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숲 : page 4

약속

by 박한얼 Haneol Park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

빛은 초원을 거닐다 밤을 지키러 온 어둠을 만났다.


어둠 : 안녕, 네가 빛이니?


: 응 안녕, 네가 어둠이구나.


빛은 그의 칠흑 같으면서도 아름다운 자태에 놀랐지만,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어둠은 그 모든 것을 눈치챘다는 듯 말했다.


어둠 : 흠, 너도 내가 마음에 들었구나. 그동안 날 선망하지 않는 녀석들은 본 적이 없어. 누구나 날 부러워하거나 갖고 싶어 하지. 달과 별을 품고서는 누군가의 외로움이 되어주는 내가 아름답지 않을 리 없잖아?


빛은 그의 뻔뻔하고 당돌한 태도에 기가 차면서도 거부하기 힘든 매력을 느꼈다.


어둠 : 그런데 말이야. 왜 그림자를 끌고 다녀?


: 아, 이건 내 상처야. 나는 상처를 받으면 이렇게 그림자가 생기거든.


어둠 : 상처나 아픔이 없는 존재는 없지. 그런데 그림자의 모양이 참 예쁘다. 마음에 들어. 혹시 나랑 같이 노래할래?


: 정말? 그런데, 난 약속이 있어서 가 봐야 해. 밤마다 동굴에 가서 늑대를 지켜주거든.


어둠 : 알겠어, 그럼 내일 이 시간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


커다랗고 차분하면서도 아름답게 흐르는 그 웅장한 모습이 아른거려 밤새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빛이었다.



다음 날, 빛이 약속 장소에 찾아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어둠은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설레던 마음은 차갑게 식으며 새로운 그림자가 되었다.


늑대 : 너, 또 그림자가 생겼어. 이번엔 무슨 일이야?


: 어둠이 나와의 약속을 어겼...


늑대 : 왜 자꾸 다른 데서 상처받고 오는 거야?


: 알아, 늑대야. 하지만 그건 내 탓이 아니잖아. 그가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는 걸? 난 그의 노래가 궁금했을 뿐이야, 내 노래도 들려주고 싶었고.


늑대 : 그럼 가 너 없이 이 동굴에서 혼자 춥고 어둡고 외로워도 괜찮아?


늑대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늑대의 애처로운 모습에 슬픔을 느낀 빛의 그림자는 더욱 커져갔다.


어둠이 그날 나타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빛은 고민해 보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더 이상 늑대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고, 약속을 어기는 존재와는 친해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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