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상태가 많이 안 좋아졌다.
새로 온 도우미가 중요한 약을 빼먹었던 탓이었다.
그 일 이후로 할머니는 환각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셨다.
침실에 누워 있으면 헛것이 보인다며,
그 방에 들어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셨다.
결국 할머니는 거실 쇼파에서 잠을 청해야 했다.
낮에도 계속해서 불안에 시달리셨다.
할머니에게는 법적으로 지정된 보호자가 있었다.
그는 변호사였지만, 진정한 의미의 ‘보호자’는 아니었다.
행정 절차만 처리할 뿐,
할머니의 하루와 마음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의 무관심은 할머니뿐 아니라,
할머니의 언니와 도우미에게까지 실망으로 번져갔다.
그는 오직 생활비를 전달할 때만 찾아왔고,
할머니가 병원에 실려 갔을 때조차
직접 오지 않고 전화 한 통으로 모든 일을 결정했다.
우편물을 챙겨가는 것 외엔, 할머니의 집에 발길을 거의 들이지 않았다.
물론 그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가 담당하는 노인들이 여럿일 테고,
그의 일은 ‘정서’보다 ‘관리’에 가까울 것이다.
하지만 법적 보호자라면,
적어도 “오늘은 별일 없으신지” 한 번쯤 안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할머니의 유일한 가족인 언니에게
그분의 근황을 전해주는 것도 그의 역할이었을 것이다.
나는 바로 앞집이다보니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방문할 수 있어서,
요즘은 자연스레 할머니를 더 자주 살피게 되었다.
할머니의 머리를 감겨드리고, 손톱을 깎아드리고,
도우미에게 약을 꼭 챙기라고 신신당부한다.
어느새 가족처럼 되어버린 관계였다.
얼마 전에는 할머니의 건강 상태가 걱정되어
직접 주치의를 찾아갔지만,
하필 그날은 의사가 부재중이었다.
대신 진료를 본 다른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가족도 아니시라면 너무 깊게 관여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복잡해졌다.
‘가족이 아니라서’ 멈춰야 한다는 말이,
왠지 애잔하게 느껴졌다.
할머니는 병원에 있는 것이 갑자기 두려워졌는지
숨을 가쁘게 내쉬며 정신이 혼탁해지셨다.
앞으로는 방문의사를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얼마 전, 할머니는 갑자기
“지하실에 돈을 숨겨뒀던 것 같아” 하시며
같이 내려가 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지하실 문은 잠겨 있었고,
열쇠는 아무리 찾아도 맞지 않았다.
그 열쇠를 마지막으로 사용한 사람이 바로 변호사였다.
우리는 그가 아직도 열쇠를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열쇠를 달라고 연락했지만,
그는 “알겠다”고만 하고 두 달이 지나도록 주지 않았다.
그 일 이후로 할머니와 나는
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할머니의 병문안 한 번 하지 않았다.
전화도, 메시지도 느리고 형식적이었다.
열쇠도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이 모든 불만이 쌓여
할머니와 언니는 변호사를 바꾸고 싶어 했다.
하지만 또 다른 변호사가 와도
결국은 같은 일이 반복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신 어느 날
할머니는 다시 내게 부탁하셨다.
"너가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할머니의 언니 역시 다시 한번 내게 부탁했다.
“법적 보호자가 되어줄 수 있나요?”
이전에 이미 몇 번이나 거절했던 부탁이었다.
가족도, 사촌도 없는 상황에서
그들은 어쩌면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내게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오랜 시간 쌓인 신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동안의 시간 동안,
이미 ‘가족이 아닌 가족’의 마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애초에 거절했던 마음을 바꾸어
그 부탁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보호자가 된다고 해서
큰 변화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곁에서 살피고, 함께하는 일은 그대로일 테니까.
다만 변호사로 인한 스트레스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절차뿐이다.
변경이 순조롭게 이루어질지,
법적 분쟁으로 번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만약 무탈하게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이웃 이상으로,
법적으로도 서로를 지켜주는 관계가 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제일 먼저,
할머니의 손에 다시 은행카드를 쥐어드리고 싶다.
그동안 세상과 단절된 듯 느껴지던 그 손끝이,
다시금 자신의 삶을 만지는 순간을 맞이하길 바란다.
이 모든 바람이 이루어지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