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한얼 Haneol Park May 16. 2024

인생은 등산

오늘의 생각 #89



산 넘어 산


하나가 해결되면 새로운 문제가 생기고

그게 해결되면 더 큰 문제가 생긴다.

매일매일 해결을 위한 선택과 행동의 연속,

행동을 위한 생각의 연속

생각을 위한 휴식의 연속

휴식을 위한 멈춤의 연속

멈춤을 위한 비움의 연속

비움을 위한 채움의 연속

채움을 위한 비움의 연속.

채우고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찢어지고 회복하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점점 더 강해지는 몸과 마음

점점 더 최종 버전의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참 짓궂은 환경에서 태어나는 사람도 있다.

산불이 자주 난다거나 (가정 폭력)

태풍이 불어서 크게 다친다거나 (예상치 못한 사고)

가뭄이 길다거나 (물질적, 정신적 빈곤)

이 밖에도 참 날씨가, 환경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내가 태어난 산이, 내가 오르는 산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나.

그건 내가 노력한다고 바꿀 수 있는 운명이 아니다.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질 수밖에 없다.


대신 같은 원리로

맑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이 비칠 때도 있고 (어떤 이유로든 기분 좋은 날이 있음)

우연히 맛있게 익은 열매를 발견할 수도 있고

(뜻밖의 행운이 찾아옴)

웅장한 풍경에 경외심을 느낄 때도 있고 (감동받는 일이 생김)

이 밖에도 좋은 사람이나 귀인을 만난다거나 하는 멋진 날을 맞이할 때가 있다.

이것도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일어나는 운명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자연과 세상의 힘 앞에서 한 개인은 겸손해야만 한다.


불행에서 배울 점을 찾고 행운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그렇게 점점 더 겸손하고 성숙한 인간이 되어가는 것이다.




쇠똥구리


그런데 산을 오르다 보면 가끔씩 특이한 개체나 돌연변이, 혹은 짐승이나 벌레를 마주칠 때가 있다.


자신과 수준이 맞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필요에 의해 이용하고 버리는 소시오패스들을 만날 때도 있고


강한 사람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만만한 사람들한테만 센 척하고 떵떵거리며 사는 강약약강 짐승들을 만날 때도 있고


모이기만 하면 뒷담을 하며 만만한 사람을 깎아내리고 자기들이 더 수준 높은 사람들이라는 착각을 즐기는 짐승들을 만날 때도 있고


냄새나고 더러운 똥을 열심히 굴리고 열심히 먹고 자기가 싼 똥까지 자기가 먹기도 하는 쇠똥구리들을 만날 때도 있다.


가끔은 사람보다 고양이나 강아지가 더 똑똑하고 착하. 사람이 귀여운 쇠똥구리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런데 이조차도 우리가 오르는 산의 생태계이고, 노력한다고 바꿀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정말 인간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이 모든 것이 자연의 일부임을, 부분의 합은 전체 그 이상임을 받아들여야 하고, 가식이나 방어나 공격이 아닌 진심과 솔직함, 수용과 친절함이 진짜 강한 것임을 알아야 하고, 그렇게 솔직하고 친절하게 살아도 문제가 없으려면 더욱더 양심 있고 매너 있고 성숙하고 진실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미성숙하고 매너도 없고 배려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 냅다 솔직하고 친절하면 주변에 오히려 폐를 끼치거나 만만하게 보일 수 있는 것 같다.


인생은 등산

산 넘어 산.




가지치기


포기라는 건 할 만큼 해봤고 더 이상 미련이 없을 때

내가 오르는 산이 그냥 그런 산이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인생에 회피나 도망치는 것이란 없다.

언젠가 결국엔 모두 내 업보로 돌아오기 때문에 현실을 마주칠 수밖에 없다.

래서 포기는 아름답다.

꼭 잘해야 할 이유도 잘 지내야 할 이유도 없다.

포기란 내가 오르는 산이 그냥 그런 산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포기하면 편하다.

편안하다는 것은 진정한 행복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포기한 만큼 얻게 된다.

마치 가지치기를 해줘야 나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처럼.

그래서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 때에도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 진짜로 다행인 이유가 보이고 그로 인해 새로운 기회가 찾아오고 행운이 찾아오고 '그게 다 이러려고 그랬었나 보다...' 하며 감사할 수 있게 된다.


당장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통해 포기할 수 있는 것들을 보자. 내게 자극을 주는 모든 일들 속에는 무언가를 배우고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숨어있다.



이게 내가 20년 넘게 내 산을 오르며 배운 것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죄책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