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우리의 앞길
심지어 뒷길까지 막으려는 것들이 참 많아
앞도 안 보고 걷는 사람
내 뒤에서 신발을 밟고 가지
뒤도 안 보고 가는 사람
뒷사람 길을 막아서고 방해하지
웃긴 건 종종 나도 그래
돈, 성별, 편견, 의지, 언어
심지어 시간까지
무언가가 되지 못하도록
혹은 무언가가 되도록
무의미한 삶을 살도록
혹은 의미 있게 살도록 부추기듯이
무언가가 있어
우리 눈에 공간은 보이지 않고
그곳에 채워져 있는 것들,
차지하는 그 부피만이 보이듯이
우린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지만
분명 여기엔 뭔가가 있어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또는 아주 예민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이 우주에는 분명 뭔가가 있어
그 길고 긴 여정을
혹은 짧은 인생을 돌고 돌아
결국엔 우리를 이곳에 존재하게 만드는 것
이 세상엔 분명 뭔가가 있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드는 결핍들, 모자란 것들
상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것들
구멍 난 마음을 채워줄 그 절대적인 것
그렇구나
이 세계의 중심엔 사랑이 있어
저 하늘엔 사랑이 있어
이 땅 위엔 사랑이 있어
그래서 미움이 있고 고통이 있어
다리가 불편해서
팔을 있는 힘껏 휘두르며
그 반동으로 지하철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가
불가피하게 주변 사람을 치듯이
결핍이 있고 고통이 있어
절대적인 어려움이 있어
사랑이 절대적인 것이기 때문이야
이 지구엔 그 모든 것의 이유가 있어
빛이 나를 늙게 만들어도
넌 나를 사랑해 줄 거야?
쭈글쭈글 할아버지가 되어도
넌 내게 귀엽다고 할 거야?
흔들리고 있어
내 세상이, 기준이 바뀌고 있어
내가 따지는 현실이 뭔지
내가 추구한 낭만은 뭐였던지
분간이 안 돼
그간 존재하지도 않는 것들을 좇은 느낌이야
우리 모두 그러고 있는 거야
그 짧은 고통과 행복의 순간들을
소중히 하는 것 밖엔 방법이 없는 거야
난 아무렇지 않고 싶을 뿐인 거야
네 손을 놓지 않을게
네 손잡고 힘껏 부딪혀 볼게
내가 그렇게 으스러질 때마다
난 다시 태어나니까
난 실패한 적이 없어
부서지고 다시 태어나는 걸
반복해 왔을 뿐이야
믿을 수 없는 건 없어
믿지 않기로 선택한 것뿐이야
이렇게 믿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우리가 있기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