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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카 Oct 12. 2022

독일에서 한국어를 가르칩니다.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독일어가 왜 필요해? 응 필요해!! 

 외국어는 자주 사용하지 않으면 너무나 자연스럽게 잊어버린다. 사실 외국어뿐일까, 기계도 쓰지 않으면 녹스는 법인데 사람 또한 마찬가지겠지. 가볍게 쌓은 나의 얕은 지식은 언제라도 사라지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갑자기 시작했던 9개월의 직업훈련과정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나갔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잠을 자는지 안 자는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아닌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허덕이며 살아내기 바빴다. 그렇게 바쁘게 돌아가던 나의 일상에 갑자기 찾아온 한가로운 시간들은 오히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훈련과정이 끝나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무엇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나 허무하기도 하고, 내가 배운 것을 써먹을 수 있을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알 수 없는 중압감이 나를 감싸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망설일 시간 없이 그나마 배운 언어를 잊어버리기 전에 뭐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독일 시민대학에 무작정 문을 두드렸다.


 베를린 시민대학 곳곳에서는 오래전부터 한국어 강좌가 있긴 했지만, 근래 한국 붐이 일어나 더 많은 한국어 코스가 생겨나는 추세였다. 나는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학위와 한국어 교원 2급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독일어보다는 이력으로 어필을 해야겠다 싶어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하여 외국어 담당자에게 직접 메일을 보냈다. '되면 되고 말면 말자'라는 마음으로 일단 들이밀었다. 한편으로는 '설마 되겠어 되면 그야말로 대박이지'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는 그저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흡족했다. 답장이 안올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담당자로부터 답장이 바로 왔다.


 "당장 만나 우리 지금 만나~"


 오마 낫!! 이거 실화야? 뭔 일이 당가~


 그때부터 심장이 벌렁벌렁하면서 '메일을 괜히 보냈나'  하는 두려움에 살짝 후회가 밀려오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담당자는 바로 다음 날 면접을 보자고 했고 나는 당장 면접을 준비했다. 서류의 나라이니 나를 증명해 줄 서류들을 꼼꼼히 챙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장에 갔다.


 두근두근


 30분 일찍 도착할 때만 해도 '되면 땡큐고 안 돼도 실망하지 말자.'라는 마음이었는데, 약속시간까지 대기하는 동안 갑자기 미친 듯이 나대기 시작하는 심장 때문에 차라리 시간 맞춰 올걸 그랬나 하면서 출산 때 하고 안 했던 라마다 호흡을 하면서 심장을 진정시켰다. 후  하  후  하


 라마다 호흡법을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역시 애 둘 그냥 낳은 게 아니다. ㅋㅋㅋㅋㅋㅋㅋ(글에서도 뜬금포 소리를 할 말큼 느껴지는 당시의 긴장감)


 드디어 담당자가 내 이름을 불렀고! 진정된 심장을 부여잡고 면접실로 들어갔다.


 할로~인사하는 그 순간! 느낌 확!!! 담당자의 표정과 눈빛을 보니 '이 사람은 나에게 호의적이다!!!'라는 느낌이 왔고, 심장이 언제 나댔냐 싶을 정도로 차분함을 되찾았다. (외국 살이 하다보니 그 사람의 눈빛과 안녕하세요 말 한마디로 상대방의 나에 대한 느낌을 느낄 수가 있다.) 덕분에 그동안 배운 독일어를 있는 대로 모두 쥐어짜 면접을 무사히 치렀다.(독일어공부했던 시간과 직업훈련과정 고마워) 역시 배우면 언제든지 써먹는 게 맞는 거 같다. 면접 포인트는 내가 독일어 실력이 미흡했을지라도, '아니 미흡했지! 그렇지만 난 독일어 강사가 아니라 한국어 강사에 지원한 거잖아! 한국어를 잘 가르치면 되는 거지!'라는 당당함과 미리 작성해서 가져간 수업계획서와 강의지도안이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준비된 자라는 것을 팍팍 어필한 것이다. 그 덕분에 그 자리에서 바로 오케이를 받았고 마지막 결정권은 내가 거머쥐게 되었다. 캬~ 그동안의 독일 인생 서러움 여기서 다 풀었던 것 같다.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핍박받으며 개고생을 했나 싶을 정도로 가슴이 뻥 뚫렸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 알리지?! 자랑하고 싶어 온몸이 근질근질했다. 강사 계약서를 작성하면 정말로 나는 한국어 강사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강사 계약서를 보내준다던 담당자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감 있던 나는 자신감이 점점 없어졌다. '분명 오케이 합격이었던 거 같은데 왜 연락이 없지' 오매불망 담당자 메일만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면접보고 5일 지났을 때였을까(이제 보니 독일에서 5일이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구나 ㅋㅋ) 담당자로부터 메일이 도착했다!! 강사 계약과 관련된 안내와 강사등록 파일과 함께!!! 오야르~~~~ 뭔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지만 됐다! 됐구나! 에헤라디야~~~ 다음 걱정일랑 미뤄둬~~ 지금은 즐기는 거야~~~


 그렇게 나는 독일 시민대학에 한국어 강사로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물론 정규직은 아니고 프리랜서 계약직 4개월짜리 시간강사지만 이게 어디냐!! 아, 모든 강사는 프리랜서 계약직으로 일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매 학기마다 수강생이 있으면 계속해서 시민대학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할 수 있다. 즉, 수요가 있다면 몇십년이고 할 수 있다. 


 외국인인 내가! 이방인인 내가! 독일어 못하는 내가! (싸이 노래 멜로디로 읽어주세요 ㅋㅋ)


 독일어 1도 말 못 할 때 한국이었으면 하지도 않을 일을 하면서 독일어 한마디에 슬퍼하고 우울했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독일어가 내 인생을 쥐락펴락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번 일로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첫 번째로 자랑스러웠고 두 번째로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말하고 싶다. 나처럼 외국 생활로 힘들어하고 있을 우리 경단녀 주부님들!!! 힘내시라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명언이 있다. 어릴 때 우연히 본 미국에서 성공한 한국인 여성이 말한 명언이다. "i can do it! you can do it! we can do it! why not?!!" 자기 자신을 믿고 자신감을 가지고 일단 하셨으면 좋겠다. 




*프리랜서로 일하게 되면 프리랜서로 등록해야 한다. 

아래 엘스타에서 회원 가입 후 프리랜서로 등록하면 피난츠암트에서 우편이 날라온다. 

거기에 프리랜서 세금번호가 작성되어 있으니 일할 때 개인세금번호가 아닌 프리랜서 번호로 일하면 된다. 

잘 모르겠다 하면 세무사에게 수수료를 지불하고 일을 맡기는 것이 낫다. 


프리랜서 언어강사의 카테고리는 Sprachlehrer*in   

프리랜서는 독일어로  selbsttätig 


https://brunch.co.kr/@bakas-hwa/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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