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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맹이 되리라

피부색을 보는 잔인한 눈.

by 박하


칠월의 마드리드는 찜통이었다. 숙소는 고맙게도 에어컨을 쉬지 않고 틀어주었으나 방구석에만 틀어박혀 있을 수 없는 노릇이기에 게으른 몸뚱이를 재촉해 나가야만 했다. 선글라스는 멋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필요한 아이템이었고 건물 사이로 난 매장을 간간이 들려 열을 식혔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내 앞에는 가족이 있다. 남자와 남자, 그리고 남자 아이. 이미 동성결혼이 합법화된 스페인의 거리. 머리로 다름을 인정하고, 가슴으로 다양성을 올바르게 받아들이는 동안 숙소에 도착했다.


이 층 침대로 구성된 방엔 열다섯의 남녀가 각기 제 침대를 차지하고 있다. 열기에 지친 몸을 누이고 고개를 돌리니 새로 온 친구가 있다. 그녀는 일본인 특유의 느낌을 풍기고 있는데 예감이 맞다. 벌써부터 한 침대에 뒤엉켜 있는 건너편의 커플을 무시한 채, 우리는 이야기를 했고 다음 일정을 동행하기로 했다. 여행자로서의 일본인은 아주 훌륭한 동행임을 여러 번 겪었는데 이번에도 물론이었다. 돈키호테와 건축양식에 대한 이야기를 서툰 영어와 일본어, 한국어를 통해 말했는데도 불구하고 대화는 즐거웠다.


DSC06899.jpg 스페인, 마드리드 (2014)


사건이 터진 건 지하철의 환승지하도였다. 가운뎃 손가락을 치켜들며 보내는 야유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금발의 젊은 남자가 분명 우리를 향해 있다. 그녀가 스페인어를 못하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인종 차별은 이전에도 겪었다.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각 나라의 언어로 듣는 '중국인'이라는 단어. 우습게도 각종 언어로 '중국인'은 말할 수 있게 됐다. 가수 싸이가 아니었더라면 나의 여행은 훨씬 고달프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동성혼도 가능한 곳에서 인종차별이라니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곧이어 나타난 멋진 '킹스맨'이 우산으로 그 녀석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노인은 그를 꾸짖으며 우리에게 대신 사과를 했다. 나도 저리 늙으면 좋겠구나. 한국에서 더한 경우를 보고도 방관한 나를 부끄러워하며, 도움에 감사해하며 숙소로 돌아갔다.




중국 사람이냐고 묻는 이에게 노여워하는 것은, 나 역시 그런 차별을 두고 있음이 확실시되는 기분이다. 내가 볼리비아의 가난한 친구들을 도와주며 살고 왔다한들, 마드리드의 공동 샤워실에서 문신한 볼리비아노를 보지 말아야 하는 법은 없다. 중미의 아름다운 나라 코스타리카에서 온 여자가 노르웨이에서 일하며 할아버지의 중국 성씨를 물려받은 일 따위야, 그녀의 멋진 미소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어떤 흑인 여성은 지하철에서 비욘세의 'Halo'를 소름 끼치도록 잘 불러 이슈가 되었고, 포르투갈에서 만난 흑인 친구와 악수를 했을 땐 그 손이 참 따뜻하다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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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나라로 돌아가야 했던 이유는 그에게 무엇이었나. 내가 어떤 해코지를 한 것도 아닌데. 한국에서 무시당하는 다른 나라 사람의 이야기가 나에게도 일어났을 때 난 무서웠고, 속상했고, 화가 나기도 했다. 고작 피부색만으로 나는 더러운 인간이 되어있다. 단지 다르다는 것이 어느새 잘못이 되어있다.


세상이 제 아무리 크레용의 '살색'을 없앤다고 떠들지라도, 여전히 사람들의 살색은 잔인하다. 낯선 것에 대한 혐오가 사라지는 세상이 오기 전까지 나는 지친 눈을 다문다.


우린 노예제도가 폐지된지 기껏 이백 년도 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으니, 아직 이 과정을 차분히 겪도록 하자. 다만, 가해자가 되는 일은 관두도록 하고. 차라리 색맹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