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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신

오늘의 생각 #125

by 박한얼 Haneol Park



결국 삶은 각자에게 필요한 것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무엇이든 부작용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필요하지 않은 건 가지지 않게 된다. 하지만 축복인지 저주인지 우리는 눈과 귀를 가졌으며 보고 듣는다. 수많은 자극들은 우리로 하여금 필요 없는 것을 원한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인생이 뭐 그렇게 대수라고, 그냥 필요한 걸 찾아가고 필요한 게 찾아오면 그걸 누리면 그만이잖아.




너에게 오지 않는다면 필요하지 않아서야. 어떻게든 쟁취해 낸다면 그건 정말 너에게 필요했던 거라서야. 너는 네가 감당해 낼 수 있는 만큼만 가질 수 있어. 너의 그릇, 너의 이야기, 너의 갈망으로. 너로부터 시작해서 너로 도착하는, 길이 없는 길이야 말로 너 자신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야. 그러니 만족밖에 무엇을 할 수 있겠어?




어느 적적한 밤, 갑자기 모든 게 초월적인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보름간 고통과 혼란 속에서 사랑도 건강도 목표도 다 잃은 것만 같은 느낌에 허우적대고 있었다. 삶의 어려움. 시작과 과정은 참 복잡하지만 결과는 늘 단순하다. 결국엔 모든 걸 내려놓게 된다는 것. 다 포기하고 나면 보인다. 내가 뭘 놓치고 있었는지. 죽고 싶을 만큼 힘들면 죽을 용기로 그냥 사는 게 낫겠다, 이 모든 게 과정일 뿐인데, 마지막이 아닌데, 적어도 한 번은 더 기회가 있을 텐데, 사실은 수십 번이고 수백 번이고 기회가 있을 텐데, 상실, 결핍, 고통이란 이 모든 걸 망각하게 하고 내면의 중심을 잃게 하며 바깥세상의 온갖 것들에 쩔쩔매게 만든다.

내가 너무 아까워. 내가 너무 불쌍해. 욕망과 현실은 거짓과 착각으로 만들어진 환상, 갈망과 진실은 내 안의 모든 걸 이해하는 배경이 되어주는 내면의 신. 힘들게 고민하다 진실을 알고 나면 허탈해지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의 목마름을 억압하지도, 휘둘리지도 않는 현명한 선택을 할 때 그 진실은 확신을 얻고 빛을 발할 것이다.




덕분에 많이 성장했잖아. 덕분에 좋은 추억 많이 만들었잖아. 추억으로 살아가는 거지. 마지막이란 것도 없잖아. 그냥 해보면 되잖아. 물론 안전하게. 그냥 다 포기하고 삶이 시키는 대로 하면 되잖아. 다가오는 물살을 두 팔 벌려 시원하게 맞아주면 되잖아. 아프긴 한데 통쾌하다. 그래, 다 내려놔. 이게 걱정 따위 없어. 세상은 거짓말. 이젠 두 발 뻗고 잘 수 있겠다.





근데, 애초에 나라는 게 있나?

이것조차 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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