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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16. 2016

소사 아저씨

어느 시골 분교 이야기.


날은 어찌나 더운지 같이 탄 멍멍이도 혀를 내두르고 헥헥거린다. 차 뒷좌석에 풀풀 날리는 강아지 털이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이 녀석은 정말 착하다. 정말 일하기 싫어서 도망 온 거라니까요. 양평의 한가로운 집 정원에서 잔디를 깎을 때 나는 말했다.


긴 연휴와 그에 걸맞은 더위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을 때 연락이 왔다. 놀러 가자. 아마 부산부터 올라오는 형이 차를 태워주지 않았다면 가지 않는 방향으로 고민의 무게추가 더 얹어졌을진 모르겠다. 시골에서 시골로. 연휴가 뭐 이래 싶은 생각이 들지만, 우리 동네와 엇비슷한 곳으로 가서는 결국 뙤약볕에 일을 하고 말았다. 그래도 며칠 푹 쉬다 내려오는 휴일의 마지막 오전. 꽤 졸리다고 부산 형은 그랬다. 휴게소에서 차를 대고 한숨 자 놓고. 한참 더 먼 길을 가야 하는 형에게 국밥이라도 한 그릇 사야지 생각했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계십니까.





Yangpyeong, Korea.(2016)


소사 아저씨.

형 알아요? 소사 아저씨가 학교에 있었어요. 옛날 나 초등학교 때. 뭐든지 만들어줬어. 선생님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건 항상 뚝딱. 뜬금없이 꺼낸 이야기에 나온 국밥이 멋쩍다. “호박잎이 들어가서 이리 쌉싸름한가”의 다음 말로 소사 아저씨를 꺼내 든 난 이미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아저씨가 저기에 있어. 아마 날 못 알아보실 거야.




정말 가제트 같았다. 어린 마음에 아저씨가 하는 일이면, 만드는 것이면 신기해했던 내가 한 일은 옆에서 ‘우와’하는 추임새를 넣으며 신기해했던 것. 밑바닥에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 보니 시골 분교의 하루는 만화 검정 고무신이 멀지 않은 이야기였다. 가을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 벅적지근한 행사를 할 때면 현수막을 달기도 했고, 풀이 자라지 않도록 꾸준히 풀약을 치고 풀을 뽑는 아저씨. 그래서 얼굴이 발갛게 익었는지도 모르겠다.


밭 사이로 난 길목에선 꼭 동네 친구들을 만났다. 하루가 얼마나 긴지 자랑이라도 하듯, 학원을 다니지 않은 우리는 함께 있는 시간이 더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 짧은 각자의 시간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어젯저녁에 읍내에 나갔다 왔다는 등의. 이른 아침, 부지런히 걷다 보면 도착한 단층의 학교는 늘 잠겨있었다. 여섯 시부터 열 리가 없는 작은 학교에서 옹기종기 앉아 기다리다 보면 소사 아저씨는 졸린 눈을 비비고 나왔다. 어린 녀석들이 기운도 좋네 하며. 고작 두 대의 컴퓨터로 기껏 지뢰 찾기를 하기 위해 우린 부지런해졌다.


봄이면 밀가루를 한 줌씩 가져와 진달래를 따다 화전을 부쳐먹었다. 그럴 때마다 넓적한 영지버섯을 따온 소사 아저씨는 거뭇한 얼굴로 자랑하며 웃었다. 여름이면 비닐하우스로 만든 수목원에 들어가 오래 버티기를 하며 놀았다. 소사 아저씨는 밀짚모자를 쓰고, 목엔 수건을 두르고 나오지도 않았다. 가을이면 운동회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모른다. 소사 아저씨는 아빠 없는 친구와 이인삼각 경기를 했다. 겨울이면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 눈사람이 늘었다. 소사 아저씨는 돌로 만든 단추를, 새마을운동이 적힌 모자와 버려진 목도리를 선물했다.


아저씨의 볼은 일 년 내내 붉었다.




Yangpyeong, Korea.(2016)
왜 그렇게 일찍 일어났는지 몰라요.


부모님들이 부지런하시니까 그랬겠지. 형은 말했다. 축구 알아? 학생이 적어서 전교생의 체육시간이 같았어.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부 나와서 축구를 했어요. 오십 명이서 공 두 개를 가지고 축구를 해. 그게 얼마나 즐거웠는지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그만큼 흔한 일이었어. 5학년 때 폐교되고 결국 읍내 학교로 옮겼어요. 다른 분교는 와인공장으로 쓰이고 있고. 그게 벌써 몇 년 전인 거야.


아는 척을 해볼까. 어쩌면 날 알아보실지도 모르는데.


아니, 뭐가 좋다고. 겨울이면 석탄을 받으러 소사 아저씨한테 가야 하는데, 꼭 덩치가 크단 이유로 내가 갔다. 각 반마다 한 번에 들 수 있는 양을 가져가야 하는데 덩칫값을 했는지 난 항상 많이 받긴 했어. 근데 나중에 그 조개탄이 뭐라고. 저렇게 많이 주면 어쩌냐며 교장선생님에게 혼나고 계시던 모습. 많이 추웠는데, 소사 아저씨는 불 때는 교무실에도 못 들어가고 말이야.


아저씨는 여전히 볼이 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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