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쓰레기

오늘의 생각 #1

by 박한얼 Haneol Park


아침 일찍 일어났다.

스타벅스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됐기 때문!


나는 1년 365일 중에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한다. 종교도 없는 녀석이, 그렇게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면서 부처님 오신 날은 왜 안 챙기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웃기게도 나는 그냥 크리스마스 특유의 분위기를 좋아할 뿐이다.


뜨거운 여름이 너무 싫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떠올리듯이 더워서 항상 시원한 곳을 찾아 헤매야 하고, 무기력해지고 땀과 끈적끈적 숨 막히는 공기까지. 세상에서 제일 싫어한다는 뜻의 단어가 생겼으면 좋겠다. 나의 여름을 표현하는 단어로 쓸 수 있게. 세상엔 단어가 너무 부족해.


아무튼 집에서 950m 거리의 스타벅스를 향해 자전거를 타고 오픈 시간에 맞추어 도착했다.


'오픈 시간보다 2분 일찍 도착했으니 아무도 없겠지? 나 혼자 아침 일찍부터 갑자기 들어가서 MD 구경하고 커피 사 마시면 직원들이 좀 특이한 애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어쩌지...'


정말 쓸데없는 자의식 과잉이었다. 이미 3~4명이 들어와 MD 사진을 찍고 음료 주문을 하고 있었다. '뭐지 이 사람들...' 동지애와 위기의식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번 크리스마스 MD 소개가 올라온 3일 전부터 눈독 들이던 '그것'을 다른 사람이 채갈까 봐 걱정되었던 것!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내가 원했던 '그것'이 벌써 딱 한 개만 남아있었다. 왼쪽 사진의 오른쪽 구석 쪽 약간 비어있는 곳에 보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매장마다 3개씩 들어온 것 같은데, 오픈 시간보다도 2분 일찍 도착했는데, 다른 건 아직 팔린 흔적도 없이 꽉 차게 진열돼있는데, 혼자서 이미 1개밖에 안 남았다고...?


사버렸다. '그것'은 바로 '홀리데이 LED 뮤직 박스'였다. LED 불빛이 들어오고, 뒤에 달린 레버를 돌리면 크리스마스 오르골 음악이 흘러나오는 인테리어 소품이다. 스타벅스 추종자들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비하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한심해 보이겠지만, 난 정말 갖고 싶어서 못 참겠는 것만 산다. 그러니까 내겐 의미가 있는 소비 행위, 소확행의 실천일 뿐!


포장하자면 그렇고, 그냥 예쁜 쓰레기를 샀다. 불빛이 들어오고, 작고 귀여우며, 오르골 기능이 있는, 빨간색 플라스틱 쓰레기... 어쩌면 난 마케팅의 희생자일지도...




(갑자기 왜 이런 사진이 튀어나오는지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이 친구의 이름은 바비루사, 말레이어로 '돼지 사슴'이라는 뜻. 저 친구들은 젊을 때부터 뿔이 자라나기 시작해 콧등을 뚫는 고통을 참아야 한다. 듬직해 보이는 외모와는 다르게 육식동물의 사냥감이 되는 겁 많은 야행성이라고...


콧등을 뚫고 눈앞 쪽까지 휘며 자라나는 저 불편하고 걸리적거려 보이는 뿔은, 바비루사들의 섹시 포인트라고 한다. 뿔의 크기나 모양에 따라서 얼마만큼의 성적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가 바비루사의 입장이 아닌지라 확실하지는 않겠지만 과학자들의 오랜 연구에 의하면 그렇다고 한다. 그도 그럴 법한 게, 번식철 수컷들끼리 힘 겨루기를 할 때도 저 뿔은 쓰지도 않고 앞발만으로 육탄전을 벌인다고 (...) 눈밑을 찌를 정도로 길게 자라나 땅을 파는 용도로 쓸 수도 없다고 (...) 뿔은 바비루사들의 예쁜 쓰레기인 것이다. 쟤네들도 나처럼 의미 없이 예쁜 것을 좋아하나 보다. 너희는 번식의 희생자들인 거니?


그런데 인간들의 스타벅스 MD가 오픈 시간부터 불티나게 팔리는 것도, 바비루사들이 번식을 위해서라면 저 쓸모없는 뿔로라도 매력을 증명해야 하는 것도, 특정 욕구를 채워준다는 의미에서는 예쁜 쓰레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소품은 크리스마스 테이블 인테리어를 한층 풍요롭게 해 줄 것이고, 뿔은 그들의 생의 욕구를 효과적으로 채워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다.


이처럼 불필요해 보이는 것들도 결국엔 필요한 것이 될 때가 있다. 필요하다는 건, 소중하다는 것. 예쁜 쓰레기는, 어쩌면 소중한 물건. 음에 안 들거나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들도 어쩌면 소중한 것.


사람들이 세상을 입체적으로 바라봐주었으면 좋겠다. 이건 쓰레기가 아니라구요!


이렇게 예쁜 게 어떻게 쓰레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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