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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03. 2021

난 우리 딸들이 '안 착한' 아이로 크길 소망했다

소소잡썰(小笑雜說)


어린 시절 나는 '지나치게' 배려심 많고 착한 아이였다.

딴엔 부모님을 위한답시고 학교 준비물이나 참고서 살 돈 달라는 말조차 제대로 하질 못했다.

없는 살림에 4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키워야 했던 부모님이 늘 힘들어 보여서였다.


그래서 "참고서 값 5천원인데, 엄마한테 뻥쳐서 2만원이나 받았다"고 자랑하는 친구를 볼 때면

녀석이 부럽다기보단 '나와는 다른 세상을 사는 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소도 누울 자리 봐가며 다릴 뻗는다고 집안 형편이 그럴만 하니 그랬겠지 생각했다.

그래도 되니까 그랬겠지 생각했다.


밥 먹여주고 학교 보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만큼 다 해주신 거라 이해했다.

부모님 역시 혈혈단신 맨주먹으로 힘든 세월을 헤쳐왔음을 잘 알기에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했다.

안 됐다고 생각해봐야 더 이상 어떻게 해줄 수 없음을 잘 알기에 그렇게 자기위안을 삼았는지도 모르겠다.


딱 한번 부모님이 섭섭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육군 훈련소에서 한 달여간 죽을 똥을 싸가며 훈련을 마치고 났을 때였다.

다른 동기 부모들은 찬합마다 바리바리 맛난 것들을 싸들고 찾아와 고생한 자식들을 위로했지만,

우리 부모님은 그날 내가 신병훈련소를 수료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계셨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그게 뭐라고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딸들 어린 시절, 대형마트 장난감코너에서 바닥에 드러누워 떼 쓰는 아이를 마주친 적이 있다.

그 아이는 발꿈치가 까지도록 몸부림을 치며 갖고픈 장난감을 사내라고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이걸 본 우리 딸들은 "아빠, 갖고 싶은게 있어도 저러면 안 되는 거죠?" 하고 물어왔다.


안 된다는 말 대신 나는 "왜? 우리 딸들도 뭐 갖고 싶은 거 있어?" 하고 되물었다.

내 어린 시절 판박이처럼 뭘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우리 돈 없죠?" 하며 마음을 사리는 성격을 아는 까닭이었다.

아이들 앞에서 돈 없다고 말한 적도, 뭘 사달라 할 때 안 된다 한 적도 없는데 왜 그러는지 속이 상했다.


그래서 가끔은 우리 딸들이 갖고 싶어할 거란 지레짐작으로 제법 비싼 장난감을 사들고 들어가곤 했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빠 돈 많으니까 갖고 싶은 거 있음 다 얘기해" 하고 돈자랑을 일삼기도 했다.

우리 딸들도 한 번쯤은 장난감코너 한복판에 드러누워 "이거 사줘~잉" 하며 철없이 굴기를 소원하기도 했다.


정호승 시인께서 쓴 시 '이 가을 어딘가에' 중간쯤 나오는 한 귀절처럼

'아기가 울고 싶을 때 울지 못 하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다고/ 오히려 아기가 울 때 웃는' 아빠가 되고 싶었다.

부모의 사정이 어떻건 간에 아이들은 아이들답게 철이 안 든 모습으로 자라기를 바랐다.


나는 우리 딸들이 착한 아이이길 바랐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안 착한 아이이길 소망했다.

착한 아이들은 운명적으로 남들보다 많이 상처 받고, 남들보다 힘겨운 삶을 살아야 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양립하는 마음의 중간점을 끝내 제대로 찾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내 소망은 이뤄지지 못했다.

우리 딸들은 착한 아이라기엔 별로 안 착했고, 안 착한 아이라기엔 너무 착했다.


부모가 된 뒤 우리 부모님은 나를 키우면서 과연 어떤 마음이셨을까를 가끔 생각해보곤 한다.

내가 착한 아이로 크길 바라셨을까, 아니면 당신들과는 정반대인 안 착한 아이로 크길 소망하셨을까?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게 정답일까 싶어 가슴이 답답한 날이면 나는 문득 그게 정말 너무나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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