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일 오전 10시. 제 아내가 누워있는 병실은 수많은 산파 간호사들로 북적였습니다. 이제 곧 아이가 밖으로 나온다고 하더군요. 제 아내는 이미 녹초가 된 지 오래고 간호사들의 조금만 더 힘을 내라는 말은 이미 조금만의 정도를 훌쩍 넘긴 시간이었습니다. 다른 아빠들은 아기가 태어나는 순간에 눈물이 난다고 하던데 저는 왜 아기가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눈물이 난걸까요. 아마도 너무나 괴로워하는 아내를 보니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병실에 오시고 본격적인 출산이 시작됐습니다. 아내는 마지막으로 젖 먹던 힘까지 짜내기 시작했죠. 저는 아내의 옆에서 손을 잡아주려고 했는데 아내가 손을 뿌리치더군요. 얼마나 괴로우면 그랬을까요. 그렇게 5분 정도를 최선을 다해 힘을 주니 드디어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내는 힘주기를 멈추었고, 저는 발아래부터 끓어오르는 감동을 느끼며 눈물을 왈칵 쏟아냈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직후 간호사들은 아기의 호흡 곤란을 방지하기 위해 콧구멍과 입에 바람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자 아기의 울음소리가 훨씬 크게 들렸습니다. 저는 눈물을 쏟는 와중에도 이 순간을 핸드폰 동영상으로 촬영했습니다. 아내에게는 너무 고생 많았다는 말밖에 해 줄 말이 없더군요. 축 처져있는 아내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아기는 너무 작았습니다. 아기가 태어나면 손가락 5개, 발가락 5개가 잘 있는지부터 확인한다고들 하는데 저는 그럴 정신도 없었습니다. 그냥 아기를 보고 있는 자체가 감동적이었죠. 간호사는 가위를 주며 탯줄을 자를 수 있도록 해줬습니다. 탯줄은 매우 질겼지만 저는 한 번에 잘 끊어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이어지던 탯줄이 끊어졌으니 이제 아빠에게도 너를 품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죠.
아내는 누운 채로 절개된 회음부를 봉합하는 시술을 받고 있었고, 아이는 신생아실로 옮겨졌습니다. 저는 병실 밖에서 기다리고 계시던 장모님과 장인어른께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렸습니다. 병실에는 보호자 1인만 동반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병실에서 나오고 장모님께서 병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장모님께서는 보지 않았어도 딸이 얼마나 고생을 하셨는지 아실 겁니다. 눈물을 흘리시며 너무 많이 고생을 했다고 말씀하셨죠. 장인어른께서도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여러 번 해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새벽부터 와계셨던 두 분께 정말 감사를 드립니다. 병실 밖에 계신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저희 두 사람에게는 정말 큰 힘이 되었거든요.
그 날이 지나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다시 이 이야기를 글로 쓰는 게 힘이 들 정도로 숙연해집니다. 출산은 정말 보통 힘든 일이 아닙니다. 아내는 생과 사를 오가는 순간을 겪어야 합니다. 저도 아내의 진통이 지속되는 14시간 동안 계속 긴장을 하며 서 있었더니 허리에 병을 얻었습니다. 아무리 병원을 다녀 봐도 도저히 낫질 않더군요. 하물며 아내는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겪었는데 제 병에 비할 바가 아니죠.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예비 아빠들에게 몇 가지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이러한 경험이 예정되어 있는 아빠들은 출산이 임박하면 저녁에 술을 한 잔 하는 습관을 버리셔야 합니다. 저는 아내가 임신 중에는 거의 술을 먹지 않았는데요, 특히 출산이 임박해서는 냉장고에 맥주가 한 캔도 없었습니다. 아이는 언제 세상에 나올지 모르고, 아이가 세상에 나오는 순간에는 아내 옆을 지켜야 하니까요. 충분한 수면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출산은 아내가 하지만 출산현장에는 남편이 같이 있습니다. 아내는 출산 전후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사소한 일들은 남편이 다 해야 하는데, 출산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리고 밤을 꼬박 새야 하니 적잖이 체력이 소모가 됩니다. 방진된 체력으로는 출산 후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출산이 다가오면 남편도 건강한 몸과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매우 바람직합니다.
저는 이렇게 아빠가 되었습니다. 사실 결혼을 하면서도 임신과 출산, 육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냥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다 하듯이 나도 잘 하겠지 하는 아주 안일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정말 그러다가 아빠가 된 겁니다. 자유분방하던 제 삶에 무거운 책임감이 엄습합니다. 인간은 왜 이렇게 작고 연약하게 세상에 오는 걸까요? 하나의 작고 연약하지만 고결한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사건입니다. 병실에 입원해서 잠이 든 아내와 딸을 바라보며 앞날을 걱정했던 기억이 납니다. 과연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우리 아이에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앞으로 내 삶은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저런 고민이 많이 듭니다. 완벽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와 아내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마음을 다잡고 최선을 다해야지요. 이 순간이 오면 진정한 인생이 시작되는 겁니다. 또 진정한 인생이 시작될 때, 참된 행복을 깨닫게 됩니다. 모두 힘을 내십쇼. 더불어 이 세상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게 태어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