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아픔을 극복하는 방법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반딧불이를 읽고

by 박달리뷰

누군가 그랬다. 인간에게 가장 큰 축복은 망각이라고.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무언가를 상실하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작게는 어제 사용하던 볼펜부터 크게는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릴 때가 있다. 망각으로 인해 언젠가 상실의 아픔이 사라지더라도 고통을 느껴야 한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하루키 할아버지가 상실에 대한 소설은 쓴 적이 있는데 오늘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 소설집 '반딧불이'를 읽고 간단하게 감상평을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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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은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지역, 공간, 사람들 속에서 기분 좋은 설렘으로 새 학기를 맞이해야 하는 주인공은 인생 2회 차를 맞이한 사람인 마냥 침착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침마다 세상 요란하게 체조하는 룸메이트 때문에 잠을 설쳐도 점잖게 말 몇 마디 하다가 말 뿐이다. 밤새 유흥을 즐기거나 새로운 학문에 몰두하는 것도 아니고 주인공은 규칙적으로 한 여자를 만나 시간을 보낸다. 둘의 만남은 조금 특이하다. 한 장소에서 만나 특별한 목적지 없이 걷기만 한다. 별다른 대화도 없이 두 남녀는 앞을 보며 걸을 뿐이고 힘들다 싶으면 근처 공원이나 카페에 잠깐 앉아 있다가 다시 목적 없는 산책을 계속하다가 어느 정도 어두워지면 헤어지며 다음을 기약한다. 주인공과 기묘한 산책을 하는 그녀의 정체는 주인공 친구의 애인으로 지금 같으면 준우 유튜버에서 인성 논란 있다며 욕 잔뜩 먹을 수 있는 행동이긴 하다.


기묘한 산책의 이유를 하루키 할아버지는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고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포문을 연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


주인공과 그녀에게는 삶을 바라보는 시선을 뒤흔들게 만드는 사건이 존재했다. 주인공의 절친이자 그녀의 하나뿐인 애인이 하루아침에 이유도 모른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 일을 계기로 주인공은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삶과 가까이하고 있다고 깨닫게 되었고 상실이라는 아픔을 정통으로 맞아버렸다. 상처를 받거나 슬픔에 빠지게 되면 누군가는 묵묵히 견디거나 술에 의존하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처하고자 하는데 주인공과 그녀는 그저 걸었다. 단순히 걷기만 한 것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상처와 상실의 슬픔을 안고 있는 상대방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느끼는 생각과 감정이 서로 통하는 사람이 있다면 같이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조금의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 나라는 존재가 어느 외딴섬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나와 똑같은 존재가 있음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외로움은 한결 덜어지니 말이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내 팔이 아니라 누군가의 팔이었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내 체온이 아니라 누군가의 체온이었다.”


주인공이 느끼기에 그녀는 주인공이 필요한 게 아니라 누구여도 의지하지 않았을까 생각하지만 그녀 또한 주인공이라는 존재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로 여겨졌을 것이다. 친구이자 애인을 상실한 경험으로 인해 생긴 슬픔, 무력함, 허무함은 누구와도 공유하기 어렵고 주인공만큼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다.


그녀와 주인공은 결국 밤을 함께 보내고 그녀는 주인공의 곁에서 떠나간다. 학교를 나와 교토의 요양원으로 간다며 10번은 고쳐 썼다는 편지를 주인공에게 보내는데 읽고 나면 먹먹함을 느끼게 해주는 하루키 할아버지의 필력이 압권이다. 그녀가 기묘한 산책을 멈추고 주인공에게서 멀어지는 행동은 부정적인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영원히 10대로 남아 있고 20대가 올지 몰랐다며 울음을 토해 냈던 그녀의 모습을 보면 과거의 상처와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주인공과 하룻밤을 보내며 새로운 사랑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요양원에 가는 것은 자신의 슬픔을 해결해 보겠다는 능동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도 마찬가지이다. 괴짜 룸메이트가 건네준 반딧불이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풀어주면서 반딧불이가 나는 모습을 지켜본다. 처음에는 날아가지 않고 주저하던 반딧불이가 스스로 작은 빛을 내며 어두운 곳을 향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주인공은 작은 빛이 언제나 자신의 곁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몇 번이나 그런 어둠 속에 가만히 손을 뻗어 보았다.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다. 그 작은 빛은 언제나 내 손가락 조금 앞에 있었다.”


이 빛은 그녀를 통해 전해진 빛일 수도 주인공 내면에 항상 존재하던 빛일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건 우리가 상실의 아픔으로 무너지더라도 고개를 들고 주변을 돌아보면 터널에서 벗어나게 해 줄 빛이 존재한다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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