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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Oct 26. 2016

'미안하다'는 말이 갖는 무게

영화 <자백>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기록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입에서 그 말을 내기가 얼마나 어려우면 그러겠냐만 해도 너무하지 않나. 있는 자들에게 나오는 '미안하다'라는 말이 갖는 값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 영화 <베테랑>에선 사과 하나를 못해 정말 갈 때까지 가는 재벌 2세가 나온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것보다 더욱 악랄한 현실을 담고 있다. 냄새가 어느 정도냐면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그 역한 것과 비등할 정도로.




편의점을 시작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손님의 불만 섞인 말을 들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들어온 다른 손님에 대한 투정이었다. 목줄도 채우지 않고 주인을 따라 여기저기 냄새를 맡고 다니는 강아지 하나에, 주인에게 걸어가 말을 했다. "손님, 강아지를 무서워하는 분들이 계셔서 잠시만 안고 계셔주셨으면 합니다." 그 후에 들은 온갖 욕설과 들고 있던 과자 봉지 따위를 맞고 나는 전쟁이 난 줄로만 알았다. 무정부 상태가 되면 흔히 사람들이 마켓부터 털던데 딱 그런 모양새가 아니었나. "죄송합니다." 나는 그 단어밖에 모르는 듯 행동해야만 했다. 머리로는 합당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성이 고개를 쳐들고 있었으나 난 당시 3500원의 시급을 받고 그렇게 비굴함을 느껴야 했다.



뭐 일단은.


국정원을 들어가고 싶어 했다. 어렸을 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른 새벽이나 밤늦은 시간에 송출되는 방송이 종료되거나 시작되기 전. 나오는 애국가에서 나온 건물이 궁금했다. 정보는 국력이다. 그 거대한 바위엔 그렇게 쓰여있었다. 어딘고 하니 바로 국정원. 나이가 들어가며 나는 그곳에 들어가고 싶었다. 후에 꽤 유명한 드라마에서 국정원을 멋있게 묘사하며 경쟁자가 늘었다. 그땐 참 멋진 곳인 줄로만 알았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영화는 아주 껄끄러울 것 같았다. 예상대로 껄끄러운 내용이었다. 영화관에서는 기가 찬 헛웃음이 종종 들렸다. 검찰과 국정원이라 이 얼마나 어설픈 집단인가. 한 나라의 정의구현을 맡은 곳이다. 뭐 일단은.






출연 김기춘.


어떤 자존심 때문인지 사과를 받을 사람들의 대변인 역할을 해줘야 하는 기자들의 집념에 혀를 내두르고 만다. 집념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들의 '기억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앵무새도 저보다는 더 다양한 말을 할 수 있을 텐데. 돈은 아주 사람을 지독히도 뻔뻔하게 한다. 지지 않는 때처럼 만든다.


때는 2012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 씨는 간첩으로 몰린다. 그는 화교 출신의 탈북자였다. 동생인 유가려 씨의 인터뷰로 시작되는 영화는 그녀가 6개월 동안 국정원의 캄캄 안 독방에 갇혀 회유와 협박을 당했다고 진술한다. 오빠가 간첩이라는 거짓 증언을 하게 된 이유는 국정원의 제안 때문이었고 오빠와 함께 한국에서 살 수 있다는 제안과 달리 진술이 끝난 후엔 추방당하고 만다.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


오빠가 간첩이라는 자백을 해달라.


그 이후에 국정원과 검찰이 짜 놓은 각본은 기가 막혔다. 그리고 허술했다. 믿는다면 정말 믿을 수 있을 만큼, 믿지 않는다면 요즘 세상에 맘먹고 파헤칠 수 있을 만큼의 무게였다. 증거들은 쉽게 날조로 드러났으며 북한 출입국 사실확인서까지 거짓임이 드러나며 중국 측에선 되려 위조자를 체포해달라 요구까지 했다.


자 이제 판은 얼마나 더 커질 것인가. 그 기대가 무색하게도 언론의 관심은 적었고, 되려 확실한 간첩을 놓아주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사실인 양 보도했다. 미디어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국민의 위치를 영화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우성 씨는 결국 무죄가 되고, 국가의 사과는 없다. 사람을 그 긴 시간 잡아두고 잘못의 인정은 일체 없다. 이미 충분히 그 이슈를 가지고 놀았으니 됐다는 식이다. 한국에는 간첩이 필요하다. 그렇게 탈북을 하는 사람들마다 간첩인지 아닌지 검증하기 위한 명목을 가지고 국정원에서 데리고 가니 어떤 소설을 써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하실 말씀 없습니까.


'녀석은 간첩이야. 아니면 말고.'식의 수사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최승호 기자는 당시 국정원장 원세훈을 따라붙는다. 하실 말씀 없습니까. 원세훈의 아내는 비웃고 원세훈은 우산 뒤로 웃는다. 유우성 씨에게 사과하고 그런 것도 기사에 나가면 좋지 않겠어요. 정말 그 말에 웃는다.


나의 군 복무 시절, 한창 이슈가 되었던 탈북자가 있었다. 건너편에서 장교와 선임 하나를 쏘고 건너온 남자. 그는 국정원에서 나온 사람들로부터 순식간에 사라졌다.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엔딩 크레디트에선 간첩으로 판명받은 무수한 이름들이 올라온다. 그 옆엔 거의 모든 이름들 옆에 '무죄'라고 쓰여있었다. 탈북을 하니 간첩으로 몰아 몇 년을 이용해 먹고 뒤늦게, 알게 모르게 무죄 판결을 내려주는 것. 지금 이것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또 다른 피해자, 유학생 간첩 사건에 연루된 재일교포 김승효씨.


열 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면 안 된다.


만만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그래서 간첩으로 몰아가기는 더 어렵지 않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나온 어느 교수가 말한 것처럼, 이젠 정말 북한밖에 이용할 것이 없는 치들이 이젠 어떤 아이템으로 사람들을 겁먹게 만들 것인가. 하다 못해 항생제도 내성이 생기는데 몇십 년을 이용해온 빨갱이 이야기가 끝물이라는 건 저들도 알 터.


언성을 높이며 촬영하지 말라고, 영화 중반 국정원 소속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고성을 냈다. 얼마나 고귀한 존재인지 자신들이 법 위에 있는 마냥 구는 태도는 비단 하루 이틀에 생긴 것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걱정이 된다. '저 기자, 괜찮을까.'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 나라라니.


아주 적절한 때에 공개된 이 영화가 정치개입으로 밝혀진 최순실의 사태와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 나는 아직도 기대가 크다. 실체 없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 밝혀졌다. 우리가 두려워하던 공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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