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진분홍과 노랑으로 색을 비율을 다르게 혼합하여 그러데이션 느낌으로 진한 색부터 연한 색까지 만들었다. 연한 색을 만들 때는 흰색을 조금 썩었고 마지막에는 물을 섞어 더더욱 연한 색을 만들었다.
두 번째는 진분홍과 파랑, 세 번째는 진분홍, 파랑, 노랑을 모두 섞어서 다양한 색을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기에 앞서 색을 공부하는 이유를 이번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에는 그림 지식이 없으니 보라색이 필요하면 보라색 물감을 사용했다. 그것이 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어찌 됐건 보라색이 필요하니 보라색을 썼던 것이다. 그런데 색을 만들다 보니 내가 원하는 색을 배합하여 만들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색을 잘 쓰는 작가의 그림을 보면 색이 예뻤던 거구나 싶었다.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오는 색이 아닌 자기만의 색을 찾아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또 모든 참가자가 같은 색으로 배합을 했는데도 아주 소량의 비율 차이로 색이 달라지는 것 또한 매력적이었다.
색을 혼합하는 연습을 끝낸 후 강사는 우리에게 노을 사진을 제시하였다. 사진은 모두 다른 컷이었지만 시간대는 모두 일몰 시간대였다. 지난 시간과 마찬가지로 위 네 가지 색으로 노을을 주어진 시간 안에 빠르게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시간 안에 색을 만들어가며 하려니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 색을 미리 만들어놓고 하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물감이 아깝다는 생각에 아끼며 사용하다 보니 붓으로 물감을 칠할 때마다 물감이 빠르게 건조되었다. 물감을 아끼지 않고 팍팍 써야 하는데 왜 난 아직까지 물감이 돈으로 보일까나. 강사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정형화된 표현을 할 수 있는데 최대한 관찰을 많이 하고 자연의 모습을 살려서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연습을 하라고 피드백을 해주었다. 예를 들면 무지개는 모두 타원형이다? 해는 모두 동그랗다? 같은 고정관념을 깨고 찌그러진 모습은 찌그러진 모습대로 표현하면서 인위적이지 않고 자연스러운 그림을 그리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찰을 뚫어져라 해야 한다고도 했다. 관찰을 열심히 하다 보면 꽃이라고 해서 모두 둥그런 꽃잎이 아니고 분홍색 꽃이라고 해서 다 분홍색은 아닌 게 보이고 그런 것들을 계속해서 연습하다 보면 어색하지 않고 보기 편안한 그림이 된단다.
두 번째 코스를 듣고 라일락 꽃 그리기 프로젝트를 선택했다. 강사의 가르침에 따라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지만 그림을 그릴수록 어딘가 어색해 보였다. 생각처럼 쉽게 표현되지 않는 것은 아마도 내가 어떤 편견에 갇혀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꽃만 계속 그려나가는 게 질린 느낌이 들었다. 잠시 멈추었다가 그리고 싶을 때마다 수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하니 그렇게 해보려고 한다.
미완성 : 라일락
수많은 꽃 중에 라일락 꽃을 그리는 이유는 라일락에 아빠와의 추억이 있어서이다.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즈음 건강을 자부하시던 아빠가 갑자기 위급환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게 된 일이 있었다. 가족 모두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아빠를 간병하느라 휴가를 모두 사용해 버린 엄마는 직장에 다시 출근하셔야 했다. 남동생보다는 내가 아빠 곁에 있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내가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엄마의 뒤를 이어 아빠의 보호자로 병원에 머물게 되었다.
병원 밥이 물릴 아빠를 위해 도시락을 싸던 날이었다. 늘 부모님께 받기만 하던 내가 아빠를 위해 도시락을 싸게 되는 날이 올 줄 상상도 못 했었다. 아빠 인생 기차에는 쉬어가는 간이역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갑자기 정차한 간이역에 앉은 아빠는 많은 생각이 드시는 듯했다.
우리 가족은 지금의 시간을감사하기로 생각했다. 슬퍼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덕분에 어릴 적 이후로 가족 모두 바빠서 한자리에 모이지 못했는데 이번 일 덕분에 아빠와 오랜 시간을 보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아빠가 아프지 않았다면 나눌 수 없었을 아빠 인생의 귀한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한 남자의 인생에 대한 회한과 가장으로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에 대한 서러움, 꿈이 있었던 젊은 날의 한 남자,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어느새 흰머리가 가득한 노년을 앞둔 중장년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빠 얘기를 듣기 전까지 아빠는 아빠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아빠에게도 청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으며 나와 같은 한 사람일 뿐이었다.그러다 성인이 되고 사회적으로 정해진 인생의 길을 걸어가며 최대한 뒤처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며 살아낸 삶이었다. 아빠가 그랬듯 나 역시 뒤를 돌아보기보다 앞만 보며 살았다. 스펙 쌓기 바빴고 사회적 성공을 지향하는 삶을 살았다. 그 시대에는 그게 당연했다.
우리네 아버지가 살아야 했던 세상은 본인의 인생은 늘 뒷전이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직장에서는 자신의 영혼과 뼈를 갈아 몸 바쳐 일하고 가족을 위해 어떤 불이익도 감수하며 묵묵히 주어진 일을 감당해내야만 하는 가장이 되어야만 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지만 남는 건 돈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아픈 몸뚱이 하나라니. 사회가 정해준 길을 걸었고 모든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자신을 포기하고 희생하며 오직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삶을 살았을 뿐인데 그 끝의 결과가 아픈 몸이라니 누구라도 서글퍼질 수밖에 없는 인생의 결말이었다.
답답한 병실을 나와 병원 산책로에 앉아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던 때였다. 병원 산책로에는 라일락 나무가 있었는데 계절에 맞게 나무줄기마다 한아름 꽃이 피어있었다. 나는 그때의 라일락 향기를 지금도 잊지 못한다. 아빠의 촉촉해진 눈가와 씁쓸한 미소와 맞물린 라일락 향기는 지독히도 향기로웠다. 마치 아빠의 인생이 고단했지만 그래도 참 많이 향기로웠노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마치 내 코끝에서 라일락 향이 나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