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생각 #148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에 자신을 쏟아낼 곳이 필요하다.
마치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들처럼.
그 방식은 제각각이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며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고,
불합리에 맞서 거리로 나서는 사람도 있으며,
동아리나 여행처럼 세상과 사람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방식도 있다.
어떤 이는 자기만의 감수성과 예술성 속으로 깊이 들어가 우울과 고독을 천천히 음미한다.
누군가의 방식은 누군가에게는 시시해 보일 수도 있고, 위험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선택은 결국 살아 있기 위해 택한 각자의 통로일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언어로 세상을 견딘다.
웃음으로, 분노로, 이동으로, 창작으로, 침잠으로.
어디에 몸을 던지든, 그곳에는 반드시 자기 자신이 있다.
아마 중요한 건 방향이 아니라
자신을 흘려보낼 수 있는 장소가 있는가일지도 모른다.
아무 데도 쏟아내지 못한 에너지는
사람 안에서 천천히 굳어버리니까.
그런데 종종, 자신을 흘려보낼 곳을 찾지 못한 채 헤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안에서부터 천천히 썩어 들어가며,
마치 자신이 세상의 피해자인 양 피해의식과 죄책감 사이를 오간다.
바깥에서 기분 좋게 불고 있는 산들바람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세상과 단절된 얼굴로 하루를 살아간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 스스로는 그것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점이다.
안개처럼 흐릿해서 직감으로만 감지되는 어떤 절망.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허가 하루의 공기에 섞여 있다.
어쩌면 사랑의 경험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
주는 법도, 주고받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세상을 건너오게 된 것인지도.
그래서 그들은 세상의 원리를 모른다기보다,
아직 배울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에 가깝다.
나는 결국 중용의 지혜를 떠올리게 된다.
나 자신에게 향하는 사랑과, 세상을 향하는 사랑이
딱 절반씩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어쩌면 그 황금비율이야말로
존재가 타고난 열정을 가장 건강하게 흘려보내는 방식이 아닐까.
안으로만 웅크리지도 않고,
밖으로만 소진되지도 않는 상태.
자신을 돌보면서도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그 지점에서
우리는 비로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 균형이야말로, 사실 흔들리는 것이 정상이다.
늘 불균형하고, 어딘가로 쏠리고, 소진되었다가
다시 중심을 되찾는 일의 반복.
정말 질리고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지는 순간도 있겠지만,
어쩌면 이조차 자연스럽고 아름다운 과정인지도 모른다.
불확실성은 언제나 나 자신을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다.
피해야 할 적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보내는 가장 성실한 스승처럼.
다시 돌아올 수 있는 나 자신을 믿으며, 두려움 없이 흔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