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대한 희미한 희망 따위를 내게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변기위에서 볼일을 보며 앉아있는데 어디선가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났다. 벌레라면 치가 떨릴만큼 보아왔기에 놀라지는 않았다. 거미는 움직였다. 어떻게 들어왔는지 알아내려는 것처럼 뻘뻘 기어서 벽을 타고 한 바퀴를 돌았다. 수챗구멍을 지나, 세숫대야를 지나, 변기 뒤까지 돌아서 다시 원래의 자리까지 한 바퀴. 생각보다 빠르네. 그렇게 생각했다. 볼일을 오래 본 것도 아닌데 화장실을 한 바퀴나 돌다니. 내가 볼일을 마치고 일어서서 걸음으로 재면 두 걸음이나 세 걸음 정도 될까. 물론 동시에 발을 딛어보자 하면 거미보다 빠를테지만, 거미는 화장실을 벗어나갈 길을 찾지 못한 것 같다. 나는 알고 있다. 문을 열고 나가면 되는 쉬운 길.
거미에게 화장실은 얼마나 거대할까. 거미의 크기와 화장실의 크기가 대략 몇 배 정도, 만일 거미가 나라면 비슷한 비율의 공간은 어느 정도려나. 집? 그보다는 크겠지. 화장실에 거미줄을 친다한들 얼추 구석에다 적당한 크기로 꾸릴 모양이고 그렇담 집의 몇 배 쯤. 아 나는 그 정도의 공간을 안다. 나는 거미와 처지가 같나.
이제 거미는 자신이 나갈 수 없다는 걸 깨달았는지 모서리에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았다. 죽은걸까. 죽은 척을 하고 있는걸까. 나는 볼일을 마치고 자연스레 휴지를 조금 풀어 거미를 눌러 죽였다. 몸이 찌그러졌는데도 다리가 꿈틀거렸다. 살아있었다.
서리태는 떠났고 송골매와는 멀어졌다. 그런데도 학교는 끝나지 않았다. 어울리는 사람이 없어도 생활은 크게 위태롭지 않았다. 도리어 얌전하게 생활했고 도서관을 자주 갔고 종종 다른 학년으로부터 들려오는 사건사고를 들었다. 그제야 인터넷이라는 게 생겼던 것도 같다.
-정부에서 이번 신년 계획한 전국 인터넷 보급률이….
같은 뉴스가 들려왔다. 쇠창살로 막힌 낡은 과학실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 여러가지 선을 깔고 연결했다. 뒤죽박죽 복잡하게 얽힌 수많은 전선은 모두 제자리가 있었다. 철컥철컥 회로와 기판이 맞물리는 소리가 난 뒤 다시 우르르 사람들이 떠났다. 새로운 수업이 신설됐다. 이메일 회원가입을 하는 교육. 타자 연습을 하는 수업. 뒷자리에서 앞을 바라보면 아이들의 화면은 컴퓨터에 깔린 기본 게임들이 먼저 켜져 있었다.
-아이디를 만들어 봅시다. 자기 이름을 치고 그 옆에 생일을 붙이세요.
그래야 외우기가 쉬우니까. 강아지 사진을 찾아서 서로 메일을 보내봅시다. 그런 말이었다. 기괴한 사진을 보내는 장난과 게임을 하다 걸리는 시간이었다. 덩달아 읍내에서는 타자를 빨리 치는 것으로 승부를 겨루는 대회가 종종 열렸다. 손가락이 빠른 아이들은 학년 별로 선생님에게 뽑혀 읍내까지 나갔다.
-대회에 나가면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을 수 있대.
나는 열심히 타자연습을 하기로 했다. 햄버거를 먹을 수 있고 그깟 상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상을 타면 누군가 자랑스러워 해줄 사람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주로 편하게 읽던 책을 가져다가 백지를 열어 썼다. 열심히 메모한 파일을 저장하고 가면 자꾸 누군가 지우는 통에 앞 부분을 넘길 수가 없었다. 몇 번 시도했지만 그런 경우가 다반사라 어느 엉터리 같은 놈이 심술을 부리나 싶었다.
<나는 신비로운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우연히 인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난 어떤 무엇. 어느 시점에서 멈춰 만족하느냐 도달점을 어디로 잡느냐 하는 고민을 안고 사는 게 인간의 본질일 것이라 나는 생각한다. 동물이나 다름없는 삶을 살아왔기에 스스로가 언제나 인간 미달이었다. 다만 감추려는 것이 많은 탓에 ‘무언가’정도는 이루었다. ‘무마하는’, ‘모면하는’, ‘벗어나는’, ‘헤집어두는’. 구색을 맞추는 일에 연연하여 위기를 탈출하는 일에 몰두했다. 하물며 신비로운 구석이 없다면, 인간이라 불리울 것은 무엇이냐. 진한 커피 한 잔에도 난 내내 생각할 수 있다.>
이미 다 외워버린 앞 문장을 수월하게 적으며 그래도 실력은 늘었다. 같은 문장을 반복적으로 쓰다가 오기가 생겨, 시간 안에 얼마나 많이 쓸 수 있는가 임계점을 찍고 오는 반복이었다. 몇 안 되는 학교들이 작은 읍내로 모여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는 우렁찼다. 부서질 듯 소리를 내며 키를 누르는 사람들이 재빠르게 무언가 적어내려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만.’ 손을 떼라는 말에 모두 손을 떼고 어디까지 적었는가를 살피면 끝이었다.
낡은 롯데리아에는 사람이 없었다. 새우버거라는 걸 시켰다. 햄버거에는 햄이 들어가야 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 새우가 들어간 버거를 햄버거라 부르나 궁금해서 시켰다. 콜라를 못 먹는다고 말하니 김숙은 그럼 셰이크가 어떻냐고 했다. 추가 금액이 있으신데요. 네 괜찮아요 변경해주세요. 직원과 그런 대화가 오고갔다.
김숙과 단 둘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선배 둘과 함께 왔지만 선배들은 읍내에 온 김에 둘러보고 알아서 버스를 타고 가겠노라 하며 각자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갔다. 햄버거를 생각한 나와 다르게 수업 반나절을 넘길 수 있다는 그 자체를 중시하는 듯 했다. 대회 결과는 입선, 장려상, 우수상이 고르게 나왔는데 나는 입선 열 명 안에 들었다. 학년 별로 따진다면 대회에 참여한 거의 모두에게 상을 주는 모양이었다. 응원과 지지의 형태로 말이다.
-더 비싼 메뉴를 시켜도 되는데. 먹고 부족하면 더 말하렴.
5천 원 남짓한 메뉴들을 두려워한 걸 알아챈 김숙이 말했다. 민병태에게 줬던 만 원이나 송골매의 엄마가 봉투에 넣은 10만 원. 돈의 가치를 생각하면 괜히 두려워져서 누군가 나에게 그만한 돈을 지불한다는 일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에 눈치를 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숙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자기는 빵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져서 잘 먹지 않는다고 신경쓰지 말라고 말했다. 콜라와 비슷하게 생긴 검정색 물. 그리고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냥 콜라를 덥힌 게 아닌가 생각될만한 음료였다. 동네 아저씨들도 다방 이야기를 할 때 커피를 마셨다고 했지. 종종 지나가다 본 보온병의 그것은 갈색이었는데 모두 뭉뚱그려서 커피라고 하는걸까.
-선생님, 죄송한데. 저도 그거 한 번 마셔봐도 될까요?
-이건 커피야. 너한테는 엄청 쓰게 느껴질텐데….
-알아요 커피. 책에서 봤는데 너무 궁금해서요.
김숙은 조용히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내 말은 그저 한 모금 맛을 봐도 되겠냐는 의미였지만 그녀는 한 잔을 온전히 가져와 내게 건넸다. 자신의 커피를 주기 싫다는 행동은 아니었을거다. 어떤 존중. 하나의 몫은 그런 생각이 든다. 물건도 사람도 행위도.
-엄청 써요.
뜨겁고 쓰고 아무 맛이 나지 않는 검은 물이 식도를 타고 넘었다. 밀크 셰이크는 시원하고 달고 아이스크림이랑 비슷한 우유였는데 커피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었다. 다시 메뉴판으로 시선을 돌리니 커피 한 잔이면 작은 햄버거를 하나 더 먹을 수도 있는 금액이었다.
-어른들은 이걸 왜 마시나… 그런 생각하지?
-네…. 그래도 다 마셔볼래요.
나는 다시 음식에 눈을 돌려 커피가 식을 동안에 새우버거와 감자튀김을 먹기 시작했다. 김숙은 자꾸 뭔가 부족하느냐 물었고 부족하지 않다고 했다. 누가 부족하지 않느냐고 물어오면 나는 지금 상황과 걸맞지 않은 부족함들이 떠올라서 기분이 나빠졌다. 아니면 커피 탓인가.
-커피를 마시면 정신이 또렷해지고 심장이 벌렁벌렁 뛴단다. 그리고 때에 따라서는 잠이 오지 않을 수도 있어. 그래서 아이들한테는 되도록 마시지 말라고 하는거야. 잠을 잘 자야 몸에 좋으니까.
-정신이 또렷해지는 건 좋은데 나머지는 괜찮은거예요?
-피곤함을 떨쳐버리려고 하는거지. 어른들은 생각할 게 많아서 그래. 너희 학생들이 생각이 없다는 게 아니라 어른들은 생각이랑도 싸우거든.
-자기 생각이랑요?
-그래. 나이가 들면 자기를 잘 못 믿게 된단다. 지난 일에 대해 잘했는지, 해야 할 일에 대해서는 잘 하는 게 뭘지. 그래서 용기를 얻으려고 커피를 마셔.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으면 더 좋고.
김숙은 커피를 천천히 들이켰다. 그녀의 말을 들어서 그런지 지난 일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간 자리를 비웠던 시간을 떠올리고 있을 수도 있다. 남편이나 서리태를. 자세한 내막이 알고 싶었지만 직접 물어본다면 실례는 아닐까. 그러나 소문 따위가 이 곳을 지배하고 있어서 믿을 말과 경계해야 할 말에 애를 쓰는 게 싫었다.
-서리태는 잘 지내나요?
-그렇겠지. 종종 연락을 한단다. 선생님이라서가 아니라 엄마로 말이야.
-선생님이라서 연락할 때도 있겠네요.
창 밖을 보기를 관두고 나를 보는 김숙의 눈에는 어떤 감정이 얼핏 서려 있었다. 내가 모르는 종류의 감정일 것이다.
-이태는 선생님이 미울거야. 밥도 제대로 못 차려주고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소풍 도시락이며 운동회나 참관수업이나 이런저런 행사에도 못 갔으니까. 선생님은 선생님으로만 살았지. 이태 엄마로는 살지 못한 것만 같다고 생각을 해. 여러모로 부족한 엄마였어. 그렇다고 선생님으로는 잘 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 드네.
내 자리에 놓인 커피는 이제 더 이상 사납게 김을 뿜어올리지 않았다. 단숨에 커피를 들이켰고 예상만큼 쓴 상태였다. 그녀의 말대로 심장이 자꾸 벌렁벌렁 뛰었다. ‘잘 살고 있겠지.’ 구멍가게 아주머니도 김숙도,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지에 대해 깨닫고 난 뒤였다.
-서리태는 선생님을 미워하지 않았어요.
사람은 나서지 않더라도 해결될 일을 알지만 해결되지 않더라도 나서야만 할 순간이 있다. 나는 적어도 그 순간이 지금이라고 여겼다.
-오히려 좋아했고, 때로 섭섭해하기도 했는데 티는 안 냈고요. 그런 선생님이 세상에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그랬을지도 몰라요. 똑똑한 녀석이었으니까…. 도리어 아버지랑 여기저기 전학을 다니는 걸 더 싫어했어요. 서울이 좋다고 말했긴 했어도 상가리에서 이렇게 길게 있던 게 마음이 편안했다고 저한테는 그렇게 말을 했거든요.
거짓말이 섞여 있는 말이었다. 그래도 서리태의 본심은 분명 그랬을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누굴 미워할 법도 한데, 밉지 않다고 했어요. 자기가 모르는 어른의 사정이 있을거라고도 했고요. 또….
무언가 더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가늠할 수 있던 것과 들은 것이 거기까지였다. 나는 거짓말에 재능이 없었다. 서리태는 분명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을거라고 말하려다 만 것도, 감히 내가 서리태의 마음을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게 마음에 걸려서 멈췄다. 우리는 더 이상 대화가 없었다. 대회 참가자들은 바로 하교를 해도 상관이 없었으니 보챌만한 이유도 모자랐다.
-선생님, 서리태의 생일은 언제인가요?
나는 물었다. 실컷 돌아다니며 함께 놀았던 나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었다. 이런 스스로를 진정 서리태와 친구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까. 앞서 김숙에 대한 서리태의 생각을 마음대로 만들어도 괜찮았던 것일까. 모두 다 안다. 불행은 가난 언저리에 있을테고 행복은 풍요 근처에 머무르겠지만 전혀 왕래가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커피가 들어있던 컵은 비워져 있었고 밀크 셰이크는 남아 있었다.
듬성듬성 들리는 박수로 시상식이 끝났다. 나는 처음으로 교장의 손을 맞잡아봤고 예의 그 전형적인 미소를 눈 앞에서 봤다. 그리고 반대로 돌아서서 단상 아래 줄지어 있는 학생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줄어들던 박수가 다시 살짝 커지다가 이내 잠잠해졌다. 상장은 종이비행기를 만들어 개울에 날려버렸다. 종이배를 접었더라면 더 멀리 갈 수 있었을거라고, 날리자마자 후회했다.
없어진 것과 새로 생긴 것 사이에 그대로 유지되는 일들이 있었다. 다시금 선생들이 가정방문을 다니기 시작했다. 설문지에는 매번 똑같은 문항이 그대로 실려 있었고 나는 ‘아버지의 직업을 적으시오.’라는 칸에다 큼지막히 ‘소사’라고 적어냈다. 촌지가 오고가는 일은 내가 알기로 더 이상 없었던 것 같다. 그건 이제 없어진 일에 속했다.
일상이 풍성해지진 않았어도 할머니는 이제 학교로부터 다녀가는 선생에게 차를 한 잔 낼 수도 있었다. 김숙은 커피를 더 좋아할텐데. 난 할머니에게 읍에서 커피를 팔기도 하느냐고 물었더니 나를 진득히 바라보기만 하다 어디선가 거뭇한 모래같이 생긴 커피를 한 통 사다 놨다. 그래서 놓인 게 김숙 앞에 놓인 커피였다.
-이게 선생들이 매번 하는 일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한껏 날 선 말투라고 느낄 법도 했다.
-네 맞아요. 할머님. 학생 진로나 적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요.
자연스레 나가있으려는 나를 붙잡아 앉혀둔 것은 김숙이었다.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왜 학생이 나가려고 하느냐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왔는가.
-무기가 어떤 사람이 되길 바라시는지 먼저 듣고요.
-….
할머니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민병태가 왔을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지난 번 그 선생도 처음엔 칭찬 일색이었지. 나는 배움이 짧아서 학교같은 건 잘 모른다오. 알아서 잘 했겠거니…. 말썽을 부려도 제 딴에 이유가 있겠거니…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네 맞아요. 무기는 다른 아이들과는 조금 달라요.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좋은 의미로요. 학생은 공부만 잘 한다고 똑똑한 게 아니잖아요. 똑똑한 게 전부도 아니고요.
-그럼 어디 의사나 판사처럼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는 말입니까. 미리 말하네만 뒷바라지 할 형편이 아니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도 다 옛말이고 그것도 다 제 품이 있어야, 넉넉해야 가능한 일일테지.
-아뇨, 대안학교라는 게 있어요 할머니.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하는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이에요. 어떤 직업을 가질까가 아니라. 선생님들도 그걸 알고 인생을 가르쳐주는 수업으로만 이루어져서…
그 이후에 이야기는 자세히 들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금세 역정을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사실 우리 애가 골칫덩이라 그렇게 말하는 거 모를 줄 아시오? 저번에 그 남자도 그렇게 말했지. 당장 먹고 죽을 돈도 없는데. 가난한 집에 들이닥쳐 돈을 내놓으라는 게 선생들이 해야 할 말이란 말요?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늘그막에 아이고… 이 나이가 되면 하다 못해 텃밭에다 새로 씨를 뿌리는 것마저 생각을 해야 한단 말입니다. 이걸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 더 못 살지. 그냥 살아 있으니까 뿌리는거지. 솔직히 말해봅시다. 그러니까 무기 저 놈으로 내 늙은 몸뚱이에다 어떤 부귀영화를 처 바를 심산이 없단 말이요.
-하지만 할머님….
-그래, 그 대안학교인가 뭐시긴가는 학비가 얼마랍니까.
그 어떤 말도 답하지 못 하던 김숙은 돌아나와 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선 돌아갔다. 상가리의 할머니 땅을 산 것은 집을 위해서였기 때문에 줄 수 있는 돈이었고, 나는 달랐다. 할머니의 말이 더 신빙성이 있었다. 지난번 롯데리아에서 했던 말이 사실 심하게 무례한 말이었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서 무난하게 흐르고 있는 학교의 생활로부터 나를 치워버리려는 게 아닐까.
말을 하지 못했던 것으로 미루어보아 대안학교라는 건 특수학교였다. 나사가 빠진 아이들 혹은 장애를 지닌 아이들이 갈만한 학교가 아닐까. ‘대안’이란 단어가 충분히 학교를 대신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었다. 서리태를 들먹여서 괜한 소리를 했기 때문에 또 늙은 노인이 고초를 겪었다. 자책에 빠졌다. 그래서 난 화장실에서 거미를 눌러죽이며 그런 생각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렇대도 난 대안학교가 서울이나 혹은 따로 어딘가 머나먼 지역에 있다고 하면 가 보고 싶었다. 상가리와 하가리를 벗어난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할머니를 벗어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는데도 바깥의 세상이 궁금했다.
사람이 미워지는 마음은 긍정과 부정을 떠나, 괴롭힘 뿐만 아니라 희망으로도 겪을 수 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희미한 희망 따위를 내게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모르는 것으로 모르게 살면 그건 좋은 삶이라 일컬을 수 있어요? 할머니는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가정방문의 대화를 곱씹어보니 사실은 김숙에게 했던 말이 나에게 적용되는 것들보다 본인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는 말이나 다름없어보였다. 자기 처지를 대변하는 계기가 나로 인해 만들어졌을 뿐.
이 섭섭함과 슬픔이 서리태와 비견해서 어느 정도의 수준인가. 그렇게 마음을 꾹 다물게 됐다. 그리고 평범하게 지내기로 다짐했다. 대안학교라는 명칭을 그 잘난 인터넷으로 한 번만 찾아봤더라면 나는 김숙을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