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염치가 뭔 줄 아니?
-나는 말이다. 그 여자랑 똑같이 산 건 아닌데도 그 여자와 비슷하다고 느꼈단다. 수중에 돈이라고 남은 게 뭐가 있겠었느냐만, 그래도 먹고 살라면 말이야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하는데. 어디 뿌리내릴 수 없는 게 서러워 학교 앞에 작게 가게를 열었지. 처음엔 술이랑 국수만 말아서 팔다가 과자며 빵을 들여놓고 두부나 계란까지 쓸만한 것들만 들여뒀지. 이러면 뭐가 좀 더 나아지나 했는데 그래도 애기들을 보면 마음이 좀 나아졌다. 가끔 돈이 모자라서 몰래 주머니에 넣고 하는 것도 다 알지만 얼마나 먹고 싶음 저랬을까, 이해를 하는거야. 여기 학교가 생기고 그렇게 많던 학생들이 이젠 거의 없어도 말이야. 아이들은 다 똑같지.
그 이야기에 우린 서로 눈을 마주치며 짐짓 뜨끔한 마음이 있었다. 송골매가 몰래 사탕 하나를 챙긴 모자람이 떠올라서 우물쭈물했다. 아줌마가 자기 얘기를 지나가듯 말했어도 그러고 싶어 보이는 마음을 캐묻지는 않았다. 구멍가게 이야기 역시 누군가가 떠벌리고 다녔을 소문 중 하나였을지도 모르고 막걸리는 아직도 오지 않았으니까. 난 알지 못하는 것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알지만 잘 모르는 것에 한해 궁금해했다. 여자의 이야기가 전자에 속했다. 사실은 아까 아저씨들이 말한 이야기의 정체를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짐작은 진실이 아니라서 꿋꿋이 들어야만 한다. 아줌마는 생각보다 쉽게 이야기해줬다.
-그래, 여자는 다방 레지였다. 내가 학교에다 소개시켜줬어. 선생들이 커피를 마실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는데 그게 마냥 커피를 먹고 싶다는 소리겠나 했다. 레지를 학교에 부르는 게 일도 아니었지. 그래도 학교니까 수수하게 다니는 그 여자를 부른거고. 여자는 커피만 따라주고 얼마 안 있다가 바로 갔다. 사실 누구라도 그랬을거야. 체면 때문에 붙잡기를 할 수가 있나, 질 나쁘게 굴 수가 있나. 이미 레지를 부른 게 그런 거라고 말할지 몰라도. 처음엔 조례 전에 잠깐 부르나 싶더니 수업 종이 치고 들어갈 때가 있더구나. 여기선 다 보이지. 그래도 금방 금방 나왔어. 그러다 또 한동안 오지 않다가, 다른 레지가 다녀갔다가. 결국에는 다시 그 여자가 다녀갔지….
하루는 돌아가기 전에 여자가 담배를 하나 달라더구나. 갑으로 주냐, 개비로 주냐 했더니 갑으로 달래. 아이고, 담배 태우기 시작하면 급여도 못 모을텐데. 표정이 안 좋아보여서 뭔 일이 있니? 물었더만 내리 두 개비를 태우고는 ‘별 일 아니겠지요.’하는 거야. 그 애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그래 다방 일이 어린애한테 얼마나 힘들겠나. 더구나 어울리지도 않아 보이던데 말이다. 특히나 그런 일은 하고 싶어서 하는 애가 없단다. 사정이야 빤한 데 어쩌겠나. 이런 촌동네에 할 수 있는 일이 있었어야 말이지….
그 뒤로 동네 뿐만 아니라 읍내까지 파다하게 말이 퍼졌단다. 누군가 그 여자한테 몹쓸 짓을 했다고. 여기서 술 먹던 놈들이 쫑알쫑알 떠드는 통에 다 내쫓아버렸다. 못난 새끼들…. 사내 새끼들은 어디든 똑같다, 똑같어.
아주머니는 부채를 휘휘 저어 파리를 쫓아냈다.
-학교로 그 여자가 몇 번 찾아왔다 돌아갔지. 찾는 사람이 있었던게야. 커피를 가지고 왔던 때보다 더 빨리 나오는 그 애를 난 그냥 바라보기만 했어. 이야기를 했다면 그보다는 더 오래 있어야할텐데 아마 무시당했을거야. 상대조차 하지 않았겠지. 나는 걔를 불러다가 앉혔다. ‘별 일 아니겠지요.’ 그게 맘에 자꾸 걸렸다. 별 일 아니었어야 했다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누굴 찾느냐고 물었더니 입을 꾹 닫고 끝까지 말을 안하더구나. 대신 자기 이야기를 나한테 들려줬어. 아주 긴 이야기를 들려줬다.
아줌마는 이야기를 멈추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아이를 낳고 떠났지. 더 이상 어떻게 지내는지는 알 방법이 없단다. 어린 것이 어떻게 해야할 줄 몰랐을텐데. 왜 나쁜 일은 그렇게 연달아 일어나는지 나는 모르겠다. 벌을 받을 사람들은 버젓이 사는데. 그래서 어쩔 수 없었겠지. 어떻게든 살아야 했겠지. 마음이 어땠겠나 하면, 나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으레 자기가 남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데 진짜로 할 수 있는 말은 모른다는 말 밖에 없어.
어른들은 말이다,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이야기로 이야기가 안 끝나서 더 살고 있는 게 어른이란다.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서 자기들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를 끝내야 하는 사람들이라 그래.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질 못해서 서툴러 그런거야. 다 어쩔 수 없는거야….
여자의 삶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누구를 어쩔 수 없게 만들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선택이 비명을 지를 것이다. 억울하다고. 왜 내가 선택할 수도 없을 환경을 만들어두고서 달아날까. 그래서 당신을 이해하게 된다면 나는 이 세상에 이해하지 못할 게 없다. 이미 난 비명을 지르고 있으니까. 존재만 빌려서 일컫는 염치없는 사랑. 사랑만큼이나 대단한 게 없다고 하던데 여자와 나 사이엔 그것마저 없다. 둘 사이에 무엇이 존재하든 아줌마의 동정이 그것보다는 클거다. 인내를 버무려도 모른 척 할 수 없는 불행은 어떻게 상대해야할까. 불행은 불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한 결코 불행이 아니다라며 주문을 외워봐야 전부 쓸모없는 것. 지나간 일과, 눈깔사탕과, 라면 한 그릇과 소사, 송골매, 서리태, 할머니.
넌 인생을 바꾸라면, 바꿀 수 있겠니? 내 인생을 누군가와 바꾸라면 바꿀 생각이 없었다. 진심으로. 이 짧은 인생에서 좋은 것 나쁜 것을 충분히 깨달았지만 ‘그게 확실히 더 나은가?’는 생각에서 ‘확실히’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소사의 말대로 묘한 것이 내 삶이라 생각하기로 했던거다. 이게 불행은 확실히 아닐거라고 믿으면서. 사람들이 그렇게 기피하는 불행이 이 정도 쯤이라면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악 쓰기를 납득하기가 어려웠다. ‘이 정도 쯤이야.’ 같은 희망에 휩싸이는 게 아니라 ‘이 정도면…. 뭐 그래.’에 가까운. 어차피 인생이야 누구와 바꾸래도 바꿀 수 없는 거 아닌가. 살거나 살기를 관두거나 해야지, 다시 시작은 없다. 그건 구멍가게 앞의 오락기에만 있는 버튼이다.
-그 날. 놈들은 말했다. 언제든 자를 수 있다는 사람을 자르지 않는 것으로 대단한 은혜를 베푼 척 했다. 염치도 없이. 얘야, 염치가 뭔 줄 아니? 부끄러움이다. 인간이라면 가져야 할 부끄러움이라는거야. 나도 아무리 못배웠다지만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된다. 바깥으로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스로한테도 염치가 있어야 해…. 나도 너에겐 염치가 없다. 그게 뭐라고 남 일이라고 나서질 않았다. 널 보고 부끄러워져서 말을 하나보다. 다 알고 있으면서 말이야.
그리 충격적인 일이라고 생각되진 않았다. 다른 학년에도 버려진 아이가 심심치 않게 있어 그런가, 똑같이 쉬쉬하면 당사자에게 들키지 않을 것처럼.
기다리던 막걸리가 왔다. 이렇게 된 이상 해야할 일은 하나다. 막걸리를 가지고 얌전히 집에 돌아가는 것. 울음은 억울한 일에나 터트리는 것이다. 어린 아이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옛날 이야기로 포장한 아주머니의 마음 씀씀이를 거역하면 벌을 받을 것이다. 알아듣지 못하리라고 착각하면서 마음의 짐을 덜어놓는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아줌마를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후로 나는 잔뜩 비뚤어져서 내 잘못들을 원망으로만 채워두며 살았을테니까.
-우리는 전부 염치없이 살고 있나보다. 아니면 염치라는 게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가보구나.
막걸리를 들고 동네로 돌아가고 있었다. 송골매와 서리태가 한 발자국 떨어져 따라왔다.
-아무한테도 안 말할게.
송골매는 결심한 듯이 말했다.
-말해도 상관없어. 다들 저렇게 말하고 다니는데 누구든 금방 알지 않을까.
-미안.
-네가 뭐가 미안해.
녀석은 반 쯤 포기한 상태가 되어 말하는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인생이 끝난 것처럼 굴지는 않았는데 송골매는 자신이 더 곤란해했다. 생각없이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부모에 대해 말이 나오면 ‘난 엄마 없어.’라 했을 때 ‘미안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태와 같이. 너무 익숙한 사람들은 뭐 때문에 네가 미안하냐고 묻는다. 숨길 것이 아니고 비밀이 아니지만 헤아리는 게 있다면 부재나 상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이다.
-사실, 우리 형이 한참 예전에 죽었대.
나는 이 자식이 뭐라는건지 잠깐 생각을 해야했다.
-그러니까, 내가 태어나기 전에 말이야. 나도 얼마 전에 들었어.
-그 얘길 갑자기 왜 해?
송골매는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는 걸 참는 모습이었다.
-나도 어쩌다가 듣게 된거니까 너도 어쩌다가 들은 걸로 해. 그래야 공평할 거 아냐.
그 말의 의미는 서로 한 가지씩 비밀을 가지고 있어야 옳다는 거다. 그래서 나는 송골매의 비밀도 알게 됐다. 나야 사실 비밀이랄 것도 없지만 녀석의 이야기는 굳이 말할 필요도, 사람들도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두가 우리의 비밀을 잘 숨겨줄 수 있을까. 동네 사람들은 송골매 위에 있던 형의 존재를 다행히 잘 숨겼다. 소사가 절벽에서 떨어져 불구가 된 사실도 불미스러운 일로 유야무야 된 듯, 그래도 나는 송골매의 일만큼은 그러길 잘 됐다는 생각을 했다. 내게 적어도 소중한 녀석이 놀림감이나 괜한 상처를 입는 꼴을 보기가 싫어서였다.
그러나 난 찜찜한 것보다 고마운 마음이 컸다. 동물적인 마음이었다. 약점을 알게 된 뒤 나를 공격하거나 이용하려는 생각이 아니라 자기의 약점도 알려주는 동료애같다고 생각했다. 극복해 나갈 것이 한 두개가 아니었으나 꾸준히 내 편을 만들어야 한다고.
-왜, 뭐.
-미안해.
나도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럴 때 별 수 없이 튀어나오는 ‘미안해’는 너의 상처를 드러내게 해서 미안하다는 뜻이 맞다. 정말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을 때 사과를 하게 되는구나. 보통보다 뻔뻔해서 사과를 하지 않은 무수한 사람들이 떠오르다 사라지고 우린 미안하다는 말을 한 번씩 주고 받았다.
-정말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못 하겠네.
-그렇지?
우리는 서리태를 가만 바라봤다. 어떤 비밀이라도 하나 쯤 꺼내야 한다는 분위기였으니까.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생각에 잠긴 듯 하던 서리태가 이내 입을 열었다. 서리태는 자신이 이제 이 동네를 곧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