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민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가족이나 친구들이나 내게 '그걸 뭘 그렇게까지 신경 쓰냐, 너무 오바해서 생각한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한다. 예를 들어, 일로 만난 사람과 일 얘기를 하느라 연락을 했었는데 갑자기 답장이 며칠 없으면, '내가 뭔가 잘못했나?' 혹은 '뭐가 마음에 안 드셨나?' 하고 별 생각을 다 한다. 일 때문에 만난 사람에게까지 일일이 감정 소모를 한다. 그런데 보통 그럴 때마다 대부분 상대방은 별생각 없다. 즉, 나 혼자 넘겨짚는 게 심하다. 상상력은 자유롭게 창조적으로 활용되어야 하는데, 나같은 경우에는 압박 속에서 불안함을 키우는 방향으로 이용될 때가 많은 것 같다. 상상력의 부작용이다.
사소한 것도 크게 받아들이다 보니 이용하는 대중 매체나 미디어도 일부러 순한 맛을 고른다. 4번째 주제였던 '크레용 O짱' 내용처럼, 짱구나 아따맘마 같은 평화롭거나 소소한 감동이 있는 키즈 컨텐츠도 즐겨 본다. 심지어는 지니위니의 아동 교육용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시간을 때운 적도 있다. 물론 아예 키즈 컨텐츠'만' 보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피터팬 콤플렉스가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최근에 '인투 더 스톰'이라는 태풍 재난 영화를 보게 됐는데 사람들이 바람에 쓸려가면서 지르는 고통스러운 비명 소리 같은 게 너무 싫어서 그런 게 나올 때마다 다 빨리 감기를 해버렸다. 영화 '기생충'도 영화관에서 관람하고 난 뒤 밖으로 나왔는데 하루 종일 두통이 너무 심했다. 계속 긴장감이 지속되는 데다, 사람이 죽는 장면까지 나오다 보니 눈을 몇 번이나 질끈 감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고...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모른다. 그냥 난 내가 고통스러운 것도 싫고 남이 고통스러운 것도 싫다. 고통이라는 거 자체가 나에겐 벅차다. 남들보다 뭐든 더 과장되게 받아들이다 보니 세상을 살아가려면 너무나 많은 심적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마음과 몸은 항상 연결되어있기 때문에, 심적 에너지가 고갈되면 신체적으로도 바로 반응이 나타난다. 피곤하고, 트러블이 나고, 다리가 아프다.
그런데 세상을 이렇게 예민하게, 에너지가 고갈된 상태를 자주 겪는 성격으로 살아간다는 건 가끔 고문 같다. 아침에는 꽃내음과 풀내음이 향기롭게 나를 깨워주고 점심에는 따스한 햇살과 맛있는 샌드위치, 선선한 바람이 나를 달래고 저녁에는 별빛 가득한 풍경과 벌레들이 우는 소리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숲 속의 동화같은 마을에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날 구해줄 왕자님이든 공주님이든 마법사든 요정이든 다 필요 없으니까 그냥 혼자 저러고 살고 싶다.
그래서 평소에 그만 좀 예민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성격을 바꾸고 싶었다. 무던하고 융통성 있고 매사에 차분한, 그런 한결같은, 그러니까 '나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친구에게 성격을 고쳐야겠다고, 앞으로는 다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고 말했더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성격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너 편한 대로 생각해."
그냥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정말 스트레스 받을 일이 적어도 절반으로는 줄어들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어렸을 때부터 남 눈치를 살피고, 반응하고, 잘해주고, 신경 쓰는 인간으로 자란지라 그게 좀 어렵다. 그리고 남한테 잘 보이면 떡 하나라도 더 떨어질지 누가 알겠나. 난 일단 누구에게든 잘해주고 싶다. 그래서 일단 친구 말대로, 당장 실천할 수 있는 건 이거였다.
'그냥 내 마음 편한 대로 생각하기.'
성격은 어느 정도 일관적으로 반복되는 모습이라 바꾸기가 어렵다. 그런데 생각은 조금만 내려놓으면 바꿀 수 있다.생각이라는 거 자체가 내 머릿속에만 있는 거지 실존하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앞으로는 그냥 내 마음 편한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굳이 내 마음 불편한 대로 상상하고 불안해하고 미리 걱정할 필요 없잖아. 어차피 내가 살아있는 한 언제나 마지막 기회라는 건 없고, 뭐든지 방법은 생긴다. 생각해보면 엄마 뱃속에서 나와 세상에 태어나는 데에도 성공했는데 뭐가 문제야!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을 가지는 것, 흩어진 생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그러면 안개가 걷히듯 점점 선명해지는 '내'가 보일 것이다.
희망을 갖는 것, 결국엔 해낼 것이라는 긍정적인 암시를 갖는 것, 과정 속에서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고 믿는 것, 이 모든 것은 거짓도, 진실도 아닌 그냥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