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 주는 안도감

오늘의 생각 #141

by 박한얼 Haneol Park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세상은 왜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것만을 '좋은 것'으로 판단하는 걸까? 비관적이고 수동적인 게 왜 '나쁜 것'일까? 반항은 왜 '멋진 것'이거나 '금지해야 하는 것'이 될까? 건강해야 한다는 것도 일종의 강박이 아닐까? 좀 수동적이면 어떻고 아프면 어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게 따지면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것도 과하면 문제가 되지 않나?

세상은 자꾸만 어딘가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황금열쇠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인생의 해답은 결국 부딪히고 깨져가며 직접 찾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나는 누군가의 조언, 메시지, 말 한마디 한 마디가 다 불필요하게만 느껴진다. 결국 자기가 뭔가를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의 서투른 말들이 뭔가 대단한 것처럼 포장된다.

현실적인 것은 강한 것이고 감정적인 것은 나약한 것인가? 그렇다면 감당할 수 없는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사람들은 나약한 것인가? 애초에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 것인가? 사랑이 꼭 축복받고 받아들여져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지 못한 사랑은 오래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왜 사람들은 아무런 의심도 없이 믿어버리는 걸까. 의심하지 않는 사람들은 엉뚱한 것을 믿고 엉뚱한 것을 의심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모두 자연스러운 것이고 세상의 이치라고 생각하면 그 아이러니는 나로 하여금 사춘기 소년으로 만든다. 모든 게 혼란스럽고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인 느낌.






이 커피에 붙여진 이름은 mascarada. 가면 무도회라는 뜻으로 농장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커피다.



"Nothing is real, I know nothing, and love is everything."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어 문장이다.
예전에는 이 문장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였었지만, 많은 상실과 회복, 그리고 포기와 수용 끝에 다른 의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If I come to know that nothing is real), 난 진짜를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고(Then It means I know what is real), 사랑은 진짜가 아니다(Love itself is not real), 왜냐하면 사랑이 모든 것인데 모든 것은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Because love is everything, yet everything is not real).

곧, 아무것도 진짜가 아니라는 것만이 진실이 된다.



'Dear Reader' by Taylor Swift


내가 존경하는 아티스트는 "지도를 꺼내서 아무 데나 찍고 그곳을 향해 달려라. (Get out your map, pick somewhere and just run.)"라고 노래했다. 하지만 나는 지도 밖으로 나와버렸다. 마치 세상에 붙여진 껍질들을 벗기고 진짜 그 속살을 보는 것처럼. 그리고 또 그 안의 씨앗으로 커피를 만들어 마시는 것처럼, 나는 규범, 방식, 정답이 아니라 그저 삶의 에센스를 원하는 것이다. 물론 그 에센스를 추출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


진실은 언제나 내게 안도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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