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할거냐’는 말은 ‘어떻게 살거냐’는 물음으로 들렸다.
집이 타버린 날이 생각났다. 가족을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으로 일컫는 탓에 태어나는 무수한 낱말들. 할머니가 무얼 찾으러 들어갔었는지는 모른다. 그걸 송골매처럼 쉽게 정리할 수도 있다. 운이 나빴다. 이윽고 내가 태어난 이유를 할머니가 죽을 때에야 듣고나서 깨달았다. 적어도 난 할머니의 삶과 소사의 삶에 곁들임으로 등장한 사람이라는 걸.
할머니, 할머니는 그럼 그 때 죽었어야 했어? 아니다 얘야. 그리고 이유를 말하지는 않았다. 그 아이도 무서웠겠지. 나이가 먹을대로 먹은 소사도 할머니에게는 아이였다. 소사는 소사로 살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다방 레지에게 나쁜 일을 한 사람은 정년을 모두 채우고 은퇴했다. 문제가 있었으면 그럴 수 없었겠지만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도록 거래한 것이다. 참 묘한 일이지. 그걸 또 받아줄 사람이 마침 있었다는 게. 이용당한 것이나 진배없지만 그럭저럭 무마했다. 할머니는 누워서 말했다.
-난 네가 미웠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정말 죽음이 가까운 사람이 뱉는 숨소리는 이런 거라고. 가쁜 호흡에 말을 얹어 뱉는 소리. 그래서 이런 말을 하는거다. 더 이상 이승에서 나를 볼 일이 없을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아들놈이 엄마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었다. 그 애는. 무서워하고 있었지.
할머니는 처음으로 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도 다 알고 있었다. 아무리 못 배웠어도 그럴만한 아이가 아니라는 걸. 그런데 한 번만 눈 감으면, 수긍하면 이 지긋지긋한 삶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지. 넌 내가 손주삼아 맡아 키우면 된다고 생각했던거다. 그 선생이란 작자가 내 아들놈의 인생을 책임져주겠다고 했지.
왜 갑자기 이야기하는거예요. 그렇게 되묻고 싶었다. 당신이 죽을 날이 되니까 다 털어버려야 마음이 편하겠냐고 화를 내면서. 결국 바뀐 게 없잖아요. 속았잖아요. 우린 모두 속았다. 어떤 것에 속았는지 승부를 겨룬다면 나 역시 밀리지 않을만큼 말이다.
-그걸 믿으면 안 됐었는데…. 자기 잘못도 책임지지 않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내 아이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아들이 소사 일을 시작했다. 남자가 꽂아준 자리였어. 아니다, 나야말로 아들을 책임지는 게 벅차서 도망간건지 모른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자긴 한사코 아니라 말하는데 지 엄마가 그렇다고 하면. 얼마나 서러웠을까. 이 아이는 네 아이라고 말하는데 나를 용서할 수 있었겠니. 점빵에서 동네 놈들과 술을 마셨다고 했다. 돌아오는 길에 다방 아가씨가 오토바이랑 같이 자빠져 있어서 도와줬다고만 했다.
나는 등을 돌렸다. 듣기도 싫은 말이 꼭 알아야 할 이야기라서 짜증이 솟구쳤다.
-그래, 모두 내 잘못이다. 사람이 그러면 못 쓴다. 그런데 사람이 안 변하더구나. 사람인데 어쩜 그럴 수 있었을까…. 사람인데….
할머니는 더 이상 뜨겁다는 말이 없이 이불 속에서 잠에 들었다. 그게 끝이었다. 난 여전히 송골매라 적힌 모자를 뒤집어 쓰고 다니는 이장 아저씨에게 찾아갔다. 이장은 임기가 진작 끝나 이장이 아니었지만 그냥 이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더는 비린내가 돌지 않는 마당에 서서 날 보는 차가운 표정을 앞에 두고 ‘할머니가 죽었다.’그렇게만 말했다. 표정이 좋지 않던 아저씨가 눈썹이 조금 움직이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몇 군데에 전화를 걸고 외투를 챙겨 나왔다.
-언제 돌아가셨냐.
-한 시간 정도 전에요. 죄송해요. 아무도 생각이 안나서….
-그래 잘했다.
곧장 달려와서 잘 했다는 말이다. 이상하지, 죽은 사람을 보고 살아있는 사람들은 ‘돌아갔다’고 말했다. 어디로 돌아가는건가. 돌아가기 싫어서 삶을 붙들고 있는데 돌아가게 된 거라고 했다. 나는 그저 할머니를 보며 ‘죽었다’라고 말하는 게 더 맞다고 느꼈다.
이장에게 분노와 죽음은 별개였다. 자동차 사건 이후로 그의 가세가 기울어졌으니 말이다. 나를 용서해 달라고 찾아간 적은 없었지만 할머니는 죄가 없다. 죽은 것 뿐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차가운 몸은 어른들이 알아서 해결했다. 이런 걸 보면 나는 아직 아이였다.
물론 장례식같은 걸 할 돈이 없으니 새로 지은 마을 회관에서 할머니의 장례가 간단히 치러졌다. 언제 어디서나 대단한 사건이라고 말하는 죽음이 이렇게 싱거운 줄은 몰랐다. 전에 송골매, 서리태와 함께 갔던 선배의 장례도 이보다는 수선스럽게 조문객을 받았었다. 그에 비해 초라했다. 죽음은 언제나 초라한 것이라고 믿었는데도 난 그게 마뜩찮았다. 맞절을 하느라 조금 힘들었지만 애처로운 것도 없고 담백하게 끝났다. 그래서 울지도 않았다. 묘는 집 뒤 멀찍이 떨어진 곳에 마련됐다. 잔디 같은 것으로 둔덕을 덮은 것도 없이 비석만 작게 세워진 묘였다.
-이제 슬슬 할머니한테 가보자.
송골매가 한 통 더 남은 막걸리를 확인하고 말했다. 우린 할머니의 비석 앞으로 가서 막걸리를 뿌리고, 병을 텅텅 비운 뒤 묘 옆에 걸터 앉았다.
-몸이 뜨끈뜨끈하네. 이래서 어른들이 술을 먹나.
-할머니도 몸 좀 덥히시겠지.
나도 송골매의 옆에 앉았다. 흙으로만 덮인 묘에 잡초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민둥민둥한 것보단 나아서 뽑지 않고 그냥 뒀다. 우리는 멀어졌고 자존심이 커졌고 키도 자랐다. 대화한지가 한참 오래라 변성기 온 서로의 목소리가 낯설기도 했다.
-소사 아저씨는 어디로 갔대?
송골매는 소사를 여전히 소사라고 했다. 아버지라는 걸 알고도 순전히 나를 위해 그렇게 불러줬다.
-나도 못 들었어. 할머니 장례에도 안 왔고.
-아니야, 장례에는 왔어.
아리송한 내 표정을 보고 의외라는 듯 송골매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소사가 문 밖에서 잠시 안을 바라보며 있다가 갔다는 것. 머리가 잔뜩 길고 수염이 덥수룩하여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게 다들 술을 진탕 마시고, 이왕 마을에서 하는 것 작은 새끼 돼지라도 잡자며 남자 몇이 일어난 덕에 제법 소란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도 녀석이 소사를 알아본 것은 다리를 절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건 변명인데, 조금이라도 무기 네가 덜 미웠으면 알려줬을거야. 그 때의 난 끼어들기가 싫었어. 틈이 없어보이기도 했고. 그런 일에는 각자 안고 있는 슬픔이 있다고도 서리태가 말했었잖아.
소사의 소식은 소문으로만 전해졌다고 했다. 장이 열리는 곳마다 돌아다니면서 트럭 뒤에 오뎅이며, 떡볶이를 판다고도 했고 그게 아니라 저 멀리 어떤 학교에 다시 소사 일을 시작했다는 말도 있었고 심지어 죽은 게 아닐까 하는 말도 돌았지만 그건 아니었고. 그래서 송골매는 나에게 물어본 것이라 말했다. 나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고보니 그렇네. 상주는 안에 갇혀서 바깥에 나오지 않으니까.
그의 삶은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았다. 소사가 아니라 누구의 삶이더라도 대신 책임져 줄 사람은 없다.
-잘 살고 계시겠지.
사람들은 영영 소식을 모르게 된 사람을 이야기 할 때는 항상 잘 살겠지, 이야기하곤 했다. 사라지는 사람들은 늘 삽시간에 사라졌다. 할머니, 천선생, 민병태, 졸업한 학생들, 구멍가게 아주머니, 아줌마가 이야기했던 여자, 그리고 소사. 내 세상에서 삭제된 사람이 한둘이라면 알고 있을 법한데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말미에는 나도 덩달아 그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했다. 구멍가게 아줌마가 미쓰리를 말할 때도 그랬듯.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그렇게 말하지는 않는다. 모쪼록 그랬으면 좋을 사람만, 아쉬움과 부족함이 더해져 기도하는 수단으로만 썼다. 소사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나.
-너는 형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심정이 어땠냐?
난 진정 그 마음이 궁금하고 정리되지 않는 탓에 물었다.
-그거? 거짓말이지. 아직도 믿고 있었다니 내가 거짓말에 소질이 있나보네.
우린 서로에게 얼어있던 것들을 막걸리 한 통으로 녹였다.
-아버지가 말이야. 너랑 놀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천정은 차 긁었을 때 있잖아. 화를 막 못 이기고 분에 겨워서 말하는데 와, 살벌하더라. 진짜 무서웠어. 내가 아무리 이래저래 사고를 치고 다녔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민병태 그 미친새끼 일도 그렇고.
-그걸 아버지가 아셨어?
-몰랐지. 어떻게 알았겠어. 그런데 엄마는 알고 있더라고. 돈은 줬는데 내가 끙끙거리고 돌아다니니까 바로 그 날 알았대. 아 얘가 돈에 손을 댔구나. 그래서 자동차 긁은 날 뒤지게 얻어맞고선 오더니 물어보더라. 그 때 돈을 어떻게 했었냐고.
-….
-이무기한테 나눠 줬다고 순순히 토해놨지. 그 새끼 아니었음 나는 진작에 민병태한테 맞아 죽었을거라면서. 그래서 이렇게 얻어 맞아도 나는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이 정도야 인마. 내가 널 생각했던 게.
녀석이 억지로 생색을 내기 시작했다. 정말 생색내려는 마음이 한 톨도 없음을 느낄 수가 있었다.
-엄마한테 다 말했어. 천정은이 얼마나 못돼 처먹은 년이었는지. 오죽했으면 우리가 이랬겠느냐고. 그래서 아버지가 놀지 말라고 해도 놀 거라고 막 대들었지. 사실 그걸 아버지 앞에서 해야했는데 엄마한테 그랬어. 그렇지 않냐? 괜히 아버지한테 못 하는 말 엄마한테 쏟아놓는 게.
-그래, 그래. 알지.
송골매는 자연스럽게 말을 하다가 아차 싶은 마음으로 다시 말했다.
-그게 아니라, 보통 그렇다는거야. 하여튼 이 새끼야. 그냥 사과만 한 마디 하면 됐을 걸. 뭐가 그렇게 좆 같았길래 말도 안 하고 죽상으로 다녔냐고. 나도 자존심 때문에 말도 안 걸었는데. 이제는 그냥 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모두 한참 먼 옛날 이야기인거 같아.
어릴 적 학교에서 글씨를 예쁘게 쓰는 연습을 했다. 바른 자세를 강조하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소사는 글씨를 무척 잘 썼다. 운동회 현수막도, 입학과 졸업에 쓸 현수막도, 새로 부임할 교장에 대한 현수막도 전부 소사가 썼다. 그리고 아침 일찍 송골매와 학교에 도착하면 닫힌 철문을 열어주곤 교무실의 자물쇠를 열고 칠판에 날짜를 바꿨다. 행사나 특별한 일정이 따위가 있다면 초록칠판 가장 구석에 하나하나 적었다. 학년과 전교생의 숫자는 바꿀 일이 거의 없었고 그건 소사가 분필을 잡는 유일한 순간이었다.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것이 없는 소사가 칠판에 서는 시간. 난 그 글씨가 마음에 든다. 소사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할거야?
‘어떻게 할거냐’는 말은 ‘어떻게 살거냐’는 물음으로 들렸다.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물어보는 사람은 송골매가 유일했다. 할머니가 땅에 묻히고 소사가 어딘가로 떠난 뒤에야 비로소 앞을 생각하게 된 것처럼. 대답이 없는 내게 송골매가 타박하듯 말했다.
-또 죽 쑤지 말고 밥 해먹어 이제 좀. 죄다 죽 쑤는 거 같아도.
입에 들어가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나는 그렇게 텅 비어있었던 거야. 몸을 부풀려 멀쩡한 듯 사는거지. 장례식에서도 그랬어. 왜 다들 이렇게 남 인생에 말이 많아. 관심이라고는 한 톨도 없다가 왜 응원하는 척들을 해. 개새끼들. 다 재수없어. 착한 게 뭐고 나쁜 게 다 뭐냐. 지랄이지. 애들에게 순수함을 바라는 사람만 도처에 있잖아. 난 진지하고 비열하게 살아남을건데.
우리는 난생 처음 마신 술에 취한 게 분명했다. 말이 점점 꼬이고 있었다.
-너야말로 누구보다 남 인생 생각하며 사는 거 같아.
빗방울 하나 이마에 떨어졌다. 정말로 비가 내리려는 듯 준비하라며 하늘에서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정확히는 모르는데 조만간 학교를 무너뜨리고 새로 기념관 같은 걸 짓는대. 내년이려나….
서리태와 송골매랑 함께 다니던 초등학교를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졸업하면서부터 분교가 사라지기로 결정됐다. 라디에이터가 설치된 일처럼, 컴퓨터와 인터넷이 들어왔던 것처럼. 늘 학교에서 일어나는 계획은 순조롭다는 표현보다도 빠르게 처리됐다. 비어있던 학교 건물은 종종 누군가 들어와 창을 깨트리고 낙서 따위에 맥없이 당했다. 이제 학교에는 수리하는 손길이 없었다.
-그래서 철거를 한다고 하더라고.
무언가 아득한 것처럼 말하는 송골매의 얼굴에서 옛날 일을 떠올리는 느낌이 번졌다.
-좋은 기억으로만 생각하기엔 나쁜 기억들이 너무 많은 학교였어 나한테는…. 없어지는구나.
-그럼 다 잊어버려.
송골매가 말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우리는 일어섰다. 이제 돌아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