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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갈 수 없는 집

by 바카

그리고 그렇게,

할머니의 또 다른 ‘머무름’이 시작되었다.


그 공간은 안전했지만, 편안하진 않았다.


임시 병동에 계시던 어느 날,
할머니의 가방 속에 있던 현금이, 동전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일이 있었다.


작은 사건이었지만, 그것은 할머니의 불안과 경계심을 극도로 끌어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날 이후,

할머니는 모든 물건을 베개 밑에 숨기기 시작하셨다.


지갑, 핸드폰, 열쇠..

단 하나도 떨어뜨리지 않으려는 듯 꼭 쥐고 잠드셨다.


“밤에 잠이 안 와요.. 누가 또 가져갈까봐.. 무서워요..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내게 조용히 모든 소지품을 건네셨다.


“이것 좀 맡아줘요.. 밤새 걱정하느라 잠도 못 자겠어요.”


그 말은 신뢰였다.


그리고, 조용한 도움을 허락한 말이기도 했다.




할머니에게는 스웨덴에 사는 언니가 한 분 계신다.

하지만 할머니의 언니 역시 여러 차례 수술로 인해 거동이 편치 않으셨다.

또 하필 무릎 수술로 인해 병원에 입원 중이셨고,

자신의 동생을 도와줄 여력이 되지 못했다.


그분은 전화 통화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염치없지만, 제 동생을 잘 좀 부탁드릴게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할머니집에서 할머니에게 당장 필요한 것들을 가져다 드리고

할머니를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얘기를 들어드리는 일뿐이었다.


할머니는 계속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셨지만,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병원 측은 할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고

가족이 없고 혼자 생활하신다는 이유로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머니는 원치 않게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셨다.




시간이 흘러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곳.

그러나 마음만은 여전히 머물러 있는 그 곳.

문 하나만 열고 나가면 갈 수 있는 그 곳을 할머니는 이제 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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