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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Oct 05. 2016

웹툰이 말하는 인생

평온한 일상은 늘 어렵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지극히 주관적인 내용입니다.





‘학교라는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

서점에 책을 사러 갔을 때, 나는 내 두 눈을 의심해야만 했다. 앉은 의자에서 다리가 땅에 닿지 않는 소녀가 읽고 있던 책. 그 책의 제목을 보기 전까지 나는 그 작은 손에 들린 만화책이 어떤 제목일까 짐작도 못했다. 아니, 짐작하는 범위를 한참이나 벗어난 것이 문제라고 느꼈던지도 모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어려운 것은 사람과의 관계가 아닐까. 나는 그중에도  학창 시절을 이야기할까 한다. 학창 시절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거쳐가는 일련의 범 세계적인 문화니까. 처음으로 사람을 사귀는 방법을 연마하는 과정. 어디서 생겨났는지 모르는 경쟁구도, 서열이 생기는 가혹한 교실에서 뒤처져버리면 그대로 끝난다. 아주 쓸쓸하고 헛헛한 것으로.




살아남지 못한 자.


아주 멋진 두 웹툰을 이야기하고 싶다. 전체적인 흐름이 충분히 좋은 가는 차치 하고라도, 이 두 개의 에피소드는 나를 울게 만들었다. 만화의 내용을 비롯해 나의 과거를 들자면, 난 ‘정글에서 살아남지 못한 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곳이 정글이었는지조차 생각지도 못하고 뛰어든 녀석이었다. 앞뒤 분간 못 하는 내가 그렇게 불나방이 되는 역사는 나만의 대서사시일지언정 굳이 여기서 다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약자의 하소연을 할 것도 아니다. 그리고 강자의 입장 따위도 모른다. 난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프리드로우 - 142화>


주인공 ‘태성’이 중학교 시절 괴롭혔던 ‘우현’을 수학여행 중에 우연찮게 만나는 장면에서의 대사는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개과천선한 주인공과 달리 트라우마 속에 살아가는 우현에게 태성은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넨다. 그리고 잠시 멈칫하다 듣는 대사가 결코 뻔하지 않았던 것.


웹툰 <프리드로우>


난 아직도 네가 싫어.


이건 용기가 아니라 진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적당하다 본다. 이 장면은 그 어느 부분도 이상하지 않다. 날 괴롭혔던 사람에 대한 증오, 트라우마에 대한 고백. 사람이라면 응당 가질 수 있는 적당한 분노. 모든 사람이 성인군자가 아니기에, 끝내 용서할 수 없는 담담한 그 모습에 나는 박수를 치고 만다.




따돌림을 당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 있는 자는 그 누구도 없다고 본다. 그런 류의 자살은 ‘타살’이 더 적합하니까. '아홉 살 인생'이 찬사 받았던 것 역시 그 나이에서 감당하는 고통의 무게가 상대적이라는 걸 일깨워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극 중 등장하는 ‘우현’은 지극히 정상이고 그 무게를 여전히 견디는 중이며, 아픔을 이겨낼 수 있을지는 아직까지도 알 수 없다.






<여중생 A - 80화>


지나친 절망에 대하여 얼마나 말할 수 있을까. 앞서 적은 일련의 내용과 비교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폭력으로 인해 일상적인 생활이 무너진다는 것. 학대를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알 수 없다고 짐짓 고상한 척을 할 수 있겠지만 이 웹툰은 지나치게 친절하다.


웹툰 <여중생 A>


웹툰의 대사를 빌려 적어보건대 ‘자상한 엄마와 배울 점이 있는 아빠’가 있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이해되도록. 그런 친절함이 왜 필요한 것인가. 이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적확한 문제들이니까.


주인공인 ‘미래’는 대인기피에 가까운 두려움이 있다. 중학생이 되어 가까스로 만든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뒤, 잊고 있던 문제가 다시 올라온다. 아버지의 학대. 온갖 이유를 들어 폭력을 일삼고, 술 심부름을 시키는 모습. 아빠의 고성이 들리면 불을 끄고 장롱 안으로 숨어버린 채 두려움에 떠는 일상.


미래는 힘들게 만든 친구를 잃지 않기 위하여 ‘괜찮은 척’을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터 놓을 사람이 없다는 것. 절망이 시작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것이 나면서부터 결정되는 지속적인 폭력을 포함한다면 나는 기꺼이 자녀계획을 말리고 싶다.




일상이 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더 많이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능하다면 더 말해줬으면 하고. 삶이야 사람마다 기구하다지만, 그 기구함에 굳이 한 숟갈 더 얹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 평온한 일상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에게 드는 경외감을 다 적자면 마치 끝도 없을 듯, 이 담담한 만화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여전히 삶은 아주 쓸쓸하고 헛헛하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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