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일이 아니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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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다친 사람을 구조하기에 높이가 애매한 봉우리였다. 어딘가의 산에서는 조난 당한 사람을 위해 띄운다던 헬기가 있다던데 그렇게까지 하기엔 산이 낮았고 그렇다고 다리가 완전히 부러진 사람을 부축해 내려오기엔 너무 높은 산이었다. 그래서 별 수 없이 다리를 절게 됐다고 생각했다. 병원까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졌다고 하니까. 그 날 다른 인솔 선생이 소사를 부축해 구급대를 기다리는 동안 민병태는 먼저 아이들을 이끌고 내려가겠다 했다.
-어쨌든 해가 질 수 있으니 애들을 먼저 학교에 데리고 가겠습니다.
고학년도 저학년도 구분없이 웅성웅성거렸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로 소풍이 끝났었던 기억이 난다. 소사가 붕대를 풀고 슬슬 무릎이 굽혀질즈음 민병태가 양호실에 왔다. 우리는 주먹밥을 갖다 주려다 민병태가 있는 모습을 보고 문 앞에서 기다렸다.
-아이고 시위하나 자네? 사람이 조심을 해야지. 카메라 값은 또 어떻게 변상하란 말인가. 이제 슬슬 나을 때가 안 됐나.
-죄송합니다 민 선생님. 이제 며칠이면 다시 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카메라는…. 제가 사진관에 가서 한 번 수리를 부탁해보겠습니다.
-됐어. 이미 수리는 맡겼는데 학교 경비에서 차감해야지. 그렇다고 자네가 잘 한 건 아니야. 병원비며 일하지 못한 건 어떻게 처리할건가. 일단 학교에서 내긴 했는데 혹시 보험이라도 들어둔 게 있어?
-아뇨, 딱히…. 그래도 작지만 모아둔 돈이 있어서 그걸로 변상할 수 있을 겁니다.
-허, 그 돈이 얼마나 되는 줄 알고? 교장 선생님은 됐다고 하는데 사람이 염치가 있으면 어떻게 선물이라도 챙겨드려봐. 학생들도 얼마나 놀랐겠나. 그리고 일을 이제 하지 못하거나 하면 학교 입장도 곤란해. 자네를 더 쓰는 것도 아마 말이 나올걸세.
-예…예…. 민 선생님 말씀 무슨 뜻인지 압니다. 다른 선생님들께도 말씀 좀 잘 부탁드립니다. 미뤄진 일은 제가 다 해 놓겠습니다.
-참내, 이 사람…. 그렇게 말하면 또 내가 나쁜 사람 되는 거 아닌가. 그냥 나는 학교 입장이 곤란하다는 말을 하러 온거야. 거, 소풍에서 사고가 났다고 하면 사람들이 학교 흉을 봐요. 그러니 얼른 쾌차해서 정상적으로 업무하는 모습을 보이면 좋겠다는 말이지…. 흠흠… 그럼 더 쉬어야겠으면 일단 쉬게. 다른 선생들 눈초리는 내 어떻게 막아볼테니.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민병태는 뒷짐을 지고 돌아나왔다. 문 앞에서 우리와 마주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민병태가 왜 다른 선생들을 대변하는지, 학생들을 들먹이는지 언짢았다. 그보다는 민병태가 대변하는 학교와 동네 사람들이 그렇게 부도덕한 민심을 지녔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선생들은 소사의 사고에 대해 별 생각이 없어보였을뿐더러 학생들도 안타까워하는 게 보통이었으니까.
학생들은 목발을 짚으며 돌아온 소사를 보고 여론이 몽땅 바뀌었다. 아픈 건 누구나 아니까, 그리고 크게 다쳤다는 게 한 눈에 보여서 그랬다. 후에, 아저씨가 부목과 붕대를 풀고 학교를 돌아다니는 모습이 다리를 저는 것으로 바뀌었을 때 안쓰러운 그 마음이 더 커지기도 했다.
-아저씨, 아니에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해요.
나는 들어가자마자 말했다.
-맞아요. 누가 그래요. 민병태가 괜히 그러는 거예요.
송골매도 주먹밥을 꺼내며 거들었다.
-아니다. 민 선생님 말이 맞다. 너무 오래 쉬었다. 이제 일을 해야지.
-학교 일을 하다가 다친건데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서리태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말은 저렇게 하셔도 이미 다 처리해 주셨다. 직접 병원에도 태우러 오셨었고.
-그럼 왜 저렇게 말하는거예요?
-어른이라 그렇지. 너희는 아직 잘 모를거야.
우리의 염려는 아랑곳없이 소사는 이틀 뒤 붕대를 풀고 다리를 조금 절뚝거리며 빗자루를 목발대신 챙겨 돌아다녔다. 원래대로만큼 빠릿하게 하진 못했어도 대신 시간을 더 들여 평소 하던만큼의 일을 해냈다. 허나 민병태에게는 그 모습이 마뜩찮았는지, 사사로이 시비를 거는 모습이 더 자주 보였다. 자신이 퇴근할 시간까지 일을 마무리 하지 못했는데 아무튼 퇴근은 해야겠고 자기가 보지 않으면 일을 더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탓이다.
누가 사고의 원인에 대해 물어본다면 ‘인원이 원인이에요.’라고 답할거다. 그런 말을 하면 지금 말장난하느냐고 혼이 날까. 그러나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굳이 전교생을 한 번에 찍어야 하는 단순함은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교장은 사고 당일, 왜 사진사를 쓰지 않았냐고 말했다.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라고 민병태는 답했다. 아낀 경비는 어디로 가느냐고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그 경비는 소사의 다리와 교환한걸까. 그럼 불구가 된 아저씨는?
-정말 답답하네. 아저씨 도대체 왜 이런 일을 죽어라 해요?
우리는 학년을 먹어갈수록 과격하게 말했다. 나는 그 공격성이 초등학교 중반즈음 최고조를 찍는다고 생각한다. 더 성장하면 사회성을 형성하여 주변 상황을 살피게 되고 더 어리면 겁을 더 많이 먹으니까. 반응과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는 순수한 공격성. 더군다나 악의가 없는 공격성이다. 입이 험해지는 건 시기에 따라 달랐지만 당시 우리에게는 어렵지 않은 표현이었다. 그건 소사가 나쁘다는 말이 결코 아니었다. 안타까움이 커서 한 걱정의 표현이었다. 얼마나 서툴렀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할만큼.
-이렇게 된 건 사고였단다. 누구 잘못이나 책임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야.
소사는 호미질을 하다 말고 우리를 올려다 봤다.
-이렇게 했더라면, 저렇게 했더라면 하는 이야기는 다 쓸모가 없어. 후회하는 건 시간낭비일 뿐이지. 너희도 얼른 들어가서 공부하렴. 지금 공부 하지 않은 걸 후회할 수도 있으니까.
-아니, 다친 건 그렇다 쳐요. 그런데 그걸로 아저씨 괴롭히는 건 괜찮은 일이에요?
-그만해.
분에 차서 말하는 송골매를 서리태가 말리고 있었다.
-민 선생님은 자기 할 일을 하는 거란다. 나는 내 할 일을 해야 하고. 묘한 일이지.
-나쁜 일이 아니라요?
내가 말했다. 이게 나쁜 일이 아니면 도대체 뭐가 나쁜 일인거냐고.
-그래, 묘한 일이지. 반대로 사진사가 따라왔다고 생각해봐라. 나 대신 그 사람이 떨어졌더라면? 너흰 착한 사람한테만 복이 온다고 배웠을거야. 그래서 착하다 생각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쁘다 생각한 사람은 벌을 받고. 그런데 살다보면 이 세상에 착하기만 한 사람과 나쁘기만 한 사람은 없어. 어떤 이한테 착한 사람이 다른 이에겐 나쁜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고 이로운 일이 착한 사람에게만 가라는 법도 없다.
소사가 다시 호미질을 시작했다. 풀이 손 대는 족족 뽑혀나갔다.
-소풍 때 간 봉우리에서 들었지 않니. 평화롭고 고즈넉해서 그 언덕에는 달조차 쉬어간다고. 선녀들이 나한테 좀 쉬라고 했던 걸수도 있어. 그렇게만 생각할 수 있으면 묘하다. 참 기묘한 우연이지. 인생이 기구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오묘하련다. 그래도 이렇게 날 생각해주는 학생들도 있다는 걸 알았잖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사는 미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싫었으니까. 무엇보다 성실한 사람이고 그걸 반박할 사람은 없었다. 생각하기로나 말하기로나 상과 벌이 나뉘어 있다해도 돈은 현실이니까. 할머니가 늘 돈이 없어 그렇다고 했다는 것처럼. 그럼 정의는 언제나 돈으로만 향하는 것 같은 게 난 싫었다. 적어도 나에게 정의가 한 톨도 남아있지 않다면 말이다.
-민 선생님은 내가 곤란할 때 유일하게 내 말을 믿어줬던 사람이다. 그게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일지 몰라도 말이야. 그건 약점을 잡힌 거랑은 사뭇 다르단다. 그래서 너희가 양호실에서 나쁜 의미로 들었을 말들이 사실 내 처우를 생각해서 해 준 말이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어.
더 이상 그 날에 대해 따지는 일은 없었다. 대화가 유익했느냐면 제법 그런 편이었다. 나쁜 일도 세상이 무너질만큼 나쁜 일이라고 좋은 일도 세상을 일으킬만큼 좋은 일이라고 단언하지 않게 됐으니까. 모든 것은 종료된다. 탈무드만 읽어도 나올 법한 단순한 진리를 어렵게 배운 셈이었다.
궁금한 것은 이 세상에 오로지 나쁘기만 한 인간과 좋기만 한 사람이 실존한다는 거였다. 민병태가 하는 꼴 중 좋게 보이는 것이 없어서 그랬다. 소사 아저씨가 정말 지독한 약점을 잡혀서 그럴 거라는 생각으로만 흐르고 말기에, 나는 그 진위를 찾고 싶었다. 어린 내 마음으로는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걱정 마. 괜찮을거야.
서리태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