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일기

부디 내 인생에 침묵을.

by 박하


설익은 새벽부터 줄이 길었다. 이젠 날이 조금 쌀쌀해져 외투를 챙겨야 하는 이맘때쯤이었고,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꽤 추웠음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이 멍한 표정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낯선 억양의 영어로 경비원이 문을 열고, 이내 들어선 공간은 살짝 타는 냄새와 옅은 연기가 보여 정신을 빼앗는 느낌. 정적이 흐르는 곳에서 비자를 받기까지 일주일. 한남동의 인도 대사관이었다.


카펫이 깔린 비행기는 처음이었고 붉은 커튼이 창을 가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승무원은 터번을 쓴 채 알라딘수염까지 기르고 있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척 어찌나 애를 썼는지. 충격적인 인도행 비행기보다도 더욱 충격적인 일은 나의 영어실력이 형편없다는 것과 사전조사가 전혀 없었던 것, 스마트폰이 없던 것이 아니었을까.


여행자의 스타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모든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조사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둘 뿐이다. 전적으로 후자인 나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을 깔끔하게 무시한 채, 긴 비행에서 아이팟의 음악을 끄지 않았다. 나를 던지는 여정에서 불확실한 모든 가능성의 시험을 나로 치르고 싶었나 보다. 인도는 상상 이상으로 문화적 충격을 주었으며 돌발적인 나라였고 내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숙소 하나조차 자유롭지 않았다.


갠지스 강 건너편으로 흘러온 시체를 묻는 남자. (인도, 2014)


유일하게 가능했던 일은 이 가능성에 날 맡겨보느냐 결정짓는 일. 한 달쯤 지나, 난 수염이 꽤 자랐고 인도의 물가가 감이 잡혔으며 바가지를 씌우려는 택시기사들과의 흥정에도 프로가 되었다. 쥐가 나오는 방, 사막의 옥상, 사람이 바글바글한 기차역도 잠자리가 되었으니 이런 외국인을 처음 접하는 인도인들의 당혹은 머지않아 친근함이 되었다.


같은 냄새가 난다.


최초로 내가 인정받았다고 느낀 참 서툰 표현. 그렇게 사진을 찍어주고 선물을 해주며 지냈던 기억. 아침식사를 하던 식당은 어찌나 자주 갔는지 ‘늘 먹던 메뉴로’라고 낭만적인 대사를 뱉어보기도 했다. 어느 소설에서 언젠가 봤던 대사를 인도에서 할 줄은 몰랐으나 더욱 완벽한 낭만으로 감싸인 미소를 화답하는 주인에겐 감탄도 더러 했다.




그 한국 남자는 무슨 일인지 나에게 말을 먼저 걸었다. 한국에서 교수를 한다는 그는, 내가 지갑을 꺼내 돈을 정리할 때 천 원짜리를 봤다고 했다. 자신의 그릇을 들고 내 앞자리로 다가와하는 이야기는 으레 그 나이의 중년 남성이 하기에 별다를 바 없는, 자기 자랑과 자식 자랑이었다. 묻지도 않은 그의 가정사에서 그는 유독 자유로움을 강조했는데 예로 자신이 인도에 와 있는 것을 들었다. 으깬 감자를 씹으며 ‘이 남자는 자기 아들보다도 어린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인가.’하는 생각도 잠시 했으나 나는 별 대꾸 없이 내 할 일을 하기로 했다.


혼인하여 떠나는 손녀를 배웅하는 할아버지 (인도, 2011)


나의 아침식사는 언제나 전날의 짧은 감상을 동반하는데, 그제야 식사를 마친 교수는 내가 끄적이는 것을 확인하고자 했다. 숨길 것도 아니었기에 건네준 나의 일기는 온갖 평가와 지식으로 해체되고 조립되었다. 그 뒤, 다섯 시간을 적고 컴퓨터와 메일로 삼중백업을 하는 교수의 일기와 비교까지 거쳐야 했다. ‘난 그 시간에 사람들과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짜이 한 모금으로 삼켰다.


하루 지난 일기는 일기가 아니라는 정의까지 듣고서야 나는 처음으로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아들도 아버지가 이런 사람인 걸 아나요?’ 아냐, 이건 너무 인신공격인 걸.

‘다 먹었으면 일어나시죠.’ 이건 인정하는 꼴이잖아.

‘일기 쓰는 하루를 일기로 쓰고 싶진 않네요.’ 싸움 나겠네.


고민 끝에 내가 고른 말은 이랬다.


“그럼 당신은 그렇게 살도록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