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단단하고 우직하게.
덤벼, 얼간이.
소년만화에서 으레 그러듯. 패기 넘치도록 그렇게 말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마는, 지금의 지인들이 들으면 코웃음을 칠 말을 해야겠다. 나는 화내는 방법을 몰랐다. 놀리는 사람들만큼이나 외모지상주의에 찌들어있어서. 놀림받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아 이거 잘못하면 나자빠져서 죽어버릴지도 몰라.
나는 정말 무서웠다.
수업을 들은 뒤엔 진한 괴롭힘의 시간이 온다. 십 분의 휴식 동안 적당히 농담을 주고받고, 복도를 달리는 녀석들 사이 나는 고개를 처박고 엎드려 있는다. 심심찮게 날아오는 지우개 똥을 피하기 위해 우유 당번을 자처하여 도피처로 삼았다. 그마저도 내가 반응을 하지 않으면 오래가지 않으니까. '반응을 하여 놀릴 구실을 주면 안 된다.' 그게 나의 목표였다.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괴롭힘을 당하던 날엔 선생님을 찾았다. 학생들 사이에선 치사한 일일지도 모른다. 더 큰 힘을 가진 사람을 불러 서열을 뒤엎는 것은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평등한 세계에서 누군가를 짓밟는 것이 타당하다고 느껴지지 않던 나는 꽤 자주 그랬다. 학교라는 세계에서 강자에 속하는 선생은 나서서 그랬다. "손 잡아, 악수해. 이제 화해한 거다?" 제멋대로의 순간을 기점으로 화해하는 것은 우스웠다. 이 선생은 평생 화해를 해 본 적이 없음에 분명하다. 사과와 용서가 필요한 일에 화해라니. 남은 건 고자질쟁이라는 타이틀뿐이었다.
결국 머지않아 선생님들과도 마찰이 잦았으니, 사회 부적응자에 가까운 생활기록부가 적힌 걸 우연히 보기도 했다. 고작 열명도 되지 않는 분교에서 숨기기란 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그럴수록 나의 세계는 나날이 튼튼해져 갔다. 혼자만의 우주를 만들었고 내비치는 일은 결코 없었다. 글짓기 따위에서 상이라도 받으려 작은 단상에 오를 땐 바짝 긴장해야 했다. 형식적으로 들리는 박수가 낯설어서.
교복을 입는 시기를 기점으로 상황은 바뀌었다. 유치한 따돌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대신 유치하지 않은 따돌림이 왔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직접적인 놀림은 없었지만 철저하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해야 했다. 가끔 전학생이 오면 꽤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역할쯤 되었지 않았을까. 차라리 편했다고 느낀 건 이 때라고 말할 수 있다. 아무도 내게 관심이 없는 건 너무도 편한 일이었다.
하루 종일 말을 하지 않으면 목이 꺼끌거렸다. 물을 마셔도 별반 나아질 기미가 없어서, 홀로 집에 오는 길엔 주위를 살피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세상에서 아주 없는 사람이 되고서야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함께 같은 조가 된 사람의 굳어지는 표정이라던가, 결국 본인이 친한 다른 두 명의 조에 스며드는 것. 점심시간에 자리가 없어 맞은편에 앉을 때면 찡그리는 얼굴. 자리를 정할 때 나의 옆이 싫다며 짝을 바꿔달라는 목소리. 선생님이 찾는다는 말을 전하기 싫어서 얼굴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 말하는 몸짓.
그 모든 것들이 나를 할퀴고 지나간다.
난 왜 이렇게 소심한 걸까. 난 왜 섞이지 못하는 거지. 그건 허망하고 노곤한 일이어서 모든 기력을 다 빼앗기고 만다. '당장 멈춰라.'하여 마음을 멈출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문제 될 것은 하나 없을 테지만. 나는 여전히 그런 종류의 아픔을 겪는 사람에게 별 것 아니라고 말할 수 없고, 외면하지 말라고 말할 수 없다.
가난을 이유로, 눈치 없음을 이유로 따돌림받는 기분을 나는 모른다. 고작 못생김, 뚱뚱함, 치사함을 이유로 한 것들에 대해서만 아는 나는 다분히 한정적이다. 누군가의 불행을 들어 '차라리 저런 이유였다면' 하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이상한 곳에서부터 안도와 위로를 찾는 긍정이란 잔인했지만 확실했으니까.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으리라 여기는 것도 어찌 보면 허무주의적 삶이었다. 군대를 다녀오면 알까,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의 군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말하는 사람은 없으니.
절망을 겪다 보면 희망이 보잘것없어진다.
희망을 노래한다는 일이 겉으로 보기에 참 이상적이지만, 몇 번 깨지다 보면 막상 이루어지는 게 없어 기대를 걸지 않는 것. 그렇기에 애써 그 미묘한 것 말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는데, 다행히도 난 극단적인 쪽으로 흐르진 않았다. 관계의 공허함은 책으로 채우고, 소속감의 결여는 봉사활동으로 채웠으니, 돌아보면 그 양이 놀랄 만큼 어마어마했다.
세상일이 모두 그렇다며 나이 든 노인처럼 헤아릴 생각도 없다. 가해자가 아이러니하게도 경찰을 하고 있다면, '그깟 놈이 되어봐야 짭 새지.'(직업적인 경멸이 아니라 비하의 예로써 인용) 하며 지질하게 굴 수도 있다. 하물며 정말로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하니 이 역시 오묘하다. 세상 이치를 그 누가 다 깨우치겠냐만 말이다.
또 누군가는 상처를 확인하기 바쁘다. 정말 아프냐고, 고작 그 정도로 뭘 그러느냐고. 자신의 고달픔을 말하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상처를 후비게 둘 필요도 없다. 너도 나도 칼에 찔렸지만 꿰맨 곳이 몇 바늘인지 비교하여 아픔을 측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그런 방법은 나를 강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상대방을 더 약하게 할 뿐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결국 내가 나쁜 것이 아님을, 죄지은 것이 아님을 조금씩 깨달을 때 비로소 강해진다.
도망쳐라. 가능한 멀리.
아주 보이지 않을 때까지 도망쳐도 좋다. 외면해도 된다. 그러고 싶거든 그래도 된다. 바람이 불고, 여느 때와 같은 날이 오거든 한 번 얼마나 멀리 있나 쳐다봐도 좋다.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은 그 누구도 치워주지 않으니 결국 내가 정리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될 때. 그때는 와도 좋다. 값비싼 청소기를 한 대 준비해 작정하고 대청소를 하는 것도 괜찮다. 여전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나중에 와도 좋다. 꽤 할만한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려도 좋다.
그래, 지난날의 꼬맹이는 시시때때로 울었다.
외톨이었을지언정 강인하고 무뚝뚝하게 잘 버텨주었다.
지금 이 글을 읽어주는 당신에게도.
그래서 나는 당신이 너무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