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내가 장착해야 하는 것 중에 가장 기본은 상냥한 미소와 친절한 말투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듯이 웃는 얼굴로 도움을 요청하는 외국인을 거절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친절한 말투는 필수 중의 필수이다. 나는 본래 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무뚝뚝한 표정을 짓는 편이라 의도치 않게 오해를 사기도 했다. 같은 말이라도 아 다르고 어 다르듯이 기왕이면 부드럽고 친절한 말투로 말하는 것이 훨씬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
그러나 외국에서는 낯선 환경에서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소통해야 하다 보니 늘 긴장된 상태여서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잠시 여행으로 왔었다면 기초 회화만으로 상냥한 미소와 친절한 말투를 더해 얼마든지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며 자신감도 뿜 뿜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주자로서 생활할 때는 더 많은 어휘가 필요하게 된다. 아이의 친구들과 대화하기, 학교 선생님과 상담하기, 일처리 하기 등 내가 알지 못하는 여러 영역의 어휘들을 습득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지금의 내 자존감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높여주기도 한다. 되도록이면 무신경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하지만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들로 인해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받고 상처를 받는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한다는 것은 상처에 익숙해지는 삶이란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 상처는 타인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해서 받는 상처일 수도 있겠지만, 남들의 시선과 남들의 태도에 좌지우지되는 기분이 나를 너무나 씁쓸하게 만들 때가 있었다. (한국에서는 남들 시선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느 나라에서 살든 인간의 삶은 비슷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아직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나의 짧은 외국 생활로 비추어봤을 때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산다는 건, 특히 내 나라보다 더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에서 산다는 건, 처음부터 을로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을로써 상처 받는 삶에 익숙해지고 점차 타인과 더불어 사는 삶이 아닌 나만의 삶으로 포커스가 맞춰져서 최대한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조금은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은 부정적인 것도 아니고 긍정적인 것도 아니다. 이곳에서의 삶은 내가 나의 삶에 대해 많이 고민하게 되고, 외국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마 한국에서 계속 지냈다면 늘 그래 왔듯이 가족들과 정기적으로 만나고 여행 가고 맛있는 거 먹고 남들 사는 것처럼 평범하게 아이를 키우며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 같다. 외국에서의 나의 삶은 추가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은 사실이다. 힘들고 지칠 때 당장 도움을 요청할 곳이 없다는 점, 무슨 일이 생겨도 나 혼자 해결해야 한다는 점, 특히 서럽고 억울해도 당할 수밖에 없을 때, 언어가 부족해서 오해가 생길 때 그 외 내가 내 나라에서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을 때마다 '나는 왜 이곳에서 살고 있는가', '나는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 '어떤 이유 때문에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라는 생각들이 나를 괴롭힌다.
처음에 독일로 이사 왔을 때 이곳에서 5년, 10년, 20년 이상 사셨던 한인 분들과 접촉했던 적이 있었다. 나는 나보다 먼저 생활한 그들의 삶이 궁금했다. 내가 그들을 통해 느꼈던 것은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면 생활할수록 내 나라의 정서와 그 나라의 정서가 뒤섞여 조금은 다른 그들만의 세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두 명의 아이가 있고 아이들이 1살, 3살 때 외국으로 나왔기 때문에 한인과 어릴 적 이주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사실 이러한 고민은 외국에 나오기 전에 했어야 했다. 외국으로 이주를 계획하기 전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어느 나라로 언제 어떻게 갈 것인지 철저하게 조사하고 답사 과정을 거쳐도 잘 적응할까 말까인데 우리 가족은 모든 과정을 거꾸로 겪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의 오랜 학업을 마치고 열흘 뒤에 다른 선택지가 없이 우리는 독일로 와야만 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풀리는 것만 같았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남편의 직장, 집, 아이들의 기관, 나의 어학공부 등.. 그러나 내가 크게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독일이 어떤 나라인지, 독일의 민족성, 문화, 언어에 대해서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20대 초반 시절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외국에서 생활해본 적이 있었고 그 나라 언어를 배우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만 생각하고 독일에서의 삶 역시 문제없을 거라고 자만했다. 그러나 20대 초반에 언어를 배우는 것과 30대 중반에 언어를 배우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있었다. 물론 나이가 많아도 언어를 잘 배우시는 분들도 많다. 내가 하는 말이 핑계로 들려도 어쩔 수가 없다. 20대의 나는 혼자였고, 30대의 나는 아이가 둘이다. 큰 아이와 둘째 아이는 독일어를 모르는 상태로 유치원에 다녀야 했고, 나는 창고 깊숙이 먼지에 쌓여 보이지도 않는 서랍 안에서 꺼낸 오래되고 캐캐 묵은 중등 영어를 꺼내어 겨우 주섬주섬 사용하며 생활했다. 지금의 나는 20대의 내가 아니었다. 단어를 하나 외우면 다음 날 기억할 수 있는 뇌 상태가 아니었다. 지금의 나는 단어 하나 외우기에도 팍팍한 삶이었다. 처음에는 남편 탓을 했고, 그다음에는 환경 탓을 했고, 마지막에는 나 자신을 탓했다. 나 자신을 탓하기 시작하자 나는 우울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점점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고 움츠려 드는 내 모습이 견딜 수 없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조언했다. 독일어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독일어를 잘하게 되면 될수록 삶이 더 윤택해지고 나아질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미래를 바라보고 힘을 낼 수 있는 단계가 아니었다. 누가 모르나. 언어를 잘하면 당연히 삶이 좋아진다는 것을. 그러나 그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안 되는 걸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나의 암흑기가 2년 넘게 지속이 되었다. 나아질 때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었고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조차도 내겐 버거웠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것들이 우리가 인생을 지내고 나서 '그때가 좋았지, 아 지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그 조언들이 정말이었구나.' 하고 느끼는 날이 분명히 올 것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러나 그것을 경험하지 않은 지금의 나는 여전히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나의 언어 실력이 좋아져서 혹은 지금 하고 있는 미니잡이 아닌 내 전공으로 취업하게 된다면 정말로 나아질까? 아니 내 언어 실력이 좋아지기는 할까?' 그동안의 삶을 비추어봤을 때 나는 그때 가서는 그때의 또 다른 고민과 걱정거리가 생길 것이고, 지나고 나면 '그때가 좋았지' 라며 좋은 것만 기억하고 회상하겠지. 그때까지 잘 버티는 수밖에 지금의 나는 달리 방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