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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13. 2016

스테디셀러의 탄생

영화 <라라 랜드>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 했던가. 


아주 올드하다, 통속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세련됐다. 꽉 막힌 도로에 차량을 훑으며 지나간다. 무심결에 넘기는 엑스트라 정도의 역할을 전부 무대 위에 올려버림으로써 관객의 무의식적인 무시. 그 무신경한 흘려버림에 대해 뒤통수를 치고 시작한다. 우리가 여태 그렇게 흘려보낸 엑스트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관객이 어버버 하는 동안 순식간에 무대가 시작된다. 내가 영화가 아니라 뮤지컬 티켓을 잘못 끊었나.



아마 이제 우리가 거슬러 기억할만한 추억은 8-90년대. 추억도 밀레니엄 시대가 도래하는 현대가 왔다. 현재를 살아가는 청소년들과 갓 사회로 나온 친구들에겐 응답하라 시리즈보다 훨씬 더, 훌쩍 과거로 거슬로 올라가는 이 시대적 아우라가 신선할 테다. 이제는 회자되지도 않는 과거 포맷으로의 회귀. 흔히 쓰이는 일반적인 통념이 패션이라는 카테고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라라 랜드는 증명해냈다. 아마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 했던가.


으레 꾸준히 팔리는 책을 일컫는 '스테디셀러'가 영화에도 붙을 수만 있다면,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이 유행을 타지 않고 길게 회자될 스테디셀러의 탄생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내용은 풍성하다. 아니, 풍성해 보인다.



왜 그렇게 오버해요?


극 중 주인공 미아(엠마 스톤 분)는 LA에 거주하며 여기저기 리허설을 보고 다니는 배우 지망생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대개의 예술가가 그렇듯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다 짬을 내어 보러 간 리허설에서 미아는 그런 말을 듣고 만다. 리허설을 볼 때마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고, 입을 떼자마자 수고했다는 담당자의 말을 듣기 일쑤. 룸메이트들의 제안으로 예술계에 한가닥 한다는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에도 가보지만 허탕. 좌절하여 방황하다 들어간 재즈바에서 연주하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 분)을 만난다. 비록 그 멋진 연주에 이끌려 들어간 미아의 기분은 아랑곳없이, 세바스찬은 그 연주로 사장에게 해고를 당하고 말지만.


둘은 이전에도 만난 적이 있다.

꽉 막힌 첫 장면의 도로에서. 첫인상은 비록 좋지 않은 기억이지만, 세바스찬 역시 정통 재즈를 사랑하고 예술가의 멋진 이상을 내세우며 낭만주의자적 대사를 뱉는다. 낭만은 가난하다, 그 자존심 때문에 해고당하고 돈도 얼마 안 가 떨어진다. 당장 입에 풀칠은 해야겠기에 어느 파티에서 원하지도 않는 음악에 건반을 두드리지만, 그 모습을 본 미아는 엉뚱한 선곡으로 세바스찬에게 복수한다.



자존심을 내세우다가도 우연히 부딪히며 서로에게 영감을 주는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고, 꿈과 안정된 삶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극을 채워나간다.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 둘이 세바스찬의 재즈바에서 우연찮게 다시 만났을 때, 그 아련한 추억을 재생할 뿐. 한 때 꿈을 서로 지지했던 멋진 연인이었다는 기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롱테이크 or 스타카토


영화 기법과 음악적 표현기법이라니. 비유가 온당치 않다고 말할 수 있지만 이미 재즈가 융합된 영화니까 이 정도쯤은. 이거야말로 어글리. 비글 미가 돋보이는 영화. 어찌 보면 발을 동동 구르게 하는 이 뻔한 스토리를 성공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배우의 개성과 촬영 기술이 아닐까. 아주 길거나, 혹은 단타로 팍팍 치고 나가는 영상들의 현란함에 흠뻑 취해버린다.


이름 난 배우들로 개성은 보증되었으니 기술적인 면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보자면, 전작 <위플래쉬> 때와 마찬가지로 감독은 매우 강박적인 롤링을 사용한다. 아마 카메라 렌즈가 닿지 않을까 하는 매크로 촬영은 거대한 스크린에 걸리며 무엇인지 살짝 고민해야 할 때도 있다. 이게 친절한 것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시간 정도는 준다.



이미 라라 랜드를 보고 리뷰를 읽는다는 전제 하에, 평소 영화를 어느 정도 봤던 사람이라면 눈치챘겠지만 말로 하지 않고 영상 기술로 내용을 서술하는 장면이 많았다. 그래서 혹은 아직 보지 않았더라도, 꼭 눈여겨볼 두 장면을 짚어보고자 한다.


주인공 둘이 연인이 되기 전, 파티가 끝나고 새벽의 언덕을 오르며 시작되는 롱테이크가 언제 끝날지 눈여겨보았다. 세상에, 영화 <레버넌트>의 도입부보다 치밀한 롱테이크라니 이런 악마가 있나. 가장 처음 장면에서 나온 꽉 막힌 도로의 뮤지컬 같은 롱 테이크도 황홀했고, 파티에 가기 전 미아와 룸메이트들이 춤을 추는 신에서도 놀랐지만 길어도 너무 길다. 



밤이 지나고 새벽녘의 언덕길을 오르며 이야기하다가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신발을 갈아 신은 뒤 함께 추는 탭댄스. 바로 포스터를 장식한 보랏빛의 타이틀 장면은 필자가 말하는 것보다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롱 테이크라는 것은 NG가 났을 때 처음부터 다시 촬영하면 그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해야 할 이유는 동이 트기 전의 새벽녘이라는 것. 사진작가들이 칭하는 이 골든아워(Golden Hour)가 얼마나 짧은지 알고 싶거든 내일 아침 일출시간에 맞춰 일어나 보길 바란다. '몇 시간'이 걸렸을지 상상하던 당신은 생각을 바꿔야 할 것이다. ‘과연, 며칠이나 걸렸을까.'



그리고 또 하나 손꼽을 수 있는 장면은 영화 중반, 재즈 연주자로서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며 등대 앞 홀로 노래를 읊조리는 모습. 중년 부부가 흘리고 간 모자를 주워 남편에게 건네고, 그의 아내의 손을 잡아 잠시 춤을 춘다. 남편은 황당한 기색으로 금세 세바스찬의 손에서 부인의 손을 낚아채어 춤을 춘다. 자연스레 포커스 아웃. 순식간에 그들은 배경이 된다.



잘 봐요, 이번엔 트럼펫이 할 말이 있나 보군요.

살짝 뒤에 나온 이 장면에서 감동을 받은 것은, 앞서 세바스찬이 미아에게 재즈에 대해 설명하려 재즈바 ‘라이트 하우스’에서 나눈 이야기 덕분일 것이다. 색소폰의 리듬을 빼앗으며 표현하는 트럼펫. 엎치락뒤치락하며 멜로디의 주인이 바뀌는 재즈의 특성을 위에 적은 영상 기법으로 훌륭히 표현했기 때문이리라. 모두가 주인공이 되고 순식간에 배경이 되는 훌륭한 '재즈적 영상 기법'에 뛰는 가슴으로 물개 박수를 친다.



모든 공연이 초연이다.


자, 그러면. 라라 랜드가 보통의 발리우드 영화들과 다른 것은 비단 할리우드이기 때문일까? 얼핏 느끼해질 수 있는 부분을 잡아줄 수 있는 어떤 요소가 라라 랜드에는 있다. 그것은 위에서 적어 놓은 스토리 라인, 촬영 기법으로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고민의 흔적들이라 말하고 싶다. 재즈에 대한 뚝뚝 떨어지는 애정이 필름에 묻다 못해 범벅이 되어있으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래서 우리는 가슴에 꿈은 품을 잊지 않았는가. 하는 물음을 영화는 던진다. 다시 살면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우리네 인생사에서, 모두가 가슴 뛰는 설렘을 안고 시작하여 절망으로 내달리기 전에. 영화 속 주인공답게 성공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질문 속에 숨은 진짜 질문은 역시나 위로에 가깝다.



마지막 장면에서 미아는 상상한다. 세바스찬과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다면, 인생의 모든 부분을 함께 하고 지금의 순간이 왔더라면, 그래서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모든 연인이 흔히 상상하는 가정법으로 빠르게 스치는 주마등이 안쓰럽지만 한 때 마주한 격렬한 시련을 함께 버텨온 고마운 그 감정은 과연 눈빛만으로도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그렇게 쥐도 새도 모르게 먹먹한 위로를 받고 만다.


매 공연이 일정하지 않은 재즈가 인생이라면, 우리 역시 기껏 초연에 오른 주인공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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