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학교 방학이 참 많다. 일수로 따지면 한국과 똑같은데 조금씩 쪼개어 사용한다. 특히 상반기에 방학이 몰려있다.
- 12월 약 2주 정도 크리스마스 방학
- 2월 약 1주 정도 겨울방학
- 4월 약 2주 정도 부활절 봄방학
- 7~8월 약 6~7주 정도 여름 방학
- 10월 약 2주 정도 가을 방학
그리고 방학 사이사이 공휴일이 있으니 1년에 쉬는 날이 정말 많다.
처음 독일에 왔을 때 독일 사람들이 여행을 무지하게 많이 자주 가길래 저게 생활이 될까? 어떻게 저게 가능하지? 싶었다. 한국에서 살면 여행 가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 돈을 떠나서 아무리 직장 연차가 한국보다 많다고 해도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독일살이가 계속될수록 "아, 그럴 수밖에 없구나." 하고 저절로 알게 되었다. 독일 사람들이 왜 1년 연차를 다 끌어모아 아이 방학에 맞춰 빠르게는 1년 전부터 여행 계획을 세우는지 말이다. 일단 독일은 한국처럼 놀거리가 많지 않다. 가족 중심으로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 탓에 가족이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하는 시간이 많다. 연차가 길어질수록 독일 생활이 지루해진다. 학교 방학 횟수가 잦은 점도 한몫한다. 학교가 자주 방학을 하니 방학할 때마다 아이들의 에너지를 빼놓아야 한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벤트를 찾거나 여행을 간다. 직장 역시 마찬가지다. 휴가를 눈치 안 보고 사용할 수 있고 병가 내는 것도 자유롭고 가족이 아플 때도 연차를 사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방학이 되기 최소 2~3달 전에 미리 여행을 예약하면 훨씬 저렴한 값에 여행을 할 수 있다.
독일 내에 부모님, 친척 등 가족이 있는 사람은 모든 방학에 여행 가진 않고 방학 때마다 부모님 댁에 방문하거나 친척끼리 모여 놀 수 있다. 하지만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자주 있는 휴일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시간을 무료하게 보낼 때도 많고 처지가 비슷한 사람들을 사귀기도 쉽지 않다. 나 역시 혈혈단신 신세라 오직 남편과 아이들과 외로운 독일 생활을 잘 헤쳐나가야만 한다.
독일 생활이 시작되고 나서 한국과 완전히 다른 생활에 일단 가계를 어떻게 꾸려나가는 것이 최상일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비자부터 거주지 등록, 아이들 학교 등록 등 거쳐야 할 수많은 관문을 지나야 했기에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한국에서 부모님이 오시면 그 핑계로 여행을 갈 수 있었는데 그 외에는 살아내느라 여행 다운 여행을 자주 가지 못했다. 가장 긴 여름 방학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그런데 독일살이 연차가 쌓일수록 독일 생활이 따분해져 갔다. 크리스마스마켓도 한두 번이지 장소만 다르고 가게며 이벤트가 하나같이 똑같아서 감흥이 떨어졌다. 예쁘다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가도 파는 것도 똑같고 장식도 똑같고 거기서 거기였다.
그러다 작년 12월 크리스마스 방학 때였다. 근교 여행이라도 가려고 하니 너무 비쌌다. 닥쳐서 예약하니 가격이 아주 사악했다. 저렴하고 좀 괜찮다 하는 곳은 이미 예약이 다 차버렸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곧 다가올 2월 겨울방학일정으로 여행지를 검색해 보았다. 그런데 웬 걸, 평소의 절반 값이 아닌가? 이번 크리스마스 방학은 집에서 보내고 2월 겨울방학 여행을 예약하는 게 훨씬 낫겠다 싶어서 바로 결제를 했다. 약간 땡처리 같은 느낌의 티켓이라서 바로 결제하지 않으면 티켓은 사라진다. 하여간 그렇게 2월 겨울방학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여행을 가게 된 것이다.
wizz 항공 이름도 생소한 wizz 항공 아침 8시 30분 출발행. 출발 전까지도 잘못 예약한 거 아니겠지, 사기당하는 거 아니겠지 별별 걱정을 다 했었다.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게 예전에 저가 항공에 대한 안 좋은 경험이 있었다. 그때 라이언 에어를 탔었는데 2시간 지연에 수화물 분실과 유모차 고장 3단 콤보에도 보상을 안 해줘서 결국 고장 난 유모차를 끌고 여행해야만 했었다. 그래서 비행기에 탑승해서도 안전하게 가는 거 맞을까 하며 노심초사했다. 다행히 아무 일 없이 예정대로 무사히 11시에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항에 도착했다.
부다페스트 지하철 헝가리 부다페스트 공항에서 나와 공항버스 및 대중교통 티켓을 끊었다. 카드결제 혹은 헝가리 돈으로 구매가 가능하다. 우리 가족은 24시 원데이티켓을 14유로에 끊었다. 200E 버스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여행 일주일 전에 예약했다. 여행 일주일 전에 예약하면 마음에 드는 숙소를 구할 가능성은 낮지만, 그 대신 절반값으로 숙소를 예약할 수 있다. 왜냐하면 숙소의 경우는 여행이 임박했을 때 할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우리 4인 가족은 시내 중심에 있는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시내 중심이라 시끄럽긴 했지만, 관광객에게는 도보로 관광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위치였고 생각보다 방도 많고 집이 커서 4인 가족이 머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방 3개, 화장실 2개, 주방 따로 있는 구조였다. 그리고 수건과 휴지를 제공해 주고 주방도구가 구비되어 있어서 요리도 할 수 있었다.
시내 한복판
이번 여행은 즉흥여행이긴 하지만, 유럽에서 저렴하게 여행하기를 실천해보고 싶은 목적이 있었다. 그런데 첫날 온천을 방문하고 그 목적이 깨졌다. 헝가리 하면 온천이 유명하고 부다페스트에는 유명한 온천이 여러 개가 있다. 가장 베스트 넘버 원인 세체니 온천은 필수 관광코스인데 수건을 가지고 있지 않은 관광객은 온천입구에서 큰 바디수건과 슬리퍼를 사야 한다. 물론 슬리퍼 없이 맨발로 다녀도 되지만 2월 날씨가 아무리 따뜻하다고 해도 바닥이 차가워서 슬리퍼가 필수이다. 그런데 수건 2장에 4만 원이라니 후달달 우리는 4명이지만 아이 들 거만 각각 2개씩 구매했다. 이후 바닥 밟고 다니가 가 발바닥 동상 걸리는 줄 알았다는.. 샤워장은 문으로 잠글 수 있는 1인 샤워장인데 온천물보다 이 물이 더 따뜻해서 한참 동안 샤워를 했다.
세체니 온천 세체니 온천은 명성만큼이나 컸고 온천종류가 다양했다. 야외 온천, 실내 온천으로 나뉘어 있었고 실내 온천은 물 온도가 다양한 탕이 한 곳에 모여있었다. 실내는 유황냄새 때문인지 계란노른자 먹고 방귀 뀐 냄새가 진동했다. 물 온도는 38도가 가장 높았는데 한국인인 나에게는 그냥 조금 따뜻하다는 느낌이었다. 14세 미만의 아동은 야외 온천만 이용가능했고, 실내 온천을 이용할 수 있다고 했는데 아마도 물 온도 때문이었을 것 같다. 그런데 몇몇 아이들이 부모와 같이 실내 온천을 이용하고 있길래 우리도 아이들과 함께 실내 온천을 잠시 이용했다.
세체니 온천 야경
두 번째 날에는 관광객답게 관광지를 차례로 방문했다. 부다페스트의 이름은 강을 사이로 부다와 페스트지역을 뜻한다는 것이 새로웠다. 그리고 부다 쪽에 부다 성이 있어서일까? 부다 쪽이 잘 사는 지역이라고 했다. 부다성에 올라가면 부다페스트 전역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정말 장관이었다. 특히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어서 여행기분을 마음껏 낼 수 있었다. 부다 성에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올라갈 수 있는데 말이 케이블카지 타자마자 내린다. 왕복 이용 요금은 성인 4000 포린트 아동은 2000 포린트이다. 아이들이 있어서 케이블카를 탔지만, 계단으로 내려오며 보는 경치도 좋으니 굳이 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케이블카는 부다 성을 짓는 인부들이 자재를 들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힘들 듯하여 당시 왕이 인부들 편하게 일하라고 설치해 준 케이블카라고 한다.
부다성 올라가는 케이블카
부다성에서 바라본 풍경
부다성에서 본 풍경 부다성에서
부다성에서
부다 성에서 내려와 그레이트 마켓 홀이라는 실내 시장으로 향했다. 전통시장으로 기념품도 팔고 길거리음식도 있다고 해서 기대하고 갔는데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라서 그런지 가격도 사악하고 기념품도 비슷비슷했다. 굴둑빵 1개에 딸기소스를 추가하니 9유로, 생과일주스 1잔은 5유로였다. 그래도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기념품 하나씩 사자 해서 아이들이 직접 고른 목도리를 하나씩 사들고 나왔다. 다행히 목도리는 생각보다 엄청 비싸지 않았다. 목도리 한 장에 13유로 정도였다. 참고로 굴둑빵은 노점상에서 짐트맛으로 사드시길 바란다. 훨씬 맛있고 가격도 저렴했다.
노점상 굴둑빵 짐트맛!
갑자기 바람 불고 부다 성에서 마켓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어서 주변에 현지인 맛집으로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에 플레이팅이 예쁜 브런치를 파는 곳이었다. 나는 맛있고 좋았는데 아이들은 빵이 물렸는지 잘 먹지 않았다. 역시나 예쁜 값을 하는지 가격은 싸지 않았다. 누가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저렴하다 했는가, 유럽 물가가 올랐다고 하더니 헝가리도 예외는 아닌 듯했다. 심지어 베를린보다 비싼 식당도 있었다. 아마도 관광지라서 그런 것 같다. 관광지는 어디나 비싸고 바가지가 있으니. 이후에는 숙소에서 쉬다가 저녁은 김치찌개 끓여 먹기로 하고 아시아마트를 갔다. 그런데 김치 한 팩에 9유로....... 아무리 관광지라지만 아주 눈 뜨고 코 베이겠구먼.
세체니 다리를 배경으로
성당
세 번째 날에는 겔레트 힐 언덕에 있는 놀이터를 갔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긴 미끄럼틀이라고 해서 방문했는데 올라가는 내내 언덕이 높아서 괜히 왔나 싶었는데 미끄럼틀이 재미있어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 언덕 위에는 자유의 여신상이라고 불리는 조각상이 하나 있는데 이 조각상에는 여러 가지 썰이 있다. 그 썰의 내용은 모두 평화와 자유를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언덕 중반에는 전쟁을 상징하는 커다란 십자가 조각품이 있다. 그 바로 아래에는 동굴성당이 있는데 입장료가 있어서 안 들어갔다.
겔레트 언덕 위 놀이터 어른이 타도 재밌음!!
자유의 소녀상
전쟁기념비
점심으로는 한국인 관광객이 가장 많이 간다는 키라이 100을 방문했다. 어느 블로그에서는 예약하고 방문하라고 했지만, 우리는 예약 없이 방문했다. 자리가 텅텅 비어 있어서 앉고 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직원들이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고 한국어로 주문을 받고 한국인이 어떤 메뉴를 시킬지도 알고 있었다. 역시 한국인들. 헝가리 하면 굴라쉬가 가장 유명한 음식이라 굴라쉬랑 돼지고기 스테이크, 새우시저샐러드, 오리다리구이를 시켰다. 그리고 헝가리 생맥주도 주문했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이지만,
- 직원들의 친절도는 ★★★★★
-가장 기대했던 굴라쉬는 맹탕이어서 ★
- 새우시저샐러드와 오리다리구이는 ★★★★
- 돼지고기 스테이크는 ★★★
키라이 100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로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먹으러 갔다. 장미꽃 모양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어준다기에 방문했는데 베를린에 있던 아이스크림 가게랑 똑같았다. 띠용.
우리는 숙소에서 조금 쉬다가 저녁쯤 유람선을 타러 나갔다. 다뉴브강 유람선 탑승장은 여러 개였는데 한국인들은 10번이 젤 저렴하다고 해서 10번으로 많이 간다고 하길래 가서 보니 요금이 다른 곳보다 비쌌다. 그래서 나는 더 저렴한 다른 탑승장으로 갔다. 유람선 타실 거면 직접 가격 비교 및 서비스 비교해 보시고 탑승하세요. 우리는 성인 1명에 21유로, 아동은 9세까지 무료, 인당 음료 1잔 무료 서비스가 있는 곳에서 탑승했다. 자리는 왼쪽 오른쪽 다 예쁘니 자리 고민은 안 해도 될 듯하다. 그런데 내가 주문한 화이트 와인이 너무 맛없어서 한입 먹고 남겼다. 다른 승객들도 나와 비슷했는지 화이트 와인을 주문한 승객들은 거의 남기더라. 유람선에서는 각국의 언어로 오디오가 나오는데 한국어 오디오도 있어서 부다페스트의 관광지 설명을 들을 수 있어서 반갑고 좋았다. 그런데 AI가 녹음했는지 말투며 어휘표현들이 어색하면서 웃겼다. 다뉴브강 유람선 코스는 꼭 추천하니 방문하실 분들은 유람선을 꼭 타세요. ★★★★★
유람선에서 본 부다성 유람선에서 본 국회의사당 유람선에서 본 세체니 다리
저녁식사로는 매콤한 국물이 먹고 싶어서 한국 식당을 찾아갔다. 한국 식당은 베를린보다 맛있었다. 맛있어서 같은 곳을 두 번 방문했다. 궁중떡볶이, 주꾸미볶음, 자장면, 순대국밥 다해서 100유로.
궁중떡볶이 너무 달아요. 제 추천은 자장면과 국밥!
궁중떡볶이 너무 달아요. 제 추천은 자장면과 국밥!
마지막 날 아침에는 어제 먹고 남아서 포장해 온 궁중 떡볶이를 먹고 숙소 체크아웃을 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전날 간식으로 사 먹었던 크루아상 가게가 맛있어서 재방문했다. 프랑스 음악과 인테리어가 잘 어우러진 여자들이 좋아하는 분위기의 카페였다. 무엇보다 피스타치오 크루아상이랑 블루베리크림치즈 크루아상이 맛있었다. 여행 중 먹었던 음식 중 최고!!!
강추강추강추
갑자기 즉흥적으로 계획한 헝가리부다페스트 여행이었지만, 전체평을 하자면, 베를린은 칙칙한 느낌인데 헝가리는 밝고 쨍한 느낌이어서 굳이 유럽에 산다면 헝가리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날씨가 따뜻해서 좋았다. 음식도 한국인 입맛에 잘 맞는 듯하고 해산물이 싱싱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헝가리의 유명한 특산품 중 파프리카 가루가 있는데(고춧가루임) 가장 매운 4단계가 청양고추 맛과 거의 흡사했다. 100g짜리 사 왔는데 더 많이 사 올걸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 가루 넣고 굴라쉬, 부대찌개 끓여 먹으면 진짜 정말 맛있다. 강추! 관광지가 베를린과 마찬가지로 도보로 이동이 가능해서 좋았고 다뉴브강은 한강처럼 크고 물살이 엄청 셌다. 또 가고픈 의사 100% 있음. 단, 온천 갈 계획이라면 미리 수건과 슬리퍼를 꼭 챙기기.
여행 후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