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아오, 이 썅년.
‘여신이라더라.’ 행여 일행이 오해할까 덧붙였다. 우린 제법 걸었다. 안나푸르나의 산 등성이 어디쯤, 아마 줄기 끝. 내륙 국가 네팔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히말라야의 봉우리 그림자쯤, 밟아보겠다고 기어오르고 있다. 누군가 버리고 간 스틱, 빌린 우비. 신발이 여의치 않았다면 찢어진 등산화도 주워 왔을지 모른다. 경솔하고 거만하게, 아이젠마저 없다.
아니, 난 충분히 존중하고 있다. 고작 베이스캠프까지의 걸음을 대단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원정’이니 ‘등정’이니. 부풀리는 단어를 쓸 생각이 추호도 없다. 베이스캠프에서부터 겸허히 준비하고 있을 진짜 산악인들에게 참 부끄러운 일들이 아닌가. 산이 잠시 열어준 길을 잘난 체 하며, 산과 겨룬 듯 말할 심산은 없다. 제길, 발이 푹푹 빠진다.
여신이라 샘이 많아.
값비싼 와인을 따르며 머물고 있는 숙소의 사장님이 말한다. 아마 본인에겐 적당한 가격일까. 마트에서 분명히 이 와인을 봤는데, 가격이 기억나질 않는다. 어떤 농담을 했는지 사람들이 한껏 웃는 소리에 난 생각에서 기어나온다. “여차하면 밀어버려.” 위험한 절벽에서 밀어버리라고. 연인을 찢어 놓고 각자 따로 온 사람들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이야기에 함께 웃고 만다. 산을 올라야 하니 이제 그만 들어가 자겠다고 했다. 이미 꽤 많이 취한 상태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줄여서 'ABC'라니 어쩜 이렇게 귀여운 일치인가. 아마 중간 지점쯤 온 것만 같다. 여기가 사람들이 사랑하는 마을이라거나, 주변의 풍경은 둘러볼 새가 없이 땅만 보고 걷는 일에 지친다. 걷는 페이스가 다르니 힘이 부친다. 한국말이 쉼 없이 보이는 이 마을을 사람들이 가장 사랑한다니. 마음에 들어하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다만. 아니나 다를까 한국인 일행이 마주 온다.
흠, 산행 쉽게 하는 방법 알려줘요?
“알아서 할게요.” 아는 체를 받아줄 힘조차 없다. 그러나 정작 산행은 힘들지 않았다. 표지판은 성실하게 일하고 있었으며 사람들은 친절했으니. 산소가 가끔 부족하지만. 스스로가 얄미운 사람이 되더라도 느린 걸음의 일행을 두고 먼저 갔다면, 난 좀 더 건강하지 않았을까. 아니, 되려 분명히 아팠을 것 같다.
나이 든 사람은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인지, 멋대로 떠들기 시작한다. 새벽에 시작해서 점심에 끝내야 해요. 오후엔 비가 내리니까. “그럼 그쪽은 그렇게 해요.” 내 거친 대답에 구시렁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린놈이 버릇이 없다는 둥, 초보자가 뭘 모른다는 따위의 말이려니. 그를 지나쳐 몇 분 걷다 보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아… 제발.
마지막 등반의 전날, 어떤 의식을 한다. 연주와 소란한 사람들. 안전한 등반을 기원한다는 음악. 이렇게 시끄럽게 밤을 지새우는 것보다 아마, 푹 쉬는 게 나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신이 정말 있다면 마치 내가 오르지 못하게 막으려는 듯. 끊임없이 몸을 울리는 북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방음이 잘 되지 않는 어설픈 롯지는 추웠다.
북동풍이 밀고 오는 바람은 나를 자꾸 절벽으로 몰아낸다. ‘떨어져라 떨어져’ 욕지거리를 뱉어 화가 났는가. 이제 해발 4천을 올랐다고. 일행은 외쳤다. 눈보라가 휘몰아쳐 시야는 좋지 않았다. 왜 하필 오늘인가 따질 법 하지만, 하루를 더 기다릴 생각은 아무에게도 없었다.
해 역시 산을 오르는 것에 힘겨웠겠다. 뾰족한 산을 올라 고개를 내미니 그림자가 짙게 기울기 시작한다. 아홉 시가 넘어서야 가까스로 보이는 태양이 구름을 접는다. 꽤 늦은 잠을 마치고 가까스로 구름을 걷어낸다. 눈보라가 잠시 멎는 듯하더니 ‘휘이잉’ 바람과 함께 죽는소리를 낸다.
높은 산을 지나 떠오른 태양이 건넛산을 비춘다.
비로소 여신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