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숙제.
절망에도 형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탄산수를 처음 마셨을 때의 기분처럼 느닷없이 들이닥치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크기를 가늠할 수 있어서 대응할 수 있을, 아니면 도망치고. 그러나 응축된 것들은 늘 한번에 터졌다. 그것이 언어든, 감정이든 손 쓸 틈이 없이 번졌다. 근데, 그게 절망이다. 손 쓸 수 없는 것. 예상할 수 있으면 인간은 어떻게든 결과를 바꿔보려 노력할테니까.
늘 처음부터 잘못 꿰어지는 걸 경계하면서 비틀댔는데 그게 다 의미없고 부질없게만 보였다. 손목을 간신히 가리고 있는 옷은 소매가 닳아서 실밥이 터져나오고 있었으나 그게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는 의미는 아니었고 그저 이제 몸이 더 자라지 않았으면, 옷을 못 입게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커졌다.
며칠 나는 누워만 있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고등학교는 초등학교와 다르게 생활 전반에 걸쳐 관여하는 게 없었다. 더 자유로워졌는가 아니면 더 고독한가. 둘 다. 자유로운 건 고독하다. 천장에 누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대충 갈겨놓고 어딘가에 장점이 있는지 뒤적이는 게으름. 천장에는 돌아다니는 쥐에게 경고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굵은 나뭇가지를 주워와 천장을 두드려서 송송 뚫린 구멍들. 알게 모르게 천장의 먼지가 소복이 떨어졌을 구멍들. 난 고쳐놓는 게 빠를 걸 알면서도 손 놓고 있었다. 침묵과 고독은 그런거다.
몇 주가 됐다. 이제 수업은 어디까지 갔을까. 경우의 수. 공집합과 교집합. 함수. 어떤 건 더 어렸을 때 배운 것만 같은데.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아니냐고 어느 학생이 물었다. 그래 구멍가게에서 빵을 사고 막걸리를 사고 라면까지 먹더라도 방정식이, 어려운 공식이 쓸모 있는 건 아니지. 쓸모 없는 걸 쓸모없음이라고 판단하기 위해 교육하는, 그저 모두 장난에 불과하다고.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송골매는 쌀과 달걀을 가져왔다. 김치는 없다. 먹지 않으니까. 어째서인지 궁금할 새 없이 송골매는 봉투를 건네며 말했다.
-먹어. 뒤질까봐 주는거래. 어린 놈 죽게 두면 동네 싸잡아 욕먹는다고.
-그럼 먹으라 그래 욕. 이거 안 먹을거니까.
-그래라 그럼.
가져온 것들을 던져두고 송골매는 평상처럼 쓰는 바위에 앉았다. 봉투 안에는 막걸리가 들어있었다. 녀석은 병을 따더니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제법 마셔본 태가 났다.
-미친놈. 어디 어린 게 술을 처먹어.
-내 맘 아니냐. 도대체 왜 먹는가 궁금해서 처먹는다. 너도 이리 와서 처먹던가.
나는 병을 빼앗아 한 번 노려보고는 꿀꺽 들이켰다. 쌉싸름하고 탄산은 약하고 어쩐지 쉰내가 살짝 나는 것 같은 비린 맛. 단내는 나는데 달지 않은 맛. 물에 우유를 탄 것 같은 흐리멍덩한 맛. 뭐가 좋다고 다들 그렇게 마시는가. 김숙이 커피를 사 줬을 때에도 난 그런 생각을 했다. 할머니가 가져왔던 커피 한 통을 동내고 나는 이게 어떤 맛인지, 마시고 나서 어떤 기분인지 지금은 안다. 술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삽시간에 얼굴이 벌게져서 우리 둘은 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초등학교가 끝나고 중학교에서는 서로 다른 무리와 그저 그렇게 보냈다. 고등교육으로 갈 수록 먼 지역에서부터 학생들이 몰려와 한 군데에 모였다. 송골매와는 같은 중학교까지 갔으나 우린 여전히 말을 하지 않았고, 쫀드기 하나로 응어리가 녹기엔 너무 단단히 얼어있었다.
-거기는 좋냐.
송골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갈라진 고등학교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나는 녀석과 앞에 있는 것이 어색해 대꾸를 하지 않고 있었다.
-나도 공부를 더 할 걸 그랬나. 아버지는 밭일이나 배우라고 하고 공부도 하기 싫으니 잘 됐다 싶었는데 말이야.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러면 계속 여기서 살아야 하잖아. 지긋지긋하네.
-내가 불쌍해 보이진 않았어?
송골매의 한탄을 아랑곳 않고 튀어나오는 말을 그냥 내버려뒀다. 평소라면 스스로 붙들어 뒀을 그런 말. 고등학교에 함께 진학한 다른 아이들에게도 가끔 그렇게 내버려두는 말을 던졌다. 반응은 묵살이거나 장난이거나 난감함같은 것으로 모아졌다. 매사 진지한 내가 어려웠을거다. 풀 죽은 모양은 아닌데 깊은 한구석 새카맣게 뭉쳐진 마음을 드러냈을 때 말이다. 그 마음은 과민반응으로 보일만한 투명한 울타리를 만든다. 어떻게든 감정이 치닫는 꼴을 붙잡아두기에 이제 난 너무 지쳐버렸다.
-야 무기. 너는 가끔 가다 쪽팔린 말을 잘도 한다?
-낯간지럽다고 말할 수도 있어.
나는 송골매의 말을 굳이 정정했다.
-그래, 낯간지러운 말을 잘도 한다. 불쌍하냐고? 그래.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지. 아니 그렇게 생각했지. 씨발…. 한번에 훅 들어오네. 내가 다 쪽팔려. 그런데 말이야, 난 불쌍해서 너랑 어울린 게 아니야.
-그러면?
-불쌍하게 생각했던 게 점점 부끄러워져서 알고 싶었지. 그냥 동네에서 하는 말 주워 듣고 멋대로 불쌍하다고 생각한거야. 어른들이 불쌍하다고 말하면 ‘아, 불쌍한 애구나.’하고 의심없이 동정하던 게.
목이 타는지 송골매는 한 모금 더 들이켰다. 그리곤 뭔가 먹을만한 것이 있나 가져 온 봉지를 뒤적거렸다. 말린 오징어가 있었다. 녀석은 망설임없이 포장지를 뜯어 주욱 갈라 귀퉁이를 입에 물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그대로 믿잖아. 더 알아보기도 귀찮고 말이지. 그런데 매 년 반도 안 바뀌고 봐야 한다? 어쩌겠어, 알아볼 수 밖에. 그런데 생각보다 멀쩡한거야. 그거보단 되게 괜찮은… 뭐랄까 미친놈? 이야, 이 새끼 만만치 않네. 그렇게 생각했어. 사과 한 마디도 안 했을 때는 더 그랬잖아.
-미안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송골매를 똑바로 쳐다보며 사과했다. 놈은 튀어나온 오징어를 문 얼굴로 나를 봤다.
-이거 봐, 에라이 미친 새끼. 관 둬.
어느 날 주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든 먹은 노인이 당신 자식의 친구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물었단다. ‘나는 죽음이 두렵소. 그러니 내게 죽기 전 해야 할 숙제 세 개를 주시오.’ 자식이래봐야 여든 먹은 노인의 자식이니 벌써 쉰이며 예순은 족히 먹었을 사람들이 잠시 생각하다 결국 결정하여 말했다고 했다. 나로 살아보세요, 죽음을 두려워하세요. 그리고 또 하나는 무엇이었더라. 생각이 잘 나지 않았다.
하여튼 근사하고 철학적인 의미의 숙제를 세 개 말했더니 노인이 어떤 토를 달지도 않고 딱 잘라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한다. 그래서 자식들은 거기에 감명받았다는 이야기였다. 어디서? 죽음을 앞둔 것이? 자신들의 지혜로운 숙제가? 아마도 그건 늙음이 가져다 주는 고집이나 아집에 관한 감명일 것이 분명했다. 늙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생의 고집들을 물리치고 수용하는 자세 따위가.
그래서 아무튼 그 이야기의 마지막 숙제가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과연 나라면. 노인에게 무슨 숙제를 냈을까 고민해봤다. 어차피 어린 놈이 하는 말을 듣지도 않을텐데, 허튼 생각은 시간을 아무리 들여도 질리지가 않는다. ‘해결할 수 있는 후회를 해결하세요.’ 이게 가장 낫겠지.
날이 꾸물꾸물 비가 올 모양이었다. 시골에서 농사일을 돕는 아이들은 일기예보를 듣지 않더라도 모두 날씨를 볼 줄 안다. 비가 오겠네. 혼잣말을 나지막이 했다.
-이걸 도대체 왜 먹는거야.
나는 막걸리 통에 붙은 글자를 훑어보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더 있어?
-어, 하나 더 있어. 그런데 이건 먹는 거 아냐.
-심부름이야?
-아니. 너네 할머니 거.
-그럼 그냥 먹어도 되겠네.
-정신 나간 새끼. 정신차려. 그냥 막 살라고 할머니가 너 키운 거 아니잖아.
키운 게 맞나? 아니 애초 키워진 게 맞나? 송골매도 이렇게 길러졌을까?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대화가 좀처럼 없었다.
-그럼 뭐하러 키운걸까. 사람들한테 미안하라고 키웠나. 다들 나 보면 미안해하라고 눈치 주잖아. 아, 그리고 너한테는 진짜로 미안하다. 진작 말했어야 하는데 너무 늦었어.
송골매는 미친놈이라며 막걸리 병을 빼앗았다.
-그만 두래도. 어차피 지나간 일이잖아. 이제 다 지나갈 일이야. 막상 닥쳤을 때는 그렇게 아찔했었는데 지나서 보면 세상이 무너지지도 않고, 멀쩡히 잘 돌아가. 천정은 생각하면 아직까지 절로 욕이 나오긴 해도. 그냥 조금 섭섭했던거야. 병신 같이.
그리고 술 기운이 부족한 것처럼 병을 비워내고 다시 말했다.
-운이 나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