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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을 걷는 시간

by 바카

할머니의 기억은 아주 천천히, 조용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실 뿐이었다.


"연세가 있으시니 그런 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할머니와 나는 가끔씩 집 앞에서, 혹은 할머니 댁 거실에서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다.


1시간, 길게는 3시간 동안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떤 날은 같은 이야기가 다시 나오기도 했다.


그때는 또 내가 독일어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


하지만 머지않아 나는 확신하게 되었다.
할머니의 기억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고,

그건 단순한 깜빡임을 넘어선 ‘삶의 새로운 변화’였다.


어느 날, 할머니는 자신의 나이를 실제보다 훨씬 젊게 말씀하셨다.
또 어떤 날은, 이전에 나눈 이야기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셨다.


오븐 사용법을 여러 번 물어보시던 할머니는
마치 처음 배우는 것처럼 나를 의지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할머니 집에서 비상벨이 울렸고,

할머니집 문 틈사이로 연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나는 부리나케 달려가 할머니 집 문을 두드렸다.

문 앞에는 잔뜩 겁먹은 얼굴의 할머니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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