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타트업에 관련된 강의를 들었는데, 기억에 남는 가장 인상적인 내용이 있다. 성공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3가지 요소,
이유, 차별화, 보편성.
우리 삶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들의 연속인데, 누가 이렇게 하면 성공할 것이라고 일일이 알려줄 리 없는 데다 각자 삶의 모습이 천차만별이기에 결국엔 본인이 직접 정답을 찾아가야 한다. 누군가의 경험을 통해 득을 볼 줄도 알아야 한다는 가사(♬악동뮤지션 - 째깍째깍째깍)도 있지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나의 경험, 나의 선택이다. 경험이나 직관을 통해 어떤 선택을 만들어갈 때, 저 세 가지 요소는 좋은 매뉴얼이 되어 줄 것이다.
왜 그런 선택을? 그리고 그걸 남들과는 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동시에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먹힐만한 포인트가 있을까? 이 세 가지의 질문을 통과한 결정은, 성공하든 실패하든 적어도 나에게 의미나 배움이 있는 선택이 되어줄 것 같다. 그래서 앞으로는 어떤 일에 있어서 고민되는 부분이 생긴다면, 난 저 세 가지 질문을 매뉴얼로 활용해 볼 생각이다.
나는 아직도 내가 되고 싶은 그 무언가의 실체를 찾아가는 중인 것 같다고 느끼곤 했었는데, 요즘의 나는 어느 정도 그 실체가 내 안에서 모습을 드러 내고 있는 것을 느낀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게 된 이후부터 가속도가 붙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니까, '내'가 점점 더 뚜렷해지는 기분이 든다. 한 편으로는 색안경이 두꺼워질까 봐 걱정도 된다. 내 생각이 강해질수록, 세상은 점점 더 내 주관적인 모습으로 변할 테니까.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흩어져있던 생각들이 하나로 모여 뚜렷해질수록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누야샤가 흩어진 구슬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야 했던 이유를, 카드캡터체리가 흩어진 카드들을 되찾아야만 했던 이유를 이젠 알 것 같다. 색안경이 두꺼워졌다는 건, 오히려 나 자신을 찾았다는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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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생각들을 함과 동시에, 고민되는 일이 생겼다. 누군가와 싸웠는데, 어떤 방법을 선택해야 서로에게 좋은 화해가 될 수 있을까 하는 거였다. 사실 화해를 하고 싶기도, 하기 싫기도 했다. 상대방도 나에게 상처를 받았겠지만 나라고 그런 일을 겪고 괜찮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다 뜬금없이 저 세 가지 요소가 떠올랐다. 만약에 내가 화해를 하기로 한다면, 왜 그런 선택을?(이유) 그리고 어떻게 색다른 결론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차별화)동시에 쉽게 와닿을만한 방법은 뭐가 있지?(보편성) 고민을 해봤다. 일단 누구에게나 먹힐만한 대화법, 나는 바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안 좋은 감정을 품게 된 것은 그 사람이 나에게 한 말과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궁금했던 점에 대한 질문들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혀갈 수 있겠다고, 나아가 화해까지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유'였다. 내가 왜 질문을 하고, 이해를 해야 하고, 궁극적으로 내가 왜 그 사람과 화해를 해야 하지?...
친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내가 어떤 이유를 가져야 하는 걸까?"
그리고 한 친구가 말했다.
"정답은 없어.
너가 대화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는 거고."
이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답을 내보겠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애초에 정답이 없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수많은 선택들은 언제나 정답이 아니다. 당장 좋은 결과가 나온 것 같아도 그게 나중에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당장 나쁜 결과가 나온 것 같아도 나중에 어떤 식으로 좋은 밑바탕이 되어줄지는 모르는 일이다.(인생사 새옹지마)
'커피에 오답은 있지만, 정답은 없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조금 반전이지만, 나는 화해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은 대화하기 싫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대화하고 싶어진다면 그땐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 같다. 아마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에는 매뉴얼도 소용이 없는 것이겠지. 진실된 마음만이 중요한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