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를 마주하는 유쾌한 고백.
이제부터 너랑 나는 친구야.라는 문장을 더 신뢰했다. 어느 순간 친해져 버려 친구인지 아닌지 분간할 상황이 오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과 달리, 나는 꼭 그것과 비슷한 문장까지도 사용한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딱히 좋아하는 건 아니다. 딱 거기까지, 그리고 넘어오지 말라는 말 대신 온몸으로 풍기는 나의 분위기에 그가 잠시 멈칫하는 동안 생각이 났다.
이유 없이 만나는 건 친구,
이유가 있을 때 만나는 건 지인,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만나고 싶은 건 사랑하는 사람.
하루키는 그렇게 말했다.
며칠간 악몽을 꿨다.
친구의 결혼이라는 말을 듣고 지레 나서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말도, 축하한다는 말도 주저했지만. 가장 후회가 되었던 말은 ‘꼭 갈게.’라는 나의 단호한 대답이었다. 스스로도 놀라고 만다. 무엇이 궁금했던 건지 깨닫게 된 건 바로 그 악몽 때문이었다는 것도. 무얼 확인하기 위해 그 결혼식에 참석해야 했었는지 그제야 알았다.
심호흡을 하고 들어선 식장에서 학교를 같이 졸업한 녀석들이 사진을 찍어달라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말했다. 아주 단호하고 분명하게. 어딘가 조금쯤 나에게 그런 패기가 있었나 싶기도 할 만큼의 온도로.
‘싫어.’
친구끼리 왜 그러느냐는 말에 다시 한번 말한다.
그건 네 생각이고. 여긴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방관자뿐이야.
꼭 그 말을 하며 땀에 젖어 깨는 일이 며칠 반복되었다.
그리고 결혼식 당일, 데자뷔처럼 그런 일이 일어났다. 꿈과 달리 나의 행동은 안 그랬지만. 떨떠름한 표정에도 불구하고 찍어준 사진은 터무니없이 잘 나왔다. 실소가 터져버리고 만다. 트라우마를 직접 마중 나가는 일이 결코 즐겁지 않으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그리 쉽게 넘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Take it easy.
당초 예상보다 오래 걸린 결혼식에 분주히 사진을 찍었던 것만 같다. 나를 슬금슬금 피하는 기색이 역력한 동창들의 시선을 뒤로하고도, 나는 꽤 당당했다고 생각한다.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굴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괜찮은 태도였다. 심지어 아무렇지 않게 인사를 나누었다고도 기억한다.
외톨이가 된 것이 나의 성격 때문이라고, 혹은 뚱뚱한 외모로 인하여 비롯된 것이라면 더 좋았겠지만. 어떤 이유인지 모른 채 그렇게 되는 것에는 큰 자존감이 필요한 일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어쩌면 더할 나위 없는 상태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주 선명하고 치밀하게 나를 향하여 겨냥된 그들의 태도는 잔인하게도, 완벽했으니까.
인정해야 했다.
어설픈 용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악몽 같은 시간은 꾸준히 흐르고 있으나, 나 홀로 훌쩍 먼저 성장하여 그 폭력을 유치함으로 이겨낼 수도 없거니와 흐른 시간에 한 때의 추억으로 여기는 그들을 반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홀로 강해질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