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글쓰기 교육(1)

너의 생각 너의 글을 존중할게

by 라봉파파

내가 가장 많이 읽는 글의 저자는 6학년 학생들이다. 그들의 글은 무언가 정돈되진 않았지만 톡톡 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음식으로 치면 활어회 같은 느낌이다. 이 장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실제로 쓴 몇 개의 글들을 사례로 들어 글쓰기 교육에 어떠한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싱싱한 활어회는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이다. 더 맛있게 하려고 회를 무치거나 밥과 비비는 순간 활어회 자체의 매력은 떨어진다. 아이들의 글도 그러하다. 어른의 실력으로 쉽게 평가하거나 고치려든다면 아이들이 쓴 글의 매력을 절대로 느낄 수 없다.

초등학생들은 글을 재미있게 쓴다. 별 것 아닌 내용도 맛깔나게 쓰는 재주가 있다. 억지로 웃긴 글을 쓰려고 해도 이렇게는 못 쓸 것이다. 이제부터 몇 개의 글을 소개하려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어보길 권한다. 원고지 400자 이내의 짧은 글에 나름의 서사와 유머, 위트가 오밀조밀하게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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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우리 반 학생 중에서 까불이를 맡고 있는 한 남학생이 쓴 글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를 하는 과정을 아주 간략하게 서술했다. 정말 별 거 아닌 일상이지만 나는 이 글에 매료됐다. 일단 문장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다. 그래서 읽기에 편하다. 또 문장의 길이가 신기하게도 비슷비슷해서 마치 랩을 읊는 것처럼 운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학교로 달려가다 빙판을 밟고 김연아 빙의해서 스케이트 타고 왔다.’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그나마 긴 문장에다가 쉼표도 없다.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데 왠지 지치지 않는다. 김연아(를) 빙의해서 스케이트(를) 타고 왔다는 표현에서 조사를 과감히 생략했는데 크게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리듬감이 느껴진다. 컴퓨터를 켜는데 이 학생은 그냥 켜지 않는다. 섬세하게도 ‘딸깍’이라는 표현으로 공감을 사려했다. 치즈햄버거도 그냥 먹지 않는다. 촉촉한 치즈와 두꺼운 패티는 햄버거를 시각적으로 연상시킨다. 나는 이 학생을 잘 알고 있다. 학업성취도만 놓고 보면 이 학생은 우리 반 하위권이다. 그러나 본인도 모르게 섬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원고지를 보면 몇 군데 빨간 볼펜으로 수정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먼저 문단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또 온점(.)이 찍힌 이후에 한 번 더 띄어쓰기를 하고 있다. 우리 반 과제는 원고지 400자 공간에 글을 다 채우는 것이지만 이 학생은 아주 뻔뻔하게 100자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나는 빨간 볼펜으로 글을 잘 읽었다는 사인만 했을 뿐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 앞에서 잘 쓴 글이라고 읽어줬다.


초등학생의 글은 형식적 오류가 많다. 특히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단 구별을 잘 못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이런 오류는 즉각 수정을 해줘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글로 표현하는 장벽을 낮추는 것, 평범한 일상을 조금 특별하게 꾸며서 쓸 수 있는 것, 글로 소통하고 대화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별 것 아닌 일상을 상쾌한 하루로 둔갑한 이 학생은 이후에도 재밌는 글들을 쏟아냈다. 오류는 나중에 수정해도 좋다. 우선 꿈틀대는 생각이 마구 표출되는 것을 정확성이라는 이름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 여기 하나의 작품을 더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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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 예절을 전혀 모르는 어떤 게임 유저와 조우한 우리 반 남학생의 글이다. 글의 제목도 ‘어떤 사람’이다. 이 글은 짧은 순간 모르는 사람과 있었던 다소 황당한 사연을 서술하고 있다. 이 학생은 게임을 좋아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예절을 잘 지켜야 하는 것처럼 온라인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예절을 잘 지켰으면 한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바람을 자신이 겪은 일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글에서는 어떤 사람과 짧게 오고 가는 대화 내용이 중요하다. 사실 별 것 아닌 대화 내용이지만 이 학생은 대화 사이사이에 상황 설명을 하면서 긴장감을 끌고 간다. 무언가 짜증이 나는 상황임을 글을 읽는 사람들은 직감하지만 정작 글쓴이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 한 줄! ‘예의를 정말 밥 말아 처먹은 XX였다.’로 화끈하게 마무리를 하고 있다. 400자 원고지의 짧은 분량에 한 편의 이야기가 훌륭하게 실렸다.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켜 마지막에 해소하는 플롯이다. 이 학생의 원고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마찬가지로 빨간 볼펜을 들고 여러 군데 첨삭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하지만 나는 글을 잘 읽었다는 사인만 남겼을 뿐 그 어떤 오류도 수정하지 않았다. 띄어쓰기가 많이 미숙한 학생이다. 큰 따옴표(“”) 사용도 어색하다. 말줄임표(…….)도 원고지 작성법에 어긋난다. 중간 중간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문장이 보인다. 하지만 좋았다. 큰 틀에서 이 글은 좋은 이야기였다. 학생이 생각하는 바를 글로 표현했고, 사이버 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네티켓 문제를 어떤 사람과의 대화 내용으로 잘 풀어냈다. 그거면 됐다.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고 글쓰기 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오류 수정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반 학생들은 매일 아침 400자 원고지를 채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학급 특색 활동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안에서 원치 않는 일을 강요받아 늘 아우성이었다. 이런 학생들에게 오류를 수정해 주는 건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릴 수 있는 악영향이 될 수 있진 않을까 우려됐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관대한 마음으로 글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의 글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 그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 말이다. 초등학생들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조금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들고, 조금 더 많이 고민하게 만들어서 그러한 결과물들을 글로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글쓰기 교육의 핵심이다. 완벽한 글이 아니어도 좋다. 문장이 어색하고 문단이 뒤엉켜도 상관없다. 어떤 생각이든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글쓰기 교육의 절반은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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