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있어요, 그대.
7년 전쯤인가.
아니 18년 전쯤인가. 밑바닥에서 벗어나는 방법과 같은 방법론의 글들을 지금까지도. 정말 싫어한다. 트렌드와 붐이 일어나는, 참 휩쓸리기 쉬운 이 나라에서. 자조적인 패러디가 시선을 한참이나 붙잡아도 결국 다시 눈치를 보고야 마는 시대. 수렁만큼이나 끝없고 벗어나기 힘든 밑바닥을 외면하거나 노력으로 벗어나기에 아직 여전히 진행 중인 사람이 많다면 끝났다고 보기 어려운. 그런 시대. 여전히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에게 방법을 제시하는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근현대사를 사는 사람에게 최첨단 미래를 보여주는 격이랄까.
능력과 실적, 돈의 가치를 신성시하는 사람들에게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나는 돈을 돈 이상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돈으로 바꿀 수 있는 어떤 것을 금액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자유분방하게 놔두다 보면 ‘우정’은 중학생을 기준으로 따졌을 때 주당 2만 5천 원 정도. ‘휴식’은 최저 시급으로 요즘 6천 원 정도. 나의 휴식을 포기하는 대가는 2016년 기준, 고작 그 정도라고 들었다.
"아메리카노. 그리고 캐러멜 마키아토님 나오셨습니다."
내 시급보다 낮고 높음을 일컫는 이 자조적인 농담은 내게도 흔한 일상.
그리고 나 역시 밥값조차도 못 하는 사람.
세상은 썩었어, 아빠.
“꼭 그렇잖아, 부모님들이랑 고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 있다 보면. 어떻게 살거니 하는 물음.” 그것밖에 물어볼 게 없는 걸까. 커피를 들이키며 덧붙이는 여자 친구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던 것도. “그것 밖에 물어볼 게 없는 거지.”
여행을 할 때면 흔히 농담 삼아 외국 친구들에게 하는 말들 사이에 꼭 있던 말. 한국은 끝에서 끝까지 다섯 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어떻게 그런 작은 땅에서 사냐고 놀라던 사람들. 말하고 싶다. 그리 크지 않은 나라에서 집을 가는 300킬로미터가 얼마나 거대한 숫자인지 알 수 있는 건, 부모님과 함께 차를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될 일이라고.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된 건 나의 말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난 책임회피라고 본다.
아빠는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아빠도 늙었어. 이해할 수가 없는 게 맞아. 쉽게 살았다고 말하는 건 아냐. 지금 세대가 너무 살아남기 힘든 걸. 결국 언성을 높여 말하는 통에 조수석에 앉은 엄마는 안절부절, 남자들은 살벌하게도 싸웠다. 영화 국제시장에 대한 입장에서부터 시작된 불씨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옮겨 붙어 버렸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네가 살아봤냐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는 말에 입을 꾹 다문다.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을 꾹꾹 눌러 담으며 억울한 나는 영락없이 감정에 치우친 어린 녀석이니까. 우린 그렇게 백 킬로쯤, 꼬박 말없이 달렸다.
네가 자랑스럽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불현듯 날아온 아빠의 말에 턱 숨이 막혔다. 어쩌자는 말인가. 나는 그렇게 염세주의적인 태도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예상을 한다. 그러나 턱없이 다른 말에 다시 숨이 멎는다. 넌 잘 할 거야. 온갖 고생이란 다 해본 놈이니까. 아까 요즘 애들 어쩌니 하는 말도 그렇지만, 너나 네 동생은 어려서부터 고생은 다 해봤으니까. 어디 내놔도 잘 할 건 내가 알아.
엄마의 설명을 들어야 하는 건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던 아버지의 입장을 이해시킬 말이기 때문이었다. 요즘 애들 힘든 건 우리도 알아. 가엾어. 참 할 거 없다고. 아빠 말은, 요령 없이 부딪혀서 자꾸 꺾이지 말고 물어보라는 말이야.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는 몰라도 돈 버는 방법쯤 하나 갖고 있는 게 아빠들인데. 어떻게 도와줘야 할 줄을 모르니 하다 못해 자기가 알고 있는 부분이라도 알려주려는 거야. 너, 충분히 잘 하고 있다.
밥 값조차 스스로 낼 능력이 없는 아들은 휴게소에서 가락국수 세 그릇을 들고 돌아와 앉는다.
울지 않으려 노력해 본 일이 얼마만인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가장 최근의 기억은 새로 생겼다.
이 사소한 위로가, 나는 너무도 그리웠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