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02. 2021

아버지가 독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47

신선이 노닐듯한 아름다운 풍경을 의미하는 말로 '신선경'이란 게 있다.

유사한 의미로 '도원경'이라는 것도 있는데,

선계(仙界)의 과일로 지칭되는 복숭아를 잉태한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 풍경을 의미한다.


몽환적인 느낌을 뿜어내는 분홍꽃들이 무리지어 피었으니 그 아름다움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고,

선계의 과일 복숭아를 잉태한 신령한 기운까지 그 위에 더해졌으니

세상 밖 풍경이라 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봄볕이 따사롭던 어느날, 동네 산책을 나섰던 길에 나는

간 크게도 가지마다 탐스럽게 핀 복숭아꽃을 마구 훼손하는 농부님 한 분을 만났다.

농알못(농사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인 내 눈으로 봤을 때 그는

아무리 자기 밭이라곤 해도 도원경을 망가뜨리무분별한  파괴자처럼만 보였다.



연유가 궁금해 바쁘게 일하는 그 분께 다가가 무슨 까닭으로 꽃을 따시느냐 슬쩍 여쭤봤다.

그러자 농부님은 "꽃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복숭아가 제대로 크질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복숭아가 제대로 자랄 수 있도록 꽃들을 솎아내 적당한 간격을 벌려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복숭아를 키우는 게 자식 키우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농알못인 나같은 사람이 곁에서 보기엔 왜 저러나 싶고 너무 한다 싶은 행동 하나하나가

사실은 좀 더 실한 복숭아를 키워내기 위한 농부님들의 오랜 고뇌와 땀의 결실이듯이

왜 저러시나 싶고 때론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엄하기만 했던 우리 아버지들의 행동 역시

궁극적으론 못 나고 여린 우리 자식놈들을 잘 키워내고픈 마음에

부러 불러일으킨 독심(毒心)의 발로였음을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지들 단골집은 모두 맛집이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