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아이가 세상에 나오기로 예정된 날짜는 2017년 9월 21일이었습니다. 아내는 출산예정일에 맞춰 출산휴가를 쓸 예정이었죠. 그래서 9월 1일에 출산휴가를 공식적으로 신청하고 휴가에 돌입했습니다. 그 날이 금요일이었는데요, 저녁 식사까지 평소와 다름없이 먹으며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제 출산휴가에 들어갔으니 더욱 더 몸 관리를 잘 해서 우리 라봉이랑 예쁘게 만나자 다짐하고 있었죠.
그런데 그 날 밤, 아내는 진통을 시작했습니다. 배가 너무 아프다고 저에게 호소를 했죠. 그 전에도 이런 진통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둘 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안정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금요일 밤 11시에 MBC에서 한창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인 ‘나 혼자 산다’를 보려고 TV를 틀었습니다. 그런데 아내의 진통은 좀처럼 끝날 줄 몰랐고 진통에 규칙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병원에 전화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병원에서는 가진통인지 진진통인지 파악을 해야 하니 어느 정도의 주기로 진통이 있는지를 확인해보라고 했습니다. 진통의 주기는 5분이었습니다. 꾸준히, 규칙적으로 5분 만에 진통이 찾아왔죠. 저희는 직감을 했습니다. ‘아! 라봉이가 나오려나보다!’
진통이 시작됐다고 해서 바로 병원에 갔다가 가진통으로 판명이 되어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산모들이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진진통이 확실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부리나케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들어가면 언제 다시 집에 돌아올지 모르니까요. 일단 캐리어를 꺼내고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하나하나 물건들을 확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챙겼던 준비물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먼저 임신 기간 동안의 기록이 담긴 산모수첩을 꼭 챙겨야 합니다. 제 옷과 아내의 옷가지들을 챙기고, 속옷도 넉넉하게 담았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수유를 해야 합니다. 이에 필요한 각종 수유용품들을 챙겼습니다. 아내의 건강을 위한 회음부 방석과 손목보호대도 챙기고 그 외에 기초화장품을 넣었습니다. 거즈 손수건과 물티슈도 넉넉하게 챙겼죠. 기저귀도 챙길까 했는데 병원에서 기저귀를 충분히 준다는 말을 듣고 그것은 챙기지 않도록 했습니다. 아이가 입을 배냇저고리, 아이를 싸고 있을 속싸개, 아이가 퇴원할 때 쓸 겉싸개 등 육아용품도 챙겨야 했습니다. 그것만 챙기는 데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죠. 너무 갑작스러운 병원행에 아내와 저는 진땀을 빼야 했습니다. 출산 예정일이 한 달 정도 앞으로 다가오면 미리미리 입원 준비를 해 놓는 게 삶의 지혜인 것 같습니다.
저희 부부가 다니는 병원은 집에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아내는 차 안에서 계속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모릅니다. 달리는 차 안에서도 진통의 주기를 쟀는데, 진통의 주기가 2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아내가 진통을 끝내고 괜찮아졌다 싶으면 또 다시 진통이 찾아오니 저에게는 아내가 진통을 끝낸 그 몇 초가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병원에 도착을 하고 병실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습니다. 출산을 하는 병실은 보안장치로 막혀있고 그 안에는 아내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들어가고 한 시간 정도 소식을 알 수 없었습니다. 어두운 복도에서 혼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죠. 저는 행여 아내가 잘못될까 노심초사하고 있었습니다.
하루 같은 한 시간이 지나자 보안장치를 열고 병실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간호사는 아내의 자궁문이 3.4cm 정도 열렸다고 말을 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려면 적어도 10cm 정도는 열려야 한다는 말과 함께요. 저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 진통을 했는데 고작 3.4cm 정도라니. 그 말은 앞으로 더 오랜 시간 괴로운 진통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이야기였으니까요. 그렇게 아내를 만났을 땐 아내는 이미 녹초가 되어 있었습니다. 옷가지를 풀어헤치고 고통 속에 벌벌 떨며 누워있었죠. 너무 힘든 나머지 구역질을 하다가 속에 있는 음식물을 토했습니다. 양동이로 토를 받아주면서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너무 많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고통은 모두 제 탓인 것만 같았죠.
병원에 온 시간은 새벽 1시 30분 정도였는데요, 해가 뜰 때까지도 아이는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산모는 중간에 ‘무통주사’라는 것을 맞습니다. 무통주사는 척추에 직접 주사를 투여해 고통을 줄이는 일종의 마취제 같은 역할을 한다고 했는데요. 제가 의사에게 이제 아내가 고통을 덜 느끼는 거냐고 물어보니 그렇게까지 큰 효과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역시나 아내는 무통주사를 맞았음에도 너무 괴로워했습니다.
중간 중간에 다른 병실에서는 고통을 호소하다가 수술을 하러 가는 많은 산모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너무 괴로워 자연분만을 포기한 산모도 있고, 건강을 생각해서 수술이 낫다는 의사의 진단도 있었겠죠. 저는 아내에게 너무 괴로우면 수술을 하는 게 어떠냐고 말을 했지만 아내는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되는데 그동안의 수고가 너무 아깝다며 걱정하지 말라는 담담함을 표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아침과 점심 사이가 되었을 때 자궁문이 모두 열리고 아기 머리가 보인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하나님 부처님 산신령님! 제발 우리 아내를 지켜주시고 무사히 아이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