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사를 왔던 날,
할머니는 차가운 낯선 도시에서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 유일한 분이셨다.
오래된 아파트 문 너머에서 건네온 그리운 온기였다.
할머니를 처음 만난 건 3년 전, 내가 이 아파트로 이사 온 날이었다.
집 앞에 상자를 옮기고 있던 나에게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다가오셔서 말했다.
“새로 이사 오셨어요?”
“네, 바로 앞집이에요.”
“잘 왔어요. 여긴 참 조용하고 좋아요.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요.”
그 말은 짧았지만, 말 속에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내가 사는 베를린은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다.
처음 만나자마자 비격식어를 쓰는 문화도 있지만, 정작 속 깊은 친절은 드물다.
그런 곳에서
할머니는 나에게 유일하게 말끝을 낮추지 않으시고, 존대를 사용하셨다.
그 마음은 존중 이상의 것이었다.
딱딱한 독일 사람들의 건조한 눈빛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그날 할머니는 처음으로 인간적인 온기를 건네준 분이었다.
낯선 타지에서 만난 다정한 이웃,
그것이, 할머니와 나의 시작이었다.
이사 온 초기, 나의 독일어는 서툴렀다.
실수도 많았다.
할머니가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복도에서 할머니를 마주칠 때면 최소 30분에서 길게는 한시간이고 얘기를 들어드렸다.
할머니는 말동무가 필요했고, 나는 독일어 듣기가 필요했으니 서로에게 딱 필요한 존재였다.
이사 한 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남편은 출근하며 전기회사에서 연락올 거라고 내게 당부했다.
남편이 출근한지 한시간쯤 됐을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나는 당연히 남편이 말한 전기회사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다.
사실 독일어를 잘 못 할때라 웬만하면 모르는 번호는 받지 않았던 시기였다.
두려움을 안고 받은 전화 내용은 다행히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독일어 수준이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전기회사다, 이름이 뭐냐, 주소가 뭐냐, 계좌번호가 뭐냐" 등의 간단한 인적사항과 개인정보를 묻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아듣는 데에 취해 내 개인정보를 다 말하고 가입하겠다고 한 후,
남편에게 바로 확인 전화를 했다.
그런데 남편이 말한 회사가 아니라, 전혀 다른 회사였다.
나는 내 실수에 자책했고,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간에 낮아진 자존감때문이었을 것이다.
독일은 가입은 쉽지만, 해지는 반드시 서면으로, 그것도 최소 3개월 전에 해야 한다.
그때문에 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또 해결해야하나, 스트레스가 왔고, 내 마음은 점점 불안해졌다.
그 찰나, 집 벨이 울렸다.
할머니였다.
눈이 빨개지도록 울고 있는 나를 보고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어설픈 독일어로 상황을 설명했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조용히 말하셨다.
“사인을 하지 않았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그랬다.
정말로, 사인을 하지 않은 덕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중에 다시 확인해보니 그 사람이 이메일로 뭘 하라고 보냈고 난 거기부터 못알아들어서 마지막 사인 단계를 진행하지 못했던 것이다.
독일어를 못한 게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무튼,
독일어를 조금 알아들어서 벌어진 일이,
독일어를 더 잘하지 못해 다행이었던 사건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말처럼 일이 잘 마무리되었다.
그 후로 할머니는 내게 동네에 있는 좋은 병원과 기관들을 알려주셨다.
직접 컴퓨터로 찾아 프린트해주시고,
그 위에 손글씨로 “청소업체, 하우스닥터, 물리치료”라며 조목조목 적어주셨다.
그때의 나는 외국 생활에 지쳐 있었고, 마음도 몸도 많이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그 사소하지만 정성 가득한 친절은 그 자체로 하나의 ‘약’이 되었다.
할머니와 나 사이의 거리는 문 하나였다.
그 문을 열고 들어온 이웃이,
그날부터 나에게 ‘가족 같은 존재’가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