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생각 너의 글을 존중할게
내가 가장 많이 읽는 글의 저자는 6학년 학생들이다. 그들의 글은 무언가 정돈되진 않았지만 톡톡 튀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음식으로 치면 활어회 같은 느낌이다. 이 장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실제로 쓴 몇 개의 글들을 사례로 들어 글쓰기 교육에 어떠한 시각을 가져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싱싱한 활어회는 그 자체로 맛있는 음식이다. 더 맛있게 하려고 회를 무치거나 밥과 비비는 순간 활어회 자체의 매력은 떨어진다. 아이들의 글도 그러하다. 어른의 실력으로 쉽게 평가하거나 고치려든다면 아이들이 쓴 글의 매력을 절대로 느낄 수 없다.
초등학생들은 글을 재미있게 쓴다. 별 것 아닌 내용도 맛깔나게 쓰는 재주가 있다. 억지로 웃긴 글을 쓰려고 해도 이렇게는 못 쓸 것이다. 이제부터 몇 개의 글을 소개하려 한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읽어보길 권한다. 원고지 400자 이내의 짧은 글에 나름의 서사와 유머, 위트가 오밀조밀하게 녹아있다.
이 글은 우리 반 학생 중에서 까불이를 맡고 있는 한 남학생이 쓴 글이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등교를 하는 과정을 아주 간략하게 서술했다. 정말 별 거 아닌 일상이지만 나는 이 글에 매료됐다. 일단 문장 하나하나가 굉장히 짧다. 그래서 읽기에 편하다. 또 문장의 길이가 신기하게도 비슷비슷해서 마치 랩을 읊는 것처럼 운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학교로 달려가다 빙판을 밟고 김연아 빙의해서 스케이트 타고 왔다.’라는 문장을 살펴보자. 그나마 긴 문장에다가 쉼표도 없다.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데 왠지 지치지 않는다. 김연아(를) 빙의해서 스케이트(를) 타고 왔다는 표현에서 조사를 과감히 생략했는데 크게 이상하지 않다. 오히려 리듬감이 느껴진다. 컴퓨터를 켜는데 이 학생은 그냥 켜지 않는다. 섬세하게도 ‘딸깍’이라는 표현으로 공감을 사려했다. 치즈햄버거도 그냥 먹지 않는다. 촉촉한 치즈와 두꺼운 패티는 햄버거를 시각적으로 연상시킨다. 나는 이 학생을 잘 알고 있다. 학업성취도만 놓고 보면 이 학생은 우리 반 하위권이다. 그러나 본인도 모르게 섬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동안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사실 원고지를 보면 몇 군데 빨간 볼펜으로 수정을 하고 싶은 욕구가 든다. 먼저 문단을 제대로 구별하지 못했다. 또 온점(.)이 찍힌 이후에 한 번 더 띄어쓰기를 하고 있다. 우리 반 과제는 원고지 400자 공간에 글을 다 채우는 것이지만 이 학생은 아주 뻔뻔하게 100자를 날려버렸다. 하지만 나는 빨간 볼펜으로 글을 잘 읽었다는 사인만 했을 뿐 아무런 지적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 앞에서 잘 쓴 글이라고 읽어줬다.
초등학생의 글은 형식적 오류가 많다. 특히 맞춤법과 띄어쓰기, 문단 구별을 잘 못한다. 하지만 초등학생에게 이런 오류는 즉각 수정을 해줘야 할 만큼 중요한 사안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바를 글로 표현하는 장벽을 낮추는 것, 평범한 일상을 조금 특별하게 꾸며서 쓸 수 있는 것, 글로 소통하고 대화할 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별 것 아닌 일상을 상쾌한 하루로 둔갑한 이 학생은 이후에도 재밌는 글들을 쏟아냈다. 오류는 나중에 수정해도 좋다. 우선 꿈틀대는 생각이 마구 표출되는 것을 정확성이라는 이름으로 막아서는 안 된다. 여기 하나의 작품을 더 소개하고 싶다.
사이버 예절을 전혀 모르는 어떤 게임 유저와 조우한 우리 반 남학생의 글이다. 글의 제목도 ‘어떤 사람’이다. 이 글은 짧은 순간 모르는 사람과 있었던 다소 황당한 사연을 서술하고 있다. 이 학생은 게임을 좋아한다.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예절을 잘 지켜야 하는 것처럼 온라인 공간에서도 사람들이 예절을 잘 지켰으면 한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바람을 자신이 겪은 일화를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글에서는 어떤 사람과 짧게 오고 가는 대화 내용이 중요하다. 사실 별 것 아닌 대화 내용이지만 이 학생은 대화 사이사이에 상황 설명을 하면서 긴장감을 끌고 간다. 무언가 짜증이 나는 상황임을 글을 읽는 사람들은 직감하지만 정작 글쓴이는 자신의 감정을 최대한 숨기고 차분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 한 줄! ‘예의를 정말 밥 말아 처먹은 XX였다.’로 화끈하게 마무리를 하고 있다. 400자 원고지의 짧은 분량에 한 편의 이야기가 훌륭하게 실렸다. 점점 긴장감을 고조시켜 마지막에 해소하는 플롯이다. 이 학생의 원고지를 자세히 살펴보자. 마찬가지로 빨간 볼펜을 들고 여러 군데 첨삭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샘솟는다. 하지만 나는 글을 잘 읽었다는 사인만 남겼을 뿐 그 어떤 오류도 수정하지 않았다. 띄어쓰기가 많이 미숙한 학생이다. 큰 따옴표(“”) 사용도 어색하다. 말줄임표(…….)도 원고지 작성법에 어긋난다. 중간 중간 문맥에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문장이 보인다. 하지만 좋았다. 큰 틀에서 이 글은 좋은 이야기였다. 학생이 생각하는 바를 글로 표현했고, 사이버 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네티켓 문제를 어떤 사람과의 대화 내용으로 잘 풀어냈다. 그거면 됐다.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은 매우 중요하고 글쓰기 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한 내용이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오류 수정에 대해 조금은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우리 반 학생들은 매일 아침 400자 원고지를 채우며 하루를 시작한다. 학급 특색 활동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안에서 원치 않는 일을 강요받아 늘 아우성이었다. 이런 학생들에게 오류를 수정해 주는 건 어쩌면 글쓰기에 대한 마음을 닫아버릴 수 있는 악영향이 될 수 있진 않을까 우려됐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관대한 마음으로 글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정말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학생들의 글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 그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줘야 한다는 것 말이다. 초등학생들은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조금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들고, 조금 더 많이 고민하게 만들어서 그러한 결과물들을 글로 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글쓰기 교육의 핵심이다. 완벽한 글이 아니어도 좋다. 문장이 어색하고 문단이 뒤엉켜도 상관없다. 어떤 생각이든 글로 표현할 수 있다면 글쓰기 교육의 절반은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