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은 사실 별거 아니다.
어렸을 적 나는 수많은 담임 선생님들에게 일기 검사를 받았다. 일기 검사의 유형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내 일기의 내용을 이해해주는 검사, 하나는 내 글을 고쳐주는 검사이다. 내용을 이해해주는 선생님께서는 공감의 댓글을 남기신다. 대게는 ‘그런 일이 있었구나.’, ‘재미있었겠네?’등이 주를 이룬다. 글을 고쳐주는 선생님께서는 일단 빨간색 색연필을 이용하신다. 띄어쓰기, 맞춤법, 단어 사용의 적절성, 문장과 문장의 호응, 문단 나눔 등의 형식을 한글 소프트웨어처럼 정확하게 수정하신다. 학생의 입장에서 어떤 선생님께 일기 검사를 받기 수월할까? 당연히 전자의 경우가 그렇다. 후자의 경우는 학생들에게 빨간색이 최대한 적어야 한다는 부담을 준다.
나는 교사로서 후자의 역할을 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글은 읽는 사람이 잘 읽을 수 있도록 정해진 규칙과 일정한 형식을 잘 지켜야 한다. 이런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글을 읽는 사람이 그 뜻을 이해하기 난해한 상황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초등학생의 글쓰기는 형식보다는 내용에 치중해야한다. 초등학생이 생산하는 글은 자신의 생각과 느낌, 경험,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등이 글로써 표현되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좋은 글은 곧 사람 냄새가 나는 글이다. 자신의 진심이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글을 써야 한다. 자신이 갖고 있지 않은 생각을 글로 담아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설사 요령껏 글로 담아낸다고 하더라도 어색한 티를 숨길 수가 없다. 이것은 비단 초등학생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이성을 가지고 있지만 매우 감정적인 동물이다.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거나 설득할 수 있는 건 이성에만 호소해서는 되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로 수사학(남을 설득하는 기술)을 정리한 학자이다. 그는 남을 설득하는 데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첫째는 로고스(Logos), 즉 논리이다. 남을 설득하는 데는 당연히 논리가 충분히 뒷받침 되어야 한다. 둘째는 파토스(Pathos), 즉 감정이다. 듣는 사람의 공감을 잘 불러올 수 있도록 상대방의 감정을 건드리면 논리가 조금 부족하더라도 사람들이 말을 믿게 하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셋째는 에토스(Ethos), 즉 말하는 사람 자체이다. 양치기 소년의 말은 아무리 옳아도 듣지 않는다. 평생을 선량하게 살아온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 정리하면 인간은 논리도 논리지만 감정에 매우 약한 동물이고, 이런 감정을 잘 건드릴 수 있는 글은 곧 좋은 글이 된다.
초등학생의 글을 보면 로고스가 많이 떨어지는 걸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가상으로 초등학생이 쓸 만한 글을 적어보겠다.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서 학교에 지각을 했다. 선생님께 꾸중을 들어 많이 속상했다. 하지만 오늘 점심에 돼지고기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저 돼지 같은 재민이에게 절대로 고기를 빼앗기지 말아야지!"
이 글은 논리적으로 빈약하다. 꾸중을 들어 기분이 많이 상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전혀 상관없는 돼지고기에 이 마음이 금세 풀리다니! 갑자기 고기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전투적인 자세는 뭐람? 하지만 우리는 이 글에 공감할 수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경험을 했을 수도 있고, 이런 생각은 충분히 해볼 만한 것이다.
초등학생들이 실체도 없는 ‘좋은 글’이라는 것에 대한 압박을 벗었으면 좋겠다. 좋은 글은 별 거 아니다. 그냥 내 생각을 적은 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글, 내 감정이 잘 드러난 글이면 모두 좋은 글이 될 수 있다. 좋은 글은 억지로 쥐어 짜내서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좋은 글은 쉽고 편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 선생님과 12년 후에 주고받은 짧은 편지 글을 적어 보려 한다. 나는 좋은 글이 오갔다고 믿는다. 그것은 맞춤법과 띄어쓰기, 단어의 적절성, 문장의 호응관계, 문단의 나눔이 정확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서로의 진심이 잘 전달됐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독자 여러분도 진심이 담긴 짧은 편지글을 읽어보면서 거창하고 대단한 글이 아님을 느끼길 바란다.
<나의 편지>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2006년에 1학년 4반에 있었던 한명훈입니다.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드리고 싶었으나 혹시 기억을 못하실 수도 있기에 당황하실까봐 조심스레 쪽지로 마음을 전합니다.
선생님께서 담임으로 저희를 맡아주실 때 참 좋았습니다.
그 때 새로 바뀐 환경과 친구들, 공부며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 많았는데, 선생님의 따뜻한 배려와 리더십이 제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저와 제 친구들 마음속에 선생님은 늘 좋으신 분입니다.
선생님 프로필 사진처럼 늘 웃으시며 후배 제자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훌륭한 교사로 지내시리라 생각합니다.
항상 선생님께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옛 제자가 짧은 편지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답장>
명훈아!
잘 지내니?
얼마 전에 지연이에게 소식 들었어.
지금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선생님도 그 때 생각이 많이 나고, 1학년 4반, 그리고 명훈이도 기억난단다.
선생님이 되었다니 매우 기쁘구나.
섬세하고 배려심 있는 명훈이에게 꼭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단다.
결혼도 했다고 하던데.
늦게나마 축하한다.
착하고 속 깊었던 명훈이.
이렇게라도 소식 전하니 매우 반갑구나.
잘 지내고 시간 되면 놀러 오렴.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