은 음식들이 내가 먹은 라면 그릇 안으로 죄다 섞였다. 몇 개 남은 오징어를 먹겠냐고 물어왔다. 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머니는 마요네즈를 조금 짜 새 그릇 위에 올려줬다. 오징어는 식어서 질겼다. 질겅질겅 물고 있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먹을 수 있을만큼. 그래서 하나씩으로도 충분했다. 다시 부채를 들고 나온 아줌마의 이야기를 기다리는데 가볍게 부채질을 할 뿐 뒷 이야기를 시작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물어봐야만 할 것 같아서 더 들려달라고 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어떻게 됐어요?

-그 여자 말이냐? 잘 살았지. 잘 살겠지.

학교에 가지 못하는 일이 뭐 그렇게 서러울까 했다. 난 별로 가고 싶지 않아서 학교에서 도대체 무얼 배우나 하루에도 몇 번씩 고민하는데. 송골매랑 서리태와 노는 게 하루의 전부라 기억에 남는 것도 마땅히 없는 걸 굳이 학교에서 놀아야만 하는지, 오징어는 시간이 지날수록 흐물흐물해져서 마치 내 학교생활 같다. 씹고 씹으면 먹게 되긴 하는데 이게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고 술이랑 먹으면 맛이 달라지는걸까.

-뭐가 그렇게 심통이 났냐. 아이들한테 이야기는 ‘그래서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하면서 끝나면 돼. 적당한 사람을 만나서 결혼을 하고 그냥 평범하게 살았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냐. 그 여자 이야기도 그렇게 끝나면 행복하게 잘 살게 되니까 말이다. 이 아줌마가 괜한 소리 했다고 생각하려므나.

-어른들한테는 그렇게 끝나지 않아요?

서리태가 되물었다. 아줌마는 부채질을 하면서도 땀을 흘리고 있었다. 매미소리는 아줌마가 이야기를 할 땐 들리지 않고 이야기를 멈추면 들렸다.

-여자가 집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여자의 교복, 책가방을 태우고 있었다. 밑줄이 그어진 책들이 낱장으로 흩어져 사라지고 있었다. 힐끔 돌아보고는 마저 태우는 아버지를 보곤 여자는 실망한 게 아니었을게다. 분노한 것도 아니었겠지. 사람은 자기가 애써 노력한 어떤 시간이 싸그리 부정당했다고 느껴지면 말이다, 욕심이 사라져. 희한하지?

그래서 여자는 조용히 들어가 짐을 챙겼다. 교복이랑 속옷이랑 양말이랑 외투 하나가 전부니까 그냥 다 입으면 됐지. 그리고 그 길로 나왔단다. 일을 하려면 어디가 좋은지도 모르겠고 공장일도 경쟁이 치열해서 만만치가 않았지. 이 동네 저 동네를 전전하면서 가까운 곳은 제 부모가 찾아낼까봐 멀리도 갔어. 돈을 벌려면 뭐든 해야했지. 그런데 사람이라는 게 말이다. 배우지 못하고 기회가 없으면 험상궂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게 돼.

아줌마는 우리의 눈치를 봤다. 이 놈들에게 다음을 들려줘도 되는건가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흘러흘러 어쩌다 시작한 다방 일이 잘 됐다. 여자는 보온병에 커피를 타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자기가 스스로를 생각한 것처럼 반반한 얼굴이어서 사내들이 다 좋아했단다. 눈요기를 시켜주면 돈을 받고 불려다니고. 너희도 알만큼 알잖냐. 아저씨들이 동네 구석에서 가끔 냉차 같은 거 시켜 하하호호 까불고 있는거도 봤을테고. 운이 좋으면 건실한 사람도 만날 수 있었을텐데 다방일이 참 웃기단다. 평소에는 예쁘다, 곱다 서슴치 않고 칭찬하던 놈들도 자기가 아닌 ‘누구랑 만난단다’ 그런 말이 들리면 소문을 만들어. 그래서 행실이 나쁘다고 없는 말도 지어내지. 유치하기가 짝이 없는 일이야. 그래서 여자는 만나는 사람도 없이 자주 떠났다. 돈만 주면 사람을 마음대로 굴릴 줄 아는 놈팽이들을 상대하느라 지칠대로 지쳐서.

벽에 세로로 기대어진 박스에는 ‘유통기한 확인하여 식품선택 올바르게’라고 쓰여 있었다. 노래처럼 부를 수 있는 표어와 상관없이 빵봉지 매대를 뒤적이다보면 유통기한이 지난 게 있던데. 여자의 이야기는 유통기한이 아직 남았나보다. 소문이란 게 그렇다. 동네 사람들은 따끈따끈한 소문이 다 떨어지면 식어빠진 소문을 곱씹고 다녔다.

-뒷얘기가 궁금하지 않으냐?

아줌마는 부채질도 멈추고 이야기도 멈추고 가만히 있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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