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시선과 외노자의 시선

여행자는 시간이 금, 외노자는남는 게시간

by 바카



나는 유럽 독일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 유럽에 발을 딛었을 때의 설렘을 기대하며 환상을 한가득 안고 떠나왔다. 그러나 그 환상은 한 달도 되기 전에 와장창창 깨졌다.


여행자로 왔을 때랑(다른 유럽 국가였지만) 거주목적으로 생활하는 것은 천지차이였다. 여행은 숙소를 예약하고 관광하며 하고픈대로 하면 된다. 그러나 거주목적일 경우에는 비자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며, 거주지 등록(주민센터에 전입신고하는 것과 같다.) 문제, 아이들 기관 등록, 인터넷 설치, 필요한 물건 구매 등등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다. 우리나라처럼 행정처리가 빠른 것도 아니고 한 번에 한 가지 일을 처리하는데도 최소 한 달에서 최대 3개월이 소요된다. 게다가 독일 공무원들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아무리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고 해도 로마에 왔으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당연히 독일에 왔으면 독일어를 사용해야겠지만! 영어를 할 줄 아는데도 일부러 독일어만 고집하는 게 문제였다. 독일인 시선에서는 우리가 아시아 어느 개발도상국에서 온 동양인에 불과할 테니까 말이다. 거주지 등록을 먼저 끝내고 나면 다음 미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또 다음 미션, 또 그다음 미션이 차례대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독일어를 하나도 모르는 상태여서 더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독일에 오고 싶어서 준비된 이주도 아니었기에 더욱. 그나마 영어를 잘하는 남편 덕분에 여차저차 일을 해결해나갈 수 있었다.


베를린은 난민으로 인해 유치원의 아이들이 포화상태였다. 대기를 걸어놓고 1년을 기다려야 자리가 나올까 말까 한 상태였다. 다행히 우리는 타이밍이 맞아서 4개월 대기 후 8월 학기에 유치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또 5살부터는 무조건 유치원에 가야 한다는 조항(?)이 있었고 형제자매의 경우 우선순위가 있었다.(가산점 제도식) 그렇게 우리는 가산점을 받아서 4개월 만에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다닐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다음 순서는 아이들의 유치원 적응. 남편의 회사 적응. 나의 생활 적응이 기다리고 있었다. 당연히 비자 문제도 계속 진행 중에 있었다. 그나마 우리는 운이 좋게 지인의 집으로 들어가서 인터넷 설치나 가전 가구 구매를 건너뛸 수 있었지만 만약 집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르겠다.


베를린은 현재 서울처럼 집값이 한해, 한 달 만에 껑충껑충 뛰어올라가고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다. 우리나라처럼 돈이 많다고 무조건 계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주인이 세입자를 선택하는 구조라서 세입자는 최대한 정중하게 자기소개서를 집주인에게 보내고 선택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집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집을 보러 갈 때 회사 면접 보러 가듯이 온 가족이 옷을 단정히 입고 최대한 어필을 해서 최종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계약으로 이어질 수가 있다.


우리나라와 너무 다른 집 구하기 시스템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기에 지인의 집에서 살 수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독일에 도착하고 처음 일주일은 여행자 모드였던 것 같다. 낯선 풍경들, 낯선 건물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좋아 보이기만 했다. 이대로 해피엔딩인 줄로만 알았다. 그건 나의 크나큰 오산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한 달도 채 안 걸렸다. 남편과 나는 한국에서의 삶을 살다가 갑자기 독일에서 독일식으로 살아야 되니 당연하겠지만 너무 답답함을 느꼈다. 특히 서로에 대한 답답함이 더 커져갔다. 회사에서 팀으로 비유하자면 우리는 합이 잘 맞지 않는 파트너였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다면 몰랐을 궁합이었을 것이다. 내가 알던 네가 아니고 네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그렇게 여행자 모드는 순식간에 사그라지고 생존본능만 남은 채 이곳 땅에서 어떻게든 적응하고 살아가야만 했다. 먹는 것 또한 여행자였다면 계획된 여행경비 안에서 자유롭게 음식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레스토랑의 가격을 보고 깜짝 놀란 우리는 저렴한 마트에서 식품을 구입해 직접 요리하는 것을 택했다. 관광지에서 살고 있었지만 관광지보다 회사와 유치원을 오고 가는 길, 마트에서 장보는 일 등이 우선이었다.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보다 다른 지역에 관광을 가는 심리, 서울 산다고 다 서울 관광을 하는 게 아닌 것처럼. 우리는 여행자가 아니라 거주를 목적으로 왔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더 앞설 수밖에 없었다. 아마 그때 당시 한국에서 부모님이 방문하시지 않았다면 관광지를 둘러볼 겨를도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 덕분에 베를린 관광을 할 수 있었다.


여행자였을 때는 맛집을 찾아다녔었다. 그러나 여행자가 아닌 우리는 한 달에 가족 식비가 얼마나 지출되는지가 중요했고 맛집보다는 집밥을 택해야 했다. 다행히 독일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았다. ㅎㅎ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의 적응이 끝나갔고 계절이 3번 바뀌었다. 독일에서 맞는 첫겨울은 당황스러울 만큼 깜깜했다. 오후 4시가 체감상 우리나라 밤 9시쯤이었다. 코로나전에는 겨울 크리스마스 마켓으로 여행자 모드로 전환되는 날도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 겨울은 암흑기였다. 6개월 동안의 어둠은 정말이지 끔찍했다. 햇빛이 없는 겨울은 사람을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들기에 너무나 적합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무튼 여행자의 시선과 외노자의 시선은 너무나 다르다. 수박 겉핥기식으로 독일을 체험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들의 실제 생활 속에 들어가서 존버 하는 삶인 것이다. 3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존버 중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존버!!! 그것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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